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한혜경 지음 / 샘터사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한혜경 / 샘터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 사회,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 책을 읽고 나서.

 

  "다행입니다. 다행입니다." 노인은 그 말을 반복했다. 그 말은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정확히 좌표를 찍어 주었다. 남자가 티켓을 끊어 준 노인의 마지막 목적지는 죽을 날이 머지않은 마음씨 좋은 동네 할아버지였다. 거기다가 무성욕자이기까지 한. 진이 남자에게 노인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짐작이 되었다. 추측일 수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직접 말하지만 않았지 남자는 노인에게 고맙다고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뭔가 많이 아는 남자거나 아니면 너무 모르는 남자였다.

 

 김기창의 소설 『모나코』에서 주인공 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짝과 함께 붙어 있었다는 것을 보고 "다행입니다."라고 하는 남자의 말에서 자신을 무성적인 존재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좌절감에 젖어들고 있지요. 돈도 많고 능력 좋고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노인이었지만, 사회는 자연스럽게 노인을 고립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외로운 죽음, 고독사를 맞게 되죠. 이번에 읽은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의 서문에서도 이 소설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어 가는 한국 사회의 현실과 노인의 고독감과 무력감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고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품위 있는' 노년의 삶을 갈망합니다. 노년의 풍요롭고 편안한 생활을 위해서, 다들 젊을 때부터 끊임없이 일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죠. 하지만 개인의 철저한 준비와 '돈'이 있다고 해서 오로지 행복할 수 있을까요? 100세 시대로 들어선 지금, 소설『모나코』도 더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황혼이혼은 점차 늘어나고 있고, 돈 있는 노인들은 자식들의 등쌀을 받고 살기도 하고, 고독사와 노노(老老) 간병으로 인한 자살률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유독 세월의 흐름에 대한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 드는 게 무섭고, 은퇴 후 초라해진 모습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이른 정년으로 일을 그만두고나서도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몇십년을 더 일하며 사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렇듯 개인적인 은퇴 준비, 일을 하고 돈을 모으는데는 다들 치열하고 열심히 살고 있지만, 사회 자체의 '준비'가 따라주질 않는다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년에 대한 불안감과 부담감이 더욱 늘어나는 것이죠.

 책 속에 나온 에피소드 중에 정말로 놀랐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동네에서 '노인 요양 시설' 입주를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는 소식이었죠. 사람들은 이 시설이 들어서면 "삶의 질이 떨어진다."라며 반대했다고 합니다. "노인들이 죽어나가면 마을이 망한다"고까지 이야기하면서 말이죠. 불과 1년도 안된 최근의 일이라는 게 참 기가 막힙니다. 저자는 이 일에 대하여 '노인복지시설'에 대한 지식과 인식 자체가 자리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 동네에 설치하고자 했던 시설은 노인들을 위한 주간 보호 시설이었습니다. "경증 치매나 가벼운 중풍을 앓는 노인들이 낮에만 머무르면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시설"이지요. 홀로 있는 노인들이나 돌볼 사람이 외출하는 낮 시간에 노인들의 활동성을 위해서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거죠. 마치 학교처럼요. 책의 사례를 보면 이런 시설들이 노인들에게 주는 만족감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무기력한 노인들이 사람들과 교류하고 뜻깊은 일을 하며 '살아있음'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공간이지요. 물론 요양 시설에 가지 않고 가족들과 집에서 늙어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겠지만, 이런 시설들이 노인들의 고독생과 고독사를 막을 수 있는 차선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도시와 멀리 떨어진 산골에 실버타운을 건설하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인들은 즐거운 삶의 터전을 원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살던 공간에서 멀리 떨어지길 원치 않는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발상의 전환이죠.​ 

 

 위의 에피소드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노인 요양 시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우리도 언젠가 늙게 된다."라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시간은 천천히 갈 것이라고, 당신의 노년은 무조건 품위 있고 우아할 것이라고 정녕 믿고 있는 것일까요?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들은 더욱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노인들은 조금 더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가족 간에도 협상할 수 있는 냉철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사회는 '노인들이 즐겁게 생을 보낼 수 있는' 복지시설이나 교류의 장을 넓혀 나가야 하며, 개개인 또한 '자신이 늙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만 한다고 말이지요.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는 우리 사회는, '돈'이 아닌 다른 의미의 '준비'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Written by. 리니

한국 에세이/ 자기계발/ 은퇴 설계 

서포터즈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우리는 돈 앞에서, 가족 앞에서 항상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나만은, 혹은 내 자식만은 돈 앞에서 의연할 수 있다고 자신해서도 안 된다. 돈을 둘러싼 갈등과 싸움이 우리 집에서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도 위험하다. 자식들은 무심코 꺼내는 돈 얘기라도 부모에게는 심리적 압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부모의 태도가 아닐까. 아무리 자식이라도 나누고 싶지 않은 것을 요구할 때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50p)

밥 같이 먹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점도 더불어 강조하고 싶다. 농촌 어르신의 삶이 도시 어르신보다 풍성해 보이는 이유도 바로 식탁을 나누기 때문이다. 농촌에 갈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게 바로 온 동네 사람이 둘러앉아 식사하는 모습이다. 각자 농사일을 하다가도 점심때가 되면 마을 회관에 모두 모여 함께 식사한다. 저녁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농촌 어르신들이 도시 어르신보다 훨씬 `세련된 인간관계`를 가꾸고 지켜나갈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년 365일 매일같이 함께 식탁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게 보통 일인가? 도시에 나간 자식이 잘됐든 못됐든 간에, 돈을 잘 벌든지 못 벌든지 간에, 자주 찾아오든지 안 찾아오든지 간에 어르신들의 식탁은 평등하다. (112p)

배우자나 부모를 요양시설에 보내는 것이 항상 `최선`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아프지 않고, 치매에도 걸리지 않고, 집에서 최후를 맞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요양시설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요양시설이 비록 최선의 대안은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간병살인이나 간병자살은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인 건 확실하기 때문이다. (187p)

영국의 노인들은 독립적이다. 남한테 신세 지는 걸 싫어한다. 버스에서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80대 남자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가 끝내 사양하는 바람에 머쓱해진 적도 있다. 이들은 웬만하면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아니 도움을 받기는커녕 도움을 주려고 한다. 한번은 한적한 동네의 버스정류장에서 당장이라도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여자 노인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노인은 족히 90대가 넘어 보이고 파킨슨병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러고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힘들게 걸어오더니 바로 내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나한테 뭔가 도움을 청하려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도움이 필요한가요?" (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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