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슈퍼히어로
김보영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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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슈퍼 히어로』 진산, dcdc, 좌백 외 6명 / 황금가지

유쾌함과 서글픔이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히어로

 

 

 

 

 ▒ 책을 읽고 나서.

 

 <어벤저스> 시리즈가 또 한 번 히어로 무비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재미도 재미지만, 히어로 무비는 대개 중박은 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시리즈물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데다가, 잠시나마 대리만족을 할 수 있는 화끈한 영화를 사람들은 보고 싶어 하죠. 각박한 현실이기에 사람들은 더욱 히어로물과 액션을 찾습니다. 뻥뻥, 터지는 영상의 통쾌함이 주는 만족이 의외로 크니까요. 마찬가지로, 저도 히어로물을 좋아합니다. 특히 배트맨 시리즈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비교적 어두운 배경의 사회 현실에 액션과 숨겨진 철학이 잘 버무려져 있어서 몰입감이 더욱 커지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히어로를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이웃집 슈퍼 히어로』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각기 다른 개성으로 펼쳐낸 단편 소설집입니다. '히어로물' 시리즈죠. 독특한 표지와 '이웃집 슈퍼 히어로'라는 제목이 B급 정서를 묘하게 풍기고 있어요.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도 하나같이 얼마나 '똘끼작렬'인지, 히어로의 성향도, 모습도 가지각색으로 드러납니다. 초인이 되기 위해 무언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설정의 <존재의 비용>, 여성의 고충인 '생리'로 독특한 여성 히어로를 탄생시킨 <월간영웅홍양전>, '배트맨' 시리즈를 무협물로 패러디한 <편복협과 옥나찰>, 초인의 존재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말하는 <초인은 지금>, 히어로의 존재를 빌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노병들> 등,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했을까 놀랄 정도로 독특한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품이 히어로의 이면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없는 막강한 능력이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깨에 엄청난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초인들의 모습, 초인을 필요로 하는 사회 현실, 그리고 초인의 개입 이후 더욱 불행해지는 세상, 여기저기 힘을 쓰느라 얻어터져도 하소연할 데 없는 초인들의 고충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구성을 참 잘했다 느껴지는 것이, 초인의 탄생 비화를 알려주는 첫 작품부터,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마지막 작품까지 어느 정도의 흐름을 맞춘 듯이 느껴지더군요.  통쾌함에 웃다가, 다시 또 심각해지다가, 히어로의 감정에 몰입하기도 하며 신나게 읽었습니다. 

테러리스트는 무자비한 폭행에서 벗어나려고 바닥을 질질 기어갔지만요. 음, 그게 될 상대가 아니더라고요. 영자 씨는 테러리스트의 곰인형 탈의 머리 부분을 벗겨다가 테러리스트의 머리에다 던져 맞췄어요.

"마…… 말도 안 돼 …… 데이터에 따르면 홍양, 너의 힘이 이렇게나 강할 리가 없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강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지금은 ……?"

"이틀째다, 시발놈아!" 영자 씨의 외침에 테러리스트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못한 것 같은데도 그 박력에 그만 그렇구나 넘어가더라고요. 저는 알거든요. 명복을 빌어주었죠. 이틀째라잖아요. (71p, 월간영웅홍양전 - dcdc)

 

 

 참 웃긴 것은, 히어로의 이면과 그들이 짊어진 무게를 그리고 있는 작품들이 묘하게 공감되면서도, 저는 스펙타클하게 뻥뻥- 터지는 작품들이 제일 기억에 남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월간영웅홍양전>이 민감할 수 있는 주제면서도, 굉장히 살짝살짝 꺾어서 재밌게 표현한 것이 유쾌하고 좋았습니다. 그리고 히어로를 쫓는 경찰, 그들을 피하는 히어로를 그린 <선과 선>, 살짝 서글픈 분위기를 자아냈던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도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맞물려 더욱 공감이 가는 단편이었습니다. 짧지만 강력한 주제를 내포하고 있었죠.

 ​내가 안 왔으면 여기서 며칠을 있었을까. 아니, 몇 달을 있었을까. 숨이 다하도록 버텼을 거다. 숨이 다하고도 버텼을 거다. 이대로 파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을 거다. 내 뒤로 아무도 오지 않았겠지. 번개가 사람 다 구했다는 속보나 한 줄 나가고, 영웅 만들어 줄 궁리나 하다가 덮어버렸을 것이다. 사건 키우지 않으려고 실종자 수색도 끝까지 안 했겠지. 애를 잃은 엄마가 법원 앞에서 시위를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거다. 거기 서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할 줄을 안다. 꽃밭이나 차도 한 번만 잘못 밟아도 범법자로 착실히 집어넣어 오지 않았던가. 집안에 초인 있었으면 시선도 곱지 않을 거다. 혼자 일 도맡아 하다 뒤처리 못한 일만 들이대도 줄줄이 엮여 나올걸. (327p,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 - 김보영)

​ 통쾌함과 서글픔이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히어로를 그린 『이웃집 슈퍼 히어로』, 생각보다 조금 어두웠고 현실이 현실인 만큼 암울한 주제도 담겨 있었지만, '히어로물'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엮어낸 이 책이 참 신선하고 재밌었습니다. 몇몇 작품은 장편으로 계약을 맺기도 했다는데, 더욱 풍성한 재미를 안겨줄 '한국형 히어로 소설'을 기대합니다.

 ​

 

 

Written by. 리니

한국 소설, 단편 소설/ SF 환상 문학/ 히어로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삶이 이토록 팍팍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이 잘못된 게 틀림없다. 이 부조리를 어떻게든 해야 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요 사이는 자기 소개서를 쓰다가도 백일몽을 종종 꾼다. 나에게 텔레포트의 능력이 있다면, 나에게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여기 처음 도착했을 때도 그런 백일몽인 줄 알았다. 운운.

하아. 결국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나는 한숨을 쉬고야 말았다.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쯤 결기 비슷한 거라도 보이던 그가 내 한숨 소리에 어깨를 움츠렸다.

"어, 제 생각이 이상한가요?"

"아뇨, 아뇨."

이상하지 않지. 전혀 이상하지 않아. 그런 것들에 부조리함을 느끼는 것도, 비범한 능력을 얻어 악의 축들을 때려잡으면 이 모든 부조리가 해결될 거라는 백일몽을 꾸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그런데 그게 문제야, 이 사람아.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 당연하다는 거.

그게 당신의 인생을 평범 속에 가두고, 그러므로 당신의 존재는 평범을 넘어설 수 없는 거야. 초인이 되기 위해 지불할 수 있는 비범한 무엇이 없다고. (16p, 존재의 비용 - 진산)

"올 것이 왔군요."

그녀가 말했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추모비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많은 기자들이 보도 사진이나 방송 자료화면을 확보하러 서울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추모비는 좋은 자료화면일 것이다. 기자 몇 명은 벌써 그녀를 알아본 눈빛이었다.

투표하셨어요? 기자들은 성급하게 외쳤다.

"나는 미성년자라 투표권이 없는데……."

그녀는 중얼거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도망치고 싶어요.` (180p, 초인은 지금 - 김이환)

처음에는 경찰이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잡으려고 드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경찰이란 기존의 틀을 수호하는 존재니까.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그렇게 되뇌었다. 나는 경찰이 나쁜 사람만 잡는다고 믿는 순진한 어린아이가 아니고,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쯤은 각오하고 있었다고, 경찰이나 언론이 그를 받아들이지 못해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꽤 많은 언론이 지훈을 좋게 보게 된 지금도, 경찰 중에서도 상당수가 한숨을 내쉬며 그의 존재를 눈감게 된 지금도 임 형사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게 가끔은 정말 짜증이 났다. (213p, 선과 선 - 이수현)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누가 잘못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책임자를 추궁하고 흑막을 찾는다. 하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 일은 누가 잘못했을 때가 아니라 잘한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에 일어난다. 경로에 줄 서 있는 수백 수천의 사람 중 그 누구도, 아무도.

뒷돈도 있고 해먹은 놈도 있겠지만 밝히려면 한 세월일 거다. 형동생 하는 사이며 남의 목숨줄이 제 목숨줄이라 조개같이 쉬쉬한다.

뿔 달고 연두색 옷 입은 놈이 반짝반짝하며 날아와 내가 그랬지롱 내가 했으니 나만 가두면 되지롱 하고 다녀주기라도 하면 나도 얼마나 일하기 편할까? (295p,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 - 김보영)

세상을 제대로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힘이 필요했다. 힘은 가만히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떼를 쓰는 사람들에게 주어져서도 안 되었다. 당연히 잘못될 까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는 사람들이 더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옳고 그른 것은 변하지 않고 올곧게 존재하고 있었다. (363p, 노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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