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 다산책방

마음과 마음이 만드는 '유쾌한 균열'

 

 

 

  책을 읽고 나서

 

 

 파란 빛의 상큼한 표지와 한껏 눈썹을 치켜뜬 노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예전 큰 인기를 누렸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떠오른다. 두 책은 이야기 구성에 있어서는 확실히 다른 책이다. 하지만 폭탄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노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뿐만 아니라 형식과 문체, 짧은 호흡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등이 오묘하게 비슷한 느낌이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느끼고 있다. '100세 노인'이 2009년, 그리고 이 작품이 2012년, 똑같은 스웨덴에서 출간된 것을 보면,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었던 어떤 '코드'를 비슷하게 재현해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보다 더 닮았다고 생각하는 건, 영화 <그랜토리노>다. 지금은 책에 밀려 다양한 영화를 접하고 있진 못하지만, 예전에 우연히 만나게 된 <그랜토리노>는 간혹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뜬금없이 소개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던 영화였다. 이 둘은 자동차 (그랜토리노, 오베의 경우는 '사브')를 매개로 진행되는 이야기나, 무뚝뚝하고 폐쇄적인 노인이 점점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며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해나가는 점에서 닮았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매체와의 유사성 - 아주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 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은 이야기의 흡인력과 '감동 코드'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이 주인공의 남다른 까칠함과 '시한폭탄 같은 소설' 등으로 홍보되고 있기는 하지만, 단지 유쾌함만으로 승부하는 소설은 아니다. 오베라는 남자' (현재) - '오베였던 남자 (과거)'를 번갈아 진행되는 이야기는 의외로 어두운 것 같으면서도, 그 주축은 '사랑'이다. 단지 이성 간의 로맨스만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도 포함되는 '사랑' 말이다. 고집스럽고 촌철살인의 말을 내뱉으며, 이웃들과 싸우기 일쑤였던 노인의 모습 이면에는, 한 여자를 목숨처럼 사랑했던 마음이 담겨있었고, 아버지에게서 얻은 꿋꿋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또한, 갑작스레 나타난 정체불명의 이웃집 여자가 아니었다면, 매일 시도하던 자살 시도가 한 번쯤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존심으로 똘똘 뭉쳤지만, 자존감은 바닥이었던 '오베라는 남자'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이 변화를 향한 딱 한 걸음이었다. 그리고 그 "유쾌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예상했듯 코끝이 찡한 감동의 장면들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그 감동의 장면 속에서도, 소설은 편리함 속에서 무언가를 잃고 점점 변해가는 세계를 혐오하는 노인의 모습이나 하얀 셔츠의 직원들이 등장해 권력을 자행하는 모습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들을 통해 사회의 여러 면을 날카롭게 꼬집기도 해 작품의 흡인력을 더욱 높이기도 한다. 분명, 예상 가능한 이야기의 진행이지만, 노인의 까칠함 속의 숨은 의미를 찾을 때와 노인이 굳게 닫힌 마음을 아닌 척 열어젖히는 작지만 큰 변화가 이 소설 안에서도, 소설을 읽는 우리에게도 큰 힘으로 작용한다. 여러 의미에서 불통不通의 시대인 지금, 까칠하지만 까칠하지 않은 '오베라는 남자'와 한없이 따뜻하고 귀여운 그의 이웃과의 관계를 꿈꾸는 모든 이들이 사랑스러워할 소설이다.

 

 

 

 

 

 

Written by. 리니

북유럽, 스웨덴 소설/ 성장, 감동소설/ 인간관계, 이웃, 사랑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누구도 품질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았다. 루네도, 다른 이웃도, 오베가 일했던 직장의 관리자들도. 이제는 모든 것이 전산화되어야 했다. 꽉 끼는 셔츠를 입은 컨설턴트들이 노트북의 뚜껑 여는 방법을 알아내기 전까지 아무도 집 한 채 지은 적 없었던 것처럼. 마치 그게 그 옛날 콜로세움과 기자의 피라미드를 세운 방법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맙소사, 사람들은 1889년에 에펠탑을 세웠는데 이제는 휴대 전화를 재충전하기 위해 휴식 시간을 갖지 않고서는 1층짜리 집의 빌어먹을 도면 하나 못 그려냈다.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구식이 되어버리는 곳이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나라 전체가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범속함을 거리낌 없이 찬양해댔다. (119쪽)

오베는 문간에 서서 조용히 서류를 읽었다.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 통증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는지, 그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해했다.

미움이었다. 그는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들이 미웠다. 그는 누군가를 이렇게 미워한 기억이 없었지만, 지금은 미움이 그의 내면에 불타는 공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오베의 부모님이 이 집을 샀다. 오베는 여기서 자랐다. 이 집에서 걷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는 여기서 사브의 엔진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걸 가르쳐주었다. 그 모든 시절이 지나고 나서, 시 당국에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다른 걸 지어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얼굴이 둥근 남자가 오베가 불을 끄는 걸 막았고, 이제 또 다른 하얀 셔츠의 사나이들이 여기 서서 `시가`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하지만 오베는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해가 다 뜰 때까지 여기 서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다고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다. (156쪽)

나중에 그때를 돌이켜보았을 때, 그는 자기가 왜 거기서 계속 기다렸는지 잘 설명할 수 없었다. 아마 그런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은 약속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었다. 딱 꼬집어 말하기는 좀 어렵지만, 물론 그때는 그걸 몰랐지만, 그는 훗날 자기 인생의 수많은 15분을 그녀를 기다리며 보낼 운명이었다. 그의 선친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사팔눈을 떴겠지만, 마침내 그녀가 꽃무늬가 그려진 긴 스커트를 입고, 오베로 하여금 자기 몸의 무게 중심을 오른발에서 왼발로 움직이게 할 정도로 새빨간 카디건 차림을 나타났을 때, 오베는 시간 약속을 못 지키는 그녀의 무능함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184쪽)

때로 어떤 남자들이 갑자기 어떤 일을 했을 때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어렵다. 물론 그들 자신이 언젠가 그 일을 하게 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지금 하는 게 나아서일 수도 있다. 때로는 정반대의 이유이기도 했다. 즉 자기들이 진작 그 일을 했어야 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아마 오베도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내내 알고 있었겠지만,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시간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말할 시간이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무슨일인가가 일어나고 나면,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만약`과 같은 말들을 곱씹는다. (3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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