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사랑한 꽃들 - 33편의 한국문학 속 야생화이야기
김민철 지음 / 샘터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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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사랑한 꽃들』 김민철 / 샘터

문학작품을 더욱 피어나게 하는 꽃들의 향연







 ▒ 책을 읽고 나서.


 두 사람이 함께 걷다가 같은 풍경을 본다. 한 사람은 "목련이 예쁘게 피었네" 혹은 "어머, 저 가랑코에 색이 정말 화려하다."라고 말한다. 다른 한 사람은 그저 "꽃이 예쁘다."라고 말한다. 물론 각자의 관심사가 다를 수 있지만, 이는 커다란 차이를 준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마주했을 때 두 눈으로 확인하고 감탄하는 것, 그 재미는 '모르고' 감상했을 때보다 몇 배는 커진다. 이 두 사람의 경우를 생각했을 때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후자에 속한다. 다양한 야생화와 식물들을 알고 싶긴 하지만, 그것을 찾아보고 눈에 담아 기억하기엔 관심이 부족하고 세심하지 못한 탓이다.



 꽃(혹은 식물)과 문학, 이 둘은 정말 짝을 이룬 것처럼 잘 맞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들이다. 김훈의『내 젊은 날의 숲』에서는 수많은 식물, 그리고 식물들이 연상시키는 의성어들로 풍성하고 유려한 문장들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문학작품을 구성하는 소재로서 세상의 무엇 하나 쓸모없는 것들이 없지만, '꽃'을 포함하는 '식물'들은 특히나 한글의 아름다움을 화려하게 뽐낼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알고 싶어진다.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야생화들과 이름 모를 식물들,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등 유명한 것들 말고는 내 눈으로 구별할 수 없는 튼튼한 나무들을.



 이 책의 작가는 이전에 『문학 속에 핀 꽃들』이라는 책으로, 꽃과 문학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표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더욱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로 책장을 꾸몄다.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 은희경의 <새의 선물>, 권정생의 <몽실 언니> 등 비교적 잘 알려진 작품들을 포함하여, 작가의 이름 또한 조금 생소하지만, 꽃에 관한 아름다운 문장이 깃들어있는 작품들도 모아두었다. '좋은 문장들을 쓰고 싶으면 꽃에 관해서 좀 알아두자'는 개인적인 다짐을 한 적이 있지만, 이제는 그 다짐을 더욱 굳게 지켜야 하겠다 싶을 정도로 한국 문학 속에는 수많은 꽃이 만발해있다.




3월의 시작과 함께, 나는 첫발이 미끄러지듯 새 학기의 시작이 주는 쥐꼬리만 한 스트레스를 조르바에게 털어놓았다. (중략) 그래서 그날은 조금 과하게 술을 마셨다. 그럴 수 있는 일이었고 물론 그녀와 함께였다. 다음 날엔 그녀가 졸업 학기의 시작이 주는 쥐똥만 한 스트레스를 나에게 털어놓았다. 이거야 원, 다음 날 학교를 결석할 만큼의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자꾸만 생겨났다. 나와 그녀에게 아무 일이 없으면 조르바가 쥐며느리만 한 스트레스를 털어놓고, 마치 왈츠의 리듬처럼 그다음 날엔 조르바의 친구가 쥐방울 만한 스트레스를 털어놓았다. (중략) 결국 한 그루의 쥐똥나무만 한 스트레스가 서로의 마음속에 자라나 버렸고, 급기야 서로가 어우러진 울창한 쥐똥나무의 숲이 형성되어 버렸다. 결국 그해의 봄은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36p,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단순히 그 꽃(그리고 식물들)을 묘사하는 장면만을 상상할 수 있지만, 작가들의 개성과 글솜씨로 이런 문장들도 등장한다. 쥐꼬리만 한 스트레스, 쥐똥만 한 스트레스가 모여서 한 그루의 쥐똥나무만 한 스트레스를 이뤘다는 표현은 기발하고도 매력적이다. 독특하기로 잘 알려진 '박민규' 작가의 글이지만, 과연 이래서 '작가'인 듯싶다.




 



 

『문학이 사랑한 꽃들』은 마치 한편의 독서 에세이를 읽는 것도 같고, 가볍게 쓰인 식물도감을 보는 것도 같다. 책 속에 담긴 우리 문학 작품들은 풍성했고 읽어보고 싶은 것들도 많았지만,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것은 각 장의 내용이 조금 짧았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쓰인 작가의 이력 등은 굳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문학'과 '꽃'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기대가 커서 책은 오히려 조금 가볍게 여겨졌지만, 뒤로 갈수록 쌓이는 주옥같은 작품들이 책에 대한 만족도를 올려 주었다. 현재 출간된 많은 독서 에세이 (문학 에세이)들 중에서 특별한 소재로 중심을 잡고 있는 것도 큰 이점이라고 생각한다.





Written by. 리니

한국 에세이/ 문학, 독서 에세이/ 야생화, 꽃

서평단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그날 마음 사람들과 아버지는, 용내천을 가로질러 쓰러져 있는 커다란 용수버드나무를 발견했다. 금방 잘린 듯한 나무 밑동 곁에는, 손잡이에 핏물이 밴 낡은 톱 한 자루가 버려져 있었다. 그날을 회상할 때마다 어머니는 깊이 파인 손바닥의 상처를 들여다보곤 했다.
어머니가 용수버드나무를 이용해 용내천을 건너 읍내로 내달릴때 아이는 소생했다. 미친 듯 달린 어머니의 몸이 아이의 횡격막을 자극한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부둥켜 안고 진창에 주저앉아 이년아, 이년아, 하고 울었다. 간수를 얻기 위해 어둠과 습기를 빨아들인 소금가마니처럼, 어머니는 어둠과 습기를 기꺼이 받아들여 자식들을 사랑으로 지켜온 것이다. (78p, 구효서 <소금가마니>)

<옛 우물>도 하나하나 따지며 의미를 부여하거나 페미니즘을 의식할 필요 없이, 그냥 중년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좋은 소설로 읽어도 무방할 듯 싶다. 주인공이 나무를 껴안고 희열을 느끼는 장면 등도, `그`의 죽음의 충격으로 생긴, 다소 일탈적인 행동 중 하나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결혼을 해본 남자라면, 여자를 사귀어 본 사람이라면 여자들이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심리 상태에 빠져 다소 엉뚱한 일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107p, 오정희 <옛 우물>)

먼저 그녀의 어깨까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목덜미에서부터 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주와 빨강의 반쯤 열린 꽃봉오리들이 어깨와 등으로 흐드러지고, 가느다란 줄기들은 옆구리를 따라 흘러내렸다. 오른쪽 엉덩이의 둔덕에 이르러 자줏빛 꽃은 만개해, 샛노란 암술을 도톰하게 내밀었다. 몽고반점이 있는 왼쪽 엉덩이는 여백으로 남겼다. (중략) 그는 이번에는 노랑과 흰빛으로 그녀의 쇄골부터 가슴까지 커다란 꽃송이를 그렸다. 등 쪽이 밤의 꽃들이었다면, 가슴 쪽은 찬란한 한낮의 꽃들이었다. 주황색 원추리는 오목한 배에 피어났고, 허벅지로는 크고 작은 황금빛 꽃잎들이 분분히 떨어져 내렸다. (292p, 한강 <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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