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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파사르의 주방 - 흙, 햇볕, 래디시, 그리고
크리스토프 블랭 글.그림, 차유진 옮김 / 푸른지식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알랭 파사르의 주방』 크리스토브 블랭 / 푸른지식
흙, 햇볕, 래디시, 그리고...
제가 책을 읽는 것만큼 즐거움을 얻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음식'입니다. 아니, 저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행복과 힘이 음식에서 나오는 게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재료 본연의 맛과 식감을 살려 정성스럽게 요리한 식탁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요? 때로는 푸짐한 밥심으로, 때로는 감칠맛 나면서도 색다른 요리들로 우리는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반대로 자신만의 식탁을 만드는 재미도 참 쏠쏠하죠. 솜씨는 미숙해도 음식에 들어간 누군가의 정성을 느끼게 되는 건 크나큰 행복이니까요.
처음 만나보는 요리 소재의 그래픽 노블 『알랭 파사르의 주방』은 미슐랭 3스타를 받은 프랑스 식당 '라르페주(L'arpege)'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곳의 셰프 알랭 파사르의 요리 철학과 레시피가 그대로 담겨 있지요. 그의 식탁은 채식 위주의 요리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요리에 사용되는 채소들은 직접 농장에서 재배한다고 합니다. 재료들을 모아 색을 맞추면 이전에 만들어본 적이 없는 요리들도 실패할 가능성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그의 주방에선 크게 소리치는 법이 없지요. 분명하고 정확하게 수정사항을 전달하면서, 그곳의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합니다.
알랭 파사르의 이름을 저는 처음 들어보지만, 세계에서 그의 입지는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 옮긴이의 말 "현재 가장 위대한 요리사 중 한 사람, 그런 위대한 요리사들 사이에서도 존경의 대상이자 진정한 예술가라 불리는 마스터 셰프, 지난 몇 십 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식당 50개를 선정하는 목록에서 한 번도 제외된 적이 없는 (그의 식당) 라르페주." 를 보니 왜 그의 이름을 달고 이런 책이 나왔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아요.
레시피와 만화가 번갈아 등장합니다. 레스토랑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고급진 요리들의 레시피가 나오고 요리를 하는 과정이 다소 무심한 그림체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레시피를 보고 있자니 군침이 도는 걸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아카시아 꿀을 넣은 보랏빛 정열'이라니! 음식에 붙이는 이름치고는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멋진 단어인데요. "색깔은 창작의 중심축"이라고 말하는 알랭 파사르의 요리 철학에 정말 잘 어울리는 요리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재미있는 요리들이 책 속엔 그득합니다.
단, 멋진 요리들의 향연이 참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오긴 하는 것에 비해 몰입감은 조금 덜했습니다. 보기 좋은 떡을 바로 앞에 두고 군침만 흘리고 있는 느낌, 음식의 사진조차 등장하지 않아 상상력의 끝까지 경험하고 오다 보면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일러스트로 그려낸 셰프 '알랭 파사르'와 그의 요리들이라는 시도 자체는 참 좋았지만, 이쪽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조금 모호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어요.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알랭 파사르의 요리를 책임지는 농장의 이야기도 다수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농장 자체도 자연이 만든 시스템에 많은 부분 어긋나지 않게 소신껏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토록 신중한 그의 식탁이라니, 파리로 훌쩍 떠나 한번 맛보고 싶어집니다-!
Written by. 리니
만화, 그래픽 노블/ 요리, 레시피.
출판사를 통해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