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릴리언스
마커스 세이키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브릴리언스』 마커스 세이키 / 황금가지

두려움의 대상인가, 조금 다를 뿐인가

 

 

 

 

 

 

▒ 책을 읽고 나서. 

 

 '돌연변이'에 관한 SF 소설이나 영화는 무척이나 많이 등장해왔다. 이 소재는 온갖 상상력을 발현시켜서 흥미진진함을 더하는 동시에 사회를 비판하기에 아주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비판받고 분류되며, 대개는 파괴를 당하는 생명 경시의 풍경 ……. 『브릴리언스』도 마찬가지다. '브릴리언스'는 돌연변이 인간을 부르는 소설 속의 용어인데, 이들은 외모적으로는 보통 인간과 다를 게 없고 오로지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현실에서 보자면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 :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특정 영역에서 그 장애와 대조되는 천재성이나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증후군)과도 비슷한데, 조금 더 상상을 덧입혔다. '벽을 통과할 수 있거나,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는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거나, 수학적인 능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재미있는 능력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재로 키워낸다면 가장 좋으련만 역시나 정부는 그들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그리고 점점 브릴리언트들의 영향력이 거세지고,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편법을 쓰는 그들도 생기면서 사람들도 그들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특별한 점은 이 '브릴리언트'들에게도 등급이 나뉜다는 점인데, 정부는 이것을 이용하여 그들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진 1급, 그리고 보통 인간들보다 일부 능력이 조금 뛰어날 뿐인 그다음 등급들. 정부는 이러한 1급 '브릴리언트'들을 어릴 때부터 검사를 통해 '아카데미'라는 기관으로 보내 사회에서 격리한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와 전개의 소설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몰입감을 주는 필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주인공의 위치가 아주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닉 쿠퍼'라는 주인공은 1급 브릴리언트이면서 정부에 협조해 같은 브릴리언트들을 체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그의 아이가 특별한 능력을 발휘해 1급 브릴리언트라는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면서 혼란이 온다. 여기서 아이에게 하는 말이 참 우습다. "사람들이 전부 다 다르다는 건 알고 있지? 어떤 사람들은 키가 크고 어떤 사람들은 작아. 누구는 금발이고 누구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그리고 이 모든 차이는 옳거나 그르거나, 좋거나 나쁜 게 아니야.(140p)"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브릴리언트를 사냥하는 모습과 겹쳐지면서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후, 아이를 아카데미에 보내지 않는 대신, 그들의 우두머리를 홀로 테러하기로 거래한 주인공이 브릴리언트들을 만나고, 진실을 마주하면서 하는 선택의 광경은 더욱 흥미롭다.

 자신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조금씩 밝혀지는 비밀들을 접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는 여러 질문이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크나큰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그들의 적인가, 아군인가.", "진실인가 권력인가"와 같은 주인공의 딜레마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보여주면서, 우리 시대에도 중요한 질문 '다른 것은 과연 틀린 것인가.' 라고 묻고 있는 소설 『브릴리언스』. 앞으로 다가올 상황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몰입감을 주는 영화 같은 소설이다. 묵직한 600페이지의 소설이 단숨에 넘어갔다.

 

 

 

 

  - 장(章)이 넘어갈 때마다 소설의 상황에 맞춘 각종 글들이 등장한다. 뉴스 기사, 인터뷰, 광고 ……. 이것 또한 소설에 재미를 더한다.

 

 

 

​Written by. 리니

영미소설/ SF 스릴러/ 레전더리 픽처스 영화화 예정.

출판사를 통해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바스케즈는 좁은 골목 맞은편의 건물을 흘끗 쳐다봤다. 180센티미터 정도 되는 거리였다. 뛰어서 건너기에는 멀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꼭 이런 식이 될 필요는 없어. 당신은 아직 아무도 해치지 않았잖아."

쿠퍼는 바스케즈의 몸짓에서, 종아리의 떨림과 어깨의 경직에서 주저하는 기색을 읽었다.

"내려와서 대화를 하자고."

"대화라." 바스케즈가 콧방귀를 뀌었다. "너희 DAR 놈들이 어떻게 대화를 하는지 잘 알지. 정치가들이 즐겨 쓰는 그 용어가 뭐더라? `집중 심문` 아주 듣기 좋은 말이지. 고문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좋게 들려. 마치 분석대응 부서 (The Department of Analysis and Response)가 `돌연변이 통제국`보다 듣기 좋은 것처럼"

쿠퍼는 바스케즈의 자세와 몸짓을 보고 그녀가 결심을 마쳤다는 사실을 알았다. (24p)

"이제 너도 컸으니까, 아빠가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줄게. 하지만 지금 당장은 전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라, 알겠니?" 케이트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쿠퍼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전부 다 다르다는 건 알고 있지? 어떤 사람들은 키가 크고 어떤 사람들은 작아. 누구는 금발이고 누구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그리고 이 모든 차이는 옳거나 그르거나, 좋거나 나쁜 게 아니야.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몇몇 부분이 아주 뛰어나단다. 음악을 이해하거나, 큰 숫자를 암산하거나, 다른 사람이 슬프거나 화났을 때 말하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지. 누구나 조금씩 그런 능력이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걸 아주아주 잘해. 아빠처럼. 그리고 아빠 생각에는 너도 그런 것 같구나."

"그럼 그건 좋은 거야?"

"그건 좋거나 나쁜 게 아냐. 그저 우리의 일부일 뿐이지." (140p)

당신은 미래를 막을 수 없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편을 고르는 것뿐이야. 알렉스 바스케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편을 고르는 일은 바스케즈의 생각보다 더 복잡했다. 쿠퍼는 테러리스트를 사냥하는 정부 요원인가, 아니면 위험에 처한 딸을 둔 아버지인가? 그는 군인인가 민간인인가? 만약 그가 조국에 충성한다면, 아카데미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인가?

그래 알렉스, 난 편을 골랐어. 하지만 바로 지금, 하늘을 날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야. 쿠퍼는 비행기의 금속 벽에 기대, 터보프롭 엔진의 요동을 등으로 느끼며 자신이 감수해야 할 위험에 대해 생각했다. (213p)

스미스는 그가 평생에 걸쳐 싸워 온 모든 것이었다. 그는 단지 살인자나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인간의 형태를 한 재앙이었다. 쓰나미, 지진, 혹은 상수도에서 터진 오물 폭탄이었다. 자시 자신과 자신의 신념 외에 다른 무엇도 믿지 않는, 세상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자기 뜻대로 바꾸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남자. 그가 와이오밍의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 맨발로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4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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