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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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 권정생 / 양철북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책을 읽고 나서

 

 최근에 읽은 서간집이 괜찮은 느낌을 주었기에, 비슷한 형식인데도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동 문학가 '이오덕'과 '권정생'이 약 30년간 주고받은 편지는 이 책에서 시간순으로 나열되어 있었고, 출판사 측에서도 과도한 편집은 자제하고 원문 그대로 실으려는 노력이 보였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가장 사소한 구원』은 책으로 출간하기 위하여 특정한 주제를 이야기하며 스승과 제자와의 따뜻한 대화를 보여줬다면,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는 삶의 동반자인 두 문학가의 삶을 그대로 담은 느낌이지요. 어떤 작위적인 주제가 없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는 이 서간집은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통해서도 정다운 느낌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기지우(知己之友)라고 했던가요. 『강아지 똥』,『몽실 언니』 등, 평생을 어린이만을 위한 동화를 쓰며 살아갔던 권정생 작가님과 아동문학가이자 평론가, 교사였던 이오덕 선생님. 진정한 친구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분은 서로를 온 마음을 다해 걱정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갖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편지 한 통으로도 속마음을 다 알 정도로 가까운 인연이었고, 짧은 글 속에서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온전히 드러납니다. 조심스럽게 '선생님'이라고 서로를 칭하며, 서로의 문학을 존중하고, 어떤 문제가 있다면 세심하게 챙겨주기도 하지요 ("원고료 만 원 부칩니다"라는 말이 어찌나 뭉클하던지요). 또한, 권정생 작가의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하려고, 이오덕 선생이 많은 애를 쓰셨습니다. 권정생 작가는 자신의 많은 작품을 그와 논의하고, 이오덕 선생은 자기 일처럼 앞장서서 작품을 알리는 데 도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나라, 고국이었지만 권정생 작가에게 많은 외로움을 주게 했던 한국이란 땅에서, 이오덕의 존재란 어찌나 든든했을까요.

 

사실 처음에는, 짧은 글 (편지)가 어떠한 주제도 없이 묶여 있어 단숨에 읽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분들의 삶을 순서대로 따라가듯 천천히 읽다 보니, 내내 이상하고 두근두근한 감정으로 다가옵니다. 30년 동안 이어진 편지 속에는 한국 사회 속의 아동문학에 대한 따끔한 질타도. 가난과 고통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들도 등장하는데요. 마음을 담은 편지이기 때문일까요. 모든 이야기는 얇은 종이 속에서 묵직한 감정으로 전해집니다.

 

 아, 이 책을 읽으니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속에 있는 말들까지 싸악 비워줄 수 있는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일평생 마음 놓고 제 투정을 선생님 앞에서 지껄일 수가 있었다"는 권정생 선생의 말이 뭉클해지는 순간입니다.

 

 

 

Written by. 리니

한국 에세이/ 서간집/ 아름다운 편지/ 아동문학 

출생지가 남의 나라였던 저는 여지껏 고향조차 없는 외톨박이로 살아왔습니다. 아홉 살 때 찾아온 고국 땅이, 왜 그토록 정이 들지 않는지요?

나에게 한국이라는 조상의 나라가 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어머니의 무명 치마폭에서만이 느낄 수 있었을 뿐입니다. 소외당한 이방인이었습니다. 고국은 나에게 전쟁과 굶주림, 병마만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 위에 몸서리쳐지는 외로움을…….

누가 자기 나라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답니까? 나는 무던히도 나의 이 한국 땅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메말라진 흙 속에 물 한 방울 찾을 수 없어, 여지껏 목말라 허덕였습니다. 솔직히 저는 사람이 싫었습니다. 나 자신이 어린이가 되어 어린이와 함께 살다 죽겠습니다. 선생님만은 제 마음 이해해 주실 겝니다.

나라고 바보 아닌 이상 돈을 벌 줄 모르겠습니까? 돈이면 다아 되는 세상이 싫어, 나는 돈조차 싫었습니다. 돈 때문에 죄를 짓고, 하늘까지 부끄러워 못 보게 되면 어쩌겠어요? 내게 남은 건, 맑게 맑게 트인 푸른 빛 하늘 한 조각.

이오덕 선생님.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끼 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 (13쪽)

오늘도 종일 누웠다가 이제 일어났습니다. 하루 이틀 무리하고 나면 사흘쯤은 열에 시달려야 됩니다. 열이 오르면 음식 맛이 하나도 없어져요. 먹어야 살기 때문에 굶어서는 안 되지요. 아랫마을 가게에 가서 새끼 명태 백 원어치 사 왔습니다. 밥이든, 죽이든 넘어가는 데까지 삼키고 나면 `이제 살았다` 싶습니다.

지독하게도 살아왔다고 생각됩니다. 절대 남 보는 데서는 울지 않습니다. 아픈 척도 않습니다. 아픈 척, 슬픈 척, 해 봤댔자 알아주는 이 없으니까요. 도리어 업신여김받기가 십상이랍니다. 행복한 척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런 사람들이니까요.

병든 사람은 병든 사람만이 위로해줄 수 있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만이 도와줄 수 있답니다. 신 김치일망정, 쓴 된장일망정,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저를 찾아오는 가난한 이웃들을 저는 저버릴 수 없습니다. 제가 돈이 생기게 되면, 건강해진다면, 사회가 알아주는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많은 것을 잃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싫답니다. (55쪽)

과잉생산이란 과잉 소유욕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 절대 고루고루 잘살기 위한 방법이 아닙니다. 인간이 도대체 `생산`을 한다는 것이 잘못된 말일 것입니다. 생산은 어디까지나 자연이 만들어 낸 소산이며 인간은 다만 수확을 하는 것뿐입니다. 이 수확의 공정성에서 벗어나 많이 갖게 되면 그것은 도둑이며 강도가 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많이 가져도 된다는 권리는 누가 베풀어 준 것입니까? 하느님이 이 지구를 한자리에 고정시키지 않고 움직여 돌게 한 것은 고루고루 가지게 하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자연을 파괴하는 요인이 바로 많이 갖는 과잉 소유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한 그릇 이상의 밥을 먹으면 다른 한 사람의 몫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입니다. 내가 넓은 토지를 소유할 때, 내가 큰 집을 가지게 될 때, 내 이웃은 그만큼 좁은 곳으로 쫓겨나야 하는 것입니다. (188쪽)

우리 아동문학은 지금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아동문학이 아이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잡지 편집자, 일반 문학인들에게까지 멸시받는 판입니다. 아동문학 작가들은 아동문학에 대한 신념을 잃고 성인 문학의 뒤를 따르려고 하여 그 흉내를 내면서 문인 행세를 하는 경향이 있고, 성인 문학지 한 귀퉁이에 작품이 실리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게 되었으니 실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동문학이 문학으로서 대접을 못 받는 까닭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그중에서 작가, 시인들의 잘못도 적지 않습니다. 아동문학의 정체성과 위기는 오직 우리 문학인들의 반성과 진지한 노력으로서만 타개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재미있게 읽히면서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써서 독자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한편 문단과 사회에는 우리 아동문학을 옹호하고 그 존재를 과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5쪽)

어린이를 미숙하고 유치한 존재로 보고 있듯이 아동문학을 그렇게 가볍게 취급하고 있으니 주목할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소설이나 시를 쓰는 사람들이 여가 선용이나 취미로 하지 않듯이, 우리 아동문학도 온 생애를 바쳐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같이 병들고 무능한 인간이 아닌, 건강하고 역량 있는 작가가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한 편의 동화를 빚어내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뜨거운 작가가 나와야만이, 아동문학이 구원을 받고 또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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