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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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 알에이치코리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끈질긴 추적

 

 

 

 ▒ 책을 읽고 나서

당신은 숨기는 게 많아. 인생에서는 B+짜리 학생. 무엇보다도 바그너와 슈트라우스를 흥얼거리는 사람. 불법 외인(外人), 정서적 외인, 장르광(狂). 황화(黃禍): 신미국인. 침대에서는 훌륭하지. 과대평가되고 있음. 파파 보이. 감상주의자. 반(反)낭만주의자. _ 분석가 (빈칸은 스스로 채우도록). 낯선 사람. 추종자. 반역자. 스파이 (20쪽)

 

 이 목록의 주인공, 헨리 파크. 아내가 준 목록, 연애시라고 생각했던 그 내용은 가지각색의, 날카로운, 수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이후 또 하나의 종잇조각을 발견한다. "언어를 엉터리로 말하는 사람". 한국계 미국인이자 스파이로 활동하는 그는 모든 것을 숨겼다고 생각했다. 거짓말로 끝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짧은 목록 속에서 그는 은밀한 시선 속에서 관통당하고 있었다. 그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진짜 자신'에 대하여.

 

 이방인으로 사는 삶,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의 근원을 밝히기 위하여 그는 자신의 부모님과 함께했던 시절을 추억한다. 단정한 검은 머리를 가진 아버지, 무자비한 세상을 불평하던 아버지, 강도에 휘말려 상해를 입은 아버지의 모습들이 얽히고설켜 고민 덩어리는 더욱 불어나게 된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한국계 미국인이자 시의원인 '존 강'을 대상으로 한 스파이 업무를 맡게 되면서, 이상야릇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그에게 접속될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 혹은 "우리의 관계가 일종의 로맨스"라고 말하는 것처럼, 동류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떤 유대감이나 운명적인 것에 끌리게 된 것이다. 단지 연구할 대상으로 봐야 할 '존 강'의 존재는 주인공의 속까지 깊게 들어와, 고민했던 모든 것들을 자극하는 유도제가 된다. 그 밖에도 간혹 등장하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는 타자(他者)로서 발버둥 치는 미국 사회 이민자들의 애환을 그리며, 세상 속에 뒤엉켜 살아가는 모든 이방인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재미교포 작가 '이창래'는 내가 생각하는 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힘과 멋진 문체를 동시에 가진 작가다. '이방인'에 대하여 집요하게 파헤쳤던 『척하는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아와 세계가 계속해서 충돌하는 어색한 상황에 놓여있는 '닥 하타'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비슷한 고민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척하는 삶』의 매끈한 흡인력에 비해 이 작품은 조금씩 끊기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한국계 미국인이, 자신과 비슷한 한국계 미국인을 스파이 대상으로 삼는 이야기는 독특하지만, 번갈아서 진행되는 과거 현재의 서술과 어느 순간 바뀌어있는 시제 등은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방인'이라는, 어찌 보면 단순한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은 굉장히 세련된 것이라 감탄하며,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방인의 삶, 아마도 그것은 작가 자신을 오랫동안 골몰하게 한 가장 중요한 문제, 그리고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닐까? 원제는 Native Speaker지만 (언어에 대한 고민도 만만찮게 등장한다), '영원한 이방인'으로서 자신이 밟고 있는 땅에서 오롯이 섞일 수 없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의 본질일 것이다.

 

 

 

Written by. 리니

영미 소설/ 재미교포 작가/ 재출간도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어머니는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할까, 얼마나 나쁜 일이 생기기에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렇게 신경을 쓸까 궁금해하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흠 하나 없는 우리 동네를 통과할 때면 마치 발이 아파 조심하듯 천천히 걸어야 하는 것 같았다. 와습이나 유대인들과 이웃한 우리 말 없는 가족은 그들과 스칠 때면 반드시 웃음을 지어야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우리에게는 늘 모든 일이 괜찮은 것처럼,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움직일 수 없고, 우리에게서 분노나 슬픔을 끌어낼 수 없는 것처럼 멋지게 예의 바른 태도를 꾸미고 다녀야 했다. 안 그러면 얼마나 나쁜 일이 생기기에 우리는 미국적인 것이면 다 믿고, 미국인들에게 감명을 주어야 한다고, 돈을 벌고, 한밤중에 사과를 반들반들하게 닦아야 한다고 믿고, 완벽하게 다림질한 바지, 완벽한 신용을 믿은 걸까. 완벽해지면서, 흑인들을 쏘면서, 우리 가게와 사무실이 불에 타 재가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만일 내가 나 자신에게, 그 답을 알아야만 하는 장본인에게 이 어려운 질문들을 한다면, 나는 무슨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90쪽)

아버지는 집에 들어와서 침대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잔인하게 우리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내가 운 좋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폭언을 퍼부었으며, 이 땅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위험한지, 자신이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적은지 아버지 개인이 쌓은 지식을 우리에게 되풀이해 전파했다. 물론 그것은 아버지의 위협 가운데도 가장 공허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부양자이자 성채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나라가 개인에게 - 이것을 연장하면 가족에게 - 시련이라는 구식의 사고방식을 따르는 사람이었는데, 그것은 꼭 아버지가 이민자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오랜 세월에 걸쳐 고된 일을 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가끔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는 소인(小人) 특유의 어리석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210쪽)

나는 늘 말에서 나쁜 잘못을 범하곤 한다. 나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더듬거리던 어머니와 아버지를 기억한다. 릴리아는 말을 하는 어떤 정신적 통로가 있는데, 그것은 한번 배우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지금도 가끔 little 대신 riddle이라고 말하고, vent 대신 bent라고 말한다. 물론 억양은 전혀 어색하지 않기 때문에 옆에 있는 사람은 내가 순간적으로 생각의 흐름을 놓쳤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늘 두 언어의 위치를 바꾸는, 융합하는 conflate - 어쩌면 큰 불을 낸다conflagrate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 소리를 듣고 있다. 언어들끼리는 서로 비비고 마찰하는 게 너무 많아, 언제라도 불이 치솟을 위험이 있다. (350쪽)

당신이 나와 같은 사람일 경우, 당신은 동시에 많은 사람이 된다. 당신은 아버지이고, 독재자이고, 하인이고, 이 땅이 알고 있는 가장 기민한 배우다. 그런 사람들 역할을 하면서도 당신은 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순결한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434쪽)

이 말들의 도시.

우리는 이곳에 산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외침은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하는 언어로 이루어진다. 가장 이상한 합창곡. 우리는 상인 무리를 지나치며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간판에 주의를 기울인다. 모두가 성난 목소리로 극적으로 말을 한다. 완전히 시대착오다. 그들은 우리가 뭔가를 사거나, 우리가 가진 것을 소리쳐 팔거나 아니면 꺼지기를 바란다. 그 계속되는 외침은 우리가 여기 속해 있다는 것, 아니면 스스로 속하게 만들라는 것, 그것도 아니라면 꺼지라는 것이다. (5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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