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삼킨 소녀 스토리콜렉터 28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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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삼킨 소녀』 넬레 노이하우스 / 북로드

뜨겁고 잔혹하고 격렬한 한 소녀의 성장통​

 

 

  

  ▒ 책을 읽고 나서.

 

  여름과 사춘기는 닮았다. 느끼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찾아와 온몸을 지배한다는 점,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어 눈부신 시간을 만든다는 점이 닮았다. 예를 들면 겨울에는 여름의 찌는듯한 더위를 상상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춘기를 지나지 않은 소년 소녀들은 그것이 언제 올지, 얼마만큼의 타격을 줄지,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킬지 상상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뜨거운 여름과 사춘기를 지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견뎠는지' 다시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둘의 차이점이라면 여름은 누군가에겐 시간이 흐르는 것이 두려울 만큼의 행복한 기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 그렇지만 사춘기는 대개 씁쓸한 기억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여름을 삼켰다.'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 말해야 할까. 소설은 사춘기의 씁쓸함보다 더한 씁쓸함을 가져다주고 있다. 보통과는 거리가 먼, 좋은 쪽으로는 독특하고 나쁜 쪽으로는 범상치 않은 소녀의 성장일기를 다루고 있는 『여름을 삼킨 소녀』는 딱 한여름의 바다에서 뜨거운 빛을 안고 있는 듯한 격렬한 소설이다.

  나 자신이 설명할 수 없는 소년들의 이야기를 빼고, 소녀들의 사춘기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어떤 것이 있을까. 몸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성장, 성에 대한 은밀한 관심, 첫사랑의 야릇한 감정, 찝찝함과 두려움부터 느끼는 초경, 그리고 심리적인 스트레스 정도일 것이다.

사람은 어느 순간 갑자기 늙는다고들 한다.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면 전날보다 10년은 더 나이를 먹은 듯한 느낌이 든다는 거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돌아갔을 때, 나는 그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얼굴에 주름이 지거나 한 건 아니지만, 내가 어쩐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동안 한 방향으로 느릿하게 흐르던 삶의 강물이 방향과 속도를 바꾸었다. 곳곳에 위험한 소용돌이와 예측할 수 없는 급류가 숨어 있었다. (85p)

​ 이런 게 사춘기의 감정일까? 정확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일상 속에 일어나는 작은 일들을 그것이 실제 인생에 주는 타격보다 훨씬 크게 받아들인다는 것, 하나하나 알아가는 자신을 마치 어른이 된 것처럼 여긴다는 것, 무언가 달라진 감정을, 어딘가로 튀고 싶다거나 하는 예측할 수 없는 혼란을 느낀다는 것. 소녀들은 사춘기 속에 다양한 일들을 통해 느끼고 성장해 가고,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져 간다. 『여름을 삼킨 소녀』는 이때의 감정만큼은 세밀하게 담아냈다.

 하지만, 소설이 목표하고 있는 것들과 아름다운 분위기에 비해, 사건은 너무 막무가내로 끌고 간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마을에 영향력 있는 부유한 양부모님 밑에서 자라나는 주인공 셰리든이 겪는 성장통을 그리고 있는 소설은 격렬하다 못해 파격적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 '성(性)'과 '사랑'에 대해 피어나는 호기심 속에 가족의 비밀을 녹여내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듯 보이지만, 소녀의 호기심이 지나치니 '방종'이라 할 만큼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모든 소녀가 자신에겐 특별한 사춘기를 겪지만, 이 지독한 혼란을 굳이 성적인 면으로만 표현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세밀하게 묘사하진 않지만, 아예 이야기의 중심이 아예 그쪽에 가 있어 불편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과 배경이 있긴 했지만, 이 소녀의 여름은 왜 이토록 가혹하고 잔인할 수밖에 없던 것인가.

  남다른 성장통을 겪음에서 소설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올리게도 했지만, 콜필드의 특별한 타락에 비해 소녀 셰리든은 목표하는 것 없이 주야장천 "힘들어, 내 맘대로 할래." 하는 식이다. 지나버린 사춘기가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은 '풋풋함'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뜨거운 마음의 열병 속에서도 자신만의 한계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뒤늦게 자신이 옳지 못한 행동을 깨닫고, 자신이 아직도 아이였음을 알게 된대도 어쩌나. 나의 마음속에는 그녀의 '방종'이 너무 깊게 남아 버렸다. 정도를 넘은 호기심은 사춘기의 일탈에 포함될 수 없다. 그것은 지우고 싶은 '과거'일 뿐이다.

 

 

​Written by. 리니

독일 소설/ 성장소설/ 스토리 콜렉터 28 

 

 

대니와 나의 밀회는 물빛 별장에서 아버지에게 들킬 뻔한 그날 갑작스러운 종말을 맞았다. 대니는 자신의 남성성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이성을 찾은 모양이었다. 그는 나를 갖고 싶기는 하지만 인생 종 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이제 다시 밖에서 일을 해야겠다고 짤막하게 말했다. 우리 사이에는 육체적인 욕구밖에 없었으므로 일방적으로 관계가 끝났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이사벨라 고모할머니가 사랑에 관해 했던 마을 떠올렸다.

여름이 ​끝날 무렵, 대니와 나는 작별 인사를 했다. 키스도 없었다. 그의 빨간 트럭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를 그리워하지 않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84p)

엄마와 나 사이는 늘 전투 상태였고, 나는 늘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크고 작은 싸움에서 승자는 언제나 엄마였다. 나에 대한 멸시와 트집이 엄마에게는 생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묘약이자, 단조로운 일상에서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기분 전환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마가 오빠들이나 마사 아줌마를 괴롭히지 않는 이유가 시비를 걸어도 대꾸하지 않아서 재미가 덜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흥분하지 않고, 불편해도 그냥 무시하고, 특정한 일들은 변화시킬 수 없음을 인정하고 복종하는 척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물론 행동에 옮기기는 힘들었지만, 오늘 아침 식탁에서 엄마의 사악함이 내 느긋함에 부딪쳐 침몰하는 것을 보자 기분이 엄청나게 좋았다. (109p)

내가 상상하는 엄마의 사악함은 초록색이다. 어떤 때는 액체, 또 어떤 때는 기체고, 그 강도에 따라 색깔이 조금씩 달라진다. 일상적인 사소한 심술은 밝은 연두색이다. 더 사악한 공격, 그러니까 내게 굴욕감을 안기기 위해 신중하게 잔 음험한 계략은 번쩍이는 형광 초록색이다. (114p)

"아웃사이더 역할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나."

그의 말에 나는 경멸하듯 콧방귀를 뀌고는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시는 것 같네요. 내 인생에 신경 쓰지 마세요. 무리를 벗어난 양 한 마리가 목사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목사님께는 다른 양들이 많은데."

"하지만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건 길 잃은 양이야."

나는 코웃음을 쳤다. "나는 길을 잃은 게 아니에요. 목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요."

그가 내 무례함에 화내며 가버릴 거라고 내심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

"신을 믿니?" 놀랍게도 그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와 눈높이를 맞추려고 층계 제일 아래칸에 올라섰다. "난 신이 두렵지 않아요. 목사님이 한번 설명해보실래요? 신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두 살짜리 아이를 고아로 만들어 애정이 없는 가정에 쑤셔 넣었을까요? 그리고 신은 왜 나에게 이곳에서는 전혀 필요도 없는 재능을 주었을까요? 필요 없는 정도가 아니라 저주를 받는 재능을 말이에요." (3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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