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패밀리
고은규 지음 / 작가정신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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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패밀리』 고은규 / 작가정신

 알바도 '갑'일 때가 있었다

 

 


 

 

 

 

  ▒ 책을 읽고 나서.

 

 갑질 논란이 한창이다. 어느 높으시다는 분의 기상천외한 '땅콩'부터, 이름만 번지르르한 '열정 페이', 최저 시급을 아예 무시하고 되레 화를 낸다는 점주의 에피소드까지. 그야말로 갑질의 시대가 틀림없다. 이런 갑질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시간제', '파트타임'이라고도 불리는 '알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우습게도, 알바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었다. 신입생 때, 처음으로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일하고 싶은 곳에 전화를 걸고 면접을 봤다. 월급이 다달이 이체될, 내 통장과 연결된 체크카드를 처음으로 만들던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때는 내가 직접 일해서 번 돈을 쓴다는 뿌듯함에 신 나서 일을 했었지만, 돌아보면 나도 갑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질 못했던 것 같다. 어떤 일터에서는 사장의 꼼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어떤 일터는 소위 말해 '꿀알바'였지만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기도 했다. 사실 뭐 이런 것들이야 파다하게 있는 일이니 그렇게 열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알바의 설움은 언제 제일 폭발하는가, 궁금할 것이다. 바로, 손님의 '갑질'을 마주할 때 폭발한다. 대기업이라는 조직 아래, 수많은 알바들이 모여 일하는 그곳은 '고객이 왕이다'라는 서비스를 받기 위한 사람들도 여럿 모여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이 유니폼만 벗으면 니들과 똑같은 인간인데, 대체 너희들은 뭔 대우를 받고 싶어서 클레임을 걸고, 뭐를 집어던지고, 기업에 화를 낼 것을 알바에게 화를 내느냐" 하고 속으로 울분을 터뜨리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옆에 있는 누군가는 울기도 한다. 그래, 어느 정도 품위는 있는 알바라지만, 더러워서 일 못하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이 답답하고 울분 넘치는 갑질을 과연, 우리가 어떤 자리에 올랐을 때 안 한다는 보장이 있을까?

선배로서의 텃세, 고객으로서의 클레임……. 비판하곤 하지만 과연 내 손에 들어왔을 때 그 특권을 과연 손에 잡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낼 수 있을까?

 


『알바 패밀리』는 가족들이 모두 알바로 연명하는 이야기로써, 불안정한 한국 사회와 안타까운 현실만을 다룰 것 같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갑질의 주체가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 또한 담고 있다. '을'의 위치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는 가족들은 소비자의 위치에 설 때 '완벽한 갑'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마뜩잖게 흘러갔다. 자칫하면 끊겨버릴 수도세를 걱정하며 온 가족이 알바에 매달리게 되었고, 엄마는 고객들의 핀잔에 스마일 마크를 달고 웃으며 넘긴다. 상품을 구매하고 잠깐 써본 뒤 즉시 반품하는 행위로 '리뷰왕'의 위세를 떨쳤던 '로라'는 결국 불공정 소비자로 낙인찍히고, 퀄리티 좋은 가구를 소신 있게 만들던 아버지는 이와 비슷하게 소비자의 '반품 행렬'로 망한다. 이 어찌 아이러니한 반복일까.

 ​이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한 명품샵에서는 약간의 불량품을 누군가에게 공짜로 주기보다는 아예 태워버리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처리 업무를 맡은 '로민'은 세속을 싫어하는 노숙자 '버몬트'에게 명품 옷을 선물한다. '버몬트'는 그것이 명품 옷인지도 모른 채, 이미 한몸이 되었다며 벗기를 거부한다. 또한, '로라'는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매장 앞으로 몰려드는 전단을 치우느라 골머리를 앓는데, 그 전단을 돌리는 사람들은 바로 그 전 알바에서 잘려버린 '엄마'와 '로민'이다. 이 어찌 아이러니한 반복이란 말인가!

 

 

 『알바 패밀리』는 자칫 통속적이거나 식상해버릴 법한 사회에 대한 비판을, 아이러니한 상황들에 맛깔스럽게 버무려 완성된 소설이다. 그러나 이 요란 법석한 소설은 어딘지 모르게 유쾌발랄하게 풀어냈음에도 쉬이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해피엔딩의 결말이어도 그 가족들이 과연 잘 살았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그냥 버릴지언정 거지에게는 줄 수 없는 명품샵의 '갑질'처럼, 우리 사회는 참 잔인하다. '갑'이 '을'이 되고, 또다시 '을'이 '갑'이 되는 '갑질'의 굴레 (이것은 때로 '갑'의 횡포에 대한 울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짤리는 대신에 또다시 잘 구할 수 있어, 벗어나지 못하는 '알바'의 굴레는 언제 풀어질 수 있는 것인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나마 해학을 주는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아니면 이런 책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회를 불행으로 여겨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Written by. 리니

한국소설/ 가족, 사회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엄마는 이것저것 재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바퀴벌레 같은 것도 맨손으로 때려잡았다. 나처럼 호들갑을 떨며 바퀴약을 뿌리거나 오빠처럼 S 출판사에서 나온 베개만 한 사전을 던지는 볼썽사나운 짓은 하지 않았다. 목표물을 발견하면 씩씩하게 몸을 날려 단숨에 처리했다. 혹시라도 싱크대 구석으로 그것들이 도주라도 하는 날이면 부리나케 달려가 빨간색 공구함을 들고 왔다. 그리고 몇 개의 연장을 꺼내 순식간에 싱크대를 분해했다. 엄마의 육감대로 싱크대 뒤편이 놈들의 아지트였다. 깨 떨어지듯 우드드드 쏟아져나오는 바퀴벌레를 보고 내가 숨넘어갈 듯 비명을 지르면 엄마는 나를 안심시킨 후 그놈들을 맨손으로 응징했다.
그랬던 엄마가 마트에 나가면서부터 달라졌다. 일이 끝나 집에 돌아오면 소파에 길게 몸을 늘어뜨리고 꼼짝하지 않았다. 바퀴벌레가 떼 지어 거실에서 리셉션을 벌여도 멍한 얼굴로 바라만 보겠지. 그러다 기운 없는 목소리로 바퀴벌레한테 물을 것이다. 바퀴벌레야, 내 인생은 왜 이런 거니? (64p)

나는 상상한다. 내가 쥐고 있는 이 밀걸레가 요술 할멈의 빗자루라면 얼마나 좋을까. 시급 따위 잊고 싶다. 당장이라도 이걸 타고 보라보라를 탈출하고 싶어진다. 왜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낙원이면서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되어야 하는 거지? 그것보다 누가 감히 낙원과 지옥을 만들어 놓은 걸까? 심술스러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보라보라 스포츠센터에 로고송이 흐른다.
행복을 주는 보라보라 스포츠센터, 회원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손이 의지와 상관없이 여자들의 몸에서 떨어진 물방울들을 기계적으로 닦아낸다. 리시버가 귀에 꽂힌 것처럼 사장의 목소리가 은밀하게 들리는 것 같다. 고객님이 쾌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깨끗하게 청소하라. 청소하라. 그들이 만족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봉사하라. 봉사하라. 누군가에게 내 두 팔과 두 다리가 조종당하고 제어당하고 있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낚싯줄 같은 것이 나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모양이다. 밀걸레다, 나는 밀걸레다……. (84p)

"엄마, 뭐 해. 날려버려!"
카트를 밀던 사람들과 엄마에게 핀잔을 주던 손님들이 동작을 멈추고 내 쪽으로 고개를 비튼다. 그런데 엄마만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 화가 나면 폭풍우를 몰고 올 수도 있는 사람이 우리 엄마다. 당신은 이제 죽었어. 그런데 엄마는 왜 저러나.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일이 익숙지 않아서요. 오래 기다리게 해서 정말정말 죄송합니다……."
"똑바로 하세요."
여자가 몇 마디 더 투덜대고는 총총히 사라진다. 나는 화가 나서 음료수 병을 계산대 위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는다.
"엄마, 왜 참았어? 진짜 실망이야."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엄마 ……."
엄마는 사라지도 마트의 친절 마크가 방긋거린다.
누굴까. 엄마의 표정을 가져가 버린 사람은. (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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