첫사랑
이순원 지음 / 북극곰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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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이순원 / 북극곰

사랑만큼 가슴 뛰는 어린 날의 추억 공유

 

 

 

 

  책을 읽고 나서

 

 

 첫사랑은 풋풋하다. 어색하고 부끄럽다. 오랜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첫'에 머무른다. 알지 못하고 스쳐 갈 수도 있다. 쌍방향이 아니라 일방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잊히지 않을 그런 것.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다.", 암, 그렇고말고. 그러나 사실 '첫사랑'이라는 소재는 너무나 아름다운 추억을 상기시킬 수 있고도, 서정적인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지만, 작품의 제목으로 떡하니 갖다놓으면 왠지 모르게 싱거운 느낌이 든다는 게 함정이다. 게다가 대놓고 큼지막한 하트 그림까지. 너무도 직관적이어서 예상치 못한 조합이라 오히려 그 속 알맹이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88년에 등단해 『은비령』 등의 작품으로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던 '이순원' 작가의 작품은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다. 내게는 언뜻 표지를 보았던 『19세』라는 작품이 첫 작품으로 읽힐 줄 알았지만, 우연히 이 작품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첫사랑'에 관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은 표지의 느낌처럼 정직하고 진실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한 초등학교 동창회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오직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들, 남자 스물넷, 여자 스물두 명이었던 가랑잎 초등학교의 동창생들이 모여, 어렵지만 정다웠던 추억들에 대하여 담소를 나눈다. 그리고 어느새 그 이야기는 부끄러워 당시는 말할 수 없었던 '첫사랑' 자현이에게까지 닿는다. 모두가 선망했던 자현이, 그리고 주인공 정수가 뒤이어 친구들과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한 번씩 자현이의 이름이 등장한다. 정수는 자현이의 근황을 알고 있지만, 섣불리 그 근황을 꺼내지 않는다. 그들의 아름다웠던 추억이자 사랑이었던 '자현'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두기 위해서. 그리고 정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군가의 첫사랑을 이뤄주기로 한다.

 

 '첫사랑'이라서 남녀 간의 로맨스를,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서 작가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이 열렬히 사랑하는 모습을 상상했는가. 아니다. 나 또한 그랬으나, 내가 상상한 모든 장면이 깨어진 채, 사랑의 진한 감정보다는 예쁜 추억을 상기시키는 순수한 장면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린 날의 추억'이라고 하면 영화 『써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어릴 적 '써니'의 멤버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장면 속에서 나는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하지만 영화 속 그들의 삶도 각자의 아픔과 애환이 있었다. 그들의 아픔을 묻어준 건 바로, 친구의 존재였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는 장면들을,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떠올렸다. 각자의 삶을 사느라 바빠 공유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함께 되짚고, 추억을 공유하는 그 모습이 너무도 따뜻해서 조용한 감동이 인다.

 

 부끄러운 첫사랑의 기억만큼이나, 가슴 뛰는 '추억'이라는 존재 하나가 그들에게 하나씩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순리에 따라 받아들이는 친구들의 모습도 참 보기 좋다. 작가는 이러한 이야기를 어떠한 허세도 꾸밈도 없이, 순수하게 대화를 중심으로 산뜻하게 표현해낸다. 메시지를 찾으려 애썼던 그동안의 무거운 소설들 사이에서, 나를 따스히 보듬어주는 소설이다.

 

 

 

 

Written by. 리니

한국 소설/ 첫사랑, 추억, 친구/ 북극곰 출판사 

해당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우리들의 술자리는 그렇게 하나하나 아련한 기억 속에 옛날의 슬프고 힘든 추억들을 건져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술잔을 부딪치기도 했다.

"그때, 정말 이뻤다. 자현이."

그러느라고 이야기는 다시 자현이에게로 돌아왔다. 나는 누군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아직 은봉이가 모르는 자현이의 이야기를 할까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릴 땐 아무리 좋아도 그런 내색조차 부끄러워 가슴속으로 감추고 감추어야 했던 우리의 첫사랑이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31쪽)

아무리 의미 전달이 목적이라지만 같은 사투리도 서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으면 괜찮고, 서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면 안 된다는 법은 또 무엇인가. `굴암 한 남박 삶아서`와 `도토리를 한 그릇 삶아서`가 어떻게 같은 뜻인가? 같은 물건이더라도 `굴암`은 굴암이고 `도토리`는 도토리인 것이다. `굴암`은 우리 어린 날 가난한 집의 한 끼 점심 양식이고, 도토리는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그대로 다람쥐가 소풍을 갈 때 싸가지고 가는 점심이거나 때로는 도토리묵을 해 먹는 별식의 원료인 것이다. (66쪽)

"그릇 때문에 그랬다. 운동선수 밥이라고 그냥 네모난 도시락이 아니라 그보다 조금 더 큰 동그란 찬합에다 밥을 싸주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노란 알루미늄 찬합이지만 그때 나는 그렇게 이쁜 그릇을 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이뻤냐면 뚜껑에 사과하고 포도하고 복숭아 그림이 그려져 있던 건데 그걸 수돗가에서 씻으며 그런 생각을 했던 거야. 이다음 이런 이쁜 그릇 많은 집에 시집가서 하루종일 그릇만 씻고 싶다고. 그러니 그 도시락을 내가 얼마나 깨끗이 씻었겠나. 씻다가 혹시 어디 긁히기라도 할까 봐 일부러 볏닢만 끊어 만든 야들야들한 수세미로 씻고 또 씻고, 아마 그렇게 열 번도 더 씻어 물기까지 말린 다음 다시 보자기에 곱게 싸 니 책상 속에 넣어두곤 했지." (88쪽)

"느들이야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사랑이 크면 그런 건 아무 문제도 안 된다고. 그래, 그런 경우도 아주 없지는 않겠지. 그렇지만 그것도 서로 처지가 비슷할 때의 얘기지 아무리 사랑이 커도 처음부터 곁에 설 수 있는 나무가 있고 곁에 설 수 없는 나무가 있는 거야. 그걸 가지고 사람 탓하고 사랑 탓할 일도 아니고."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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