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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심청 - 사랑으로 죽다
방민호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연인 심청』 방민호 / 다산책방
심청은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을까
얼마 전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라는 에세이에서 『심청전』에 관련한 대목을 읽었던 게 생각이 났다. '심청'이라는 이름에 '효녀'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따라올 만큼 이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그녀의 깊은 효심이었다. 그러나 앞에 언급한 에세이에서는 그녀의 효심보다, '서로를 놓아야 자유로워질 수 있는 굴레'에 초점을 맞추었다. 눈이 보이지 않고, 아내도 잃은 예전의 심 봉사는 딸아이를 젖동냥하면서 키워낸 장한 아버지였지만, 심청이가 조금씩 성장하고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기 시작할 때부터 무기력한 인간이 되었다. 자식을 위해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바깥'으로 나가는 가장의 모습은 사라졌고, 그들의 비극은 거기서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 비극을 떨쳐낼 수 있는 뭔가가 『연인 심청』에 등장하길 바랐다. 무기력한 심봉사와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혹여 심청이가 사랑과 자유를 위해서 또 다른 선택을 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소설은 뜻밖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새로운 설정이 등장한다. 가장 뚜렷하고 큰 역할을 한 주인공이 '심 봉사'와 '윤상'이라는 새로운 인물이다. 우리가 대개 떠올리는 심 봉사의 모습은 단지 무기력하고 능력이 없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이 소설 속에서는 세속적인 인물로 나오며 노름과 여자, 욕망에 빠져 타락한 모습마저 보여주는 인물이다. (심청전에는 다양한 판본이 있는데, 이야기 속의 모습들을 조금 더 극적으로 소설 속에서 조합한 듯 보인다.) 그리고 '윤상'은 심청에게 '연인'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주인공이다. 어릴 때부터 막역한 사이였고, 심청에겐 동경의 대상이자 각자의 슬픔을 나누는 사랑하는 연인이다. 소설 속에서 실제로 그는 심청이가 벗어나지 못하는 (아버지와의 질긴) 굴레를 벗어나도록 권유하고 용기를 북돋우고 있다.
그러나 심청은 그녀의 지겹도록 질긴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연인 심청'이 아니라, 아직도 '효녀 심청'이었다. 단지 이야기적인 면에서는 그렇다. 개인적으로 심청전의 재해석이 나온다면, 이야기의 큰 축을 좌지우지하는 주인공의 색다른 선택을 보여주길 바랐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 그대로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서 인당수에 빠져버리는 장면이나, 어떤 다른 이가 곤경에 처했는데도 아버지의 행복만을 비는 모습에는 답답함에 돌아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크게 변화시키는 대신에, 심청이가 끝까지 버릴 수 없던 '효심'어린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소설을 각색했다. 일종의 반전, 혹은 비밀을 숨겨둔 것이다. 이 비밀은 불교의 윤회사상이나 업(業)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토록 답답하기 이를 데 없던 심청의 모든 선택은 정해져 있던 삶의 단계를 어쩔 수 없이 밟을 수밖에 없었던 것을 시사해준다.
소설 속에는 불교 사상과 관련되어 표현된 영혼과 삶, 운명에 관한 대사들이나 많은 장면이 아름답고 매끄럽게 펼쳐진다. 한 줄 한 줄 고요하게 마음에 담고 싶던 글도 많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각색의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청이가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을까'에 대한 이유 대신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로, 확 변한 심청이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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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있는 분들은 도전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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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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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아. 사람은 크면 부모랑 헤어지게 되어 있어. 누구나 어렸을 땐 부모와 영원히 같이 살고 싶지.
하지만 부모는 늙고 죽어지고 아이들은 커서 새 세상을 만들어. - 하지만. 청이는 말을 잇지 못한다. - 하지만? - 저마다 운명이 다른 것 같아요. 행복하게 살도록 난 사람도 있고....... - 아냐. 그런 건 없어. - 아버진 나 없으면 아무 일도 못 하셔서....... 하지만 윤상이는 심봉사까지 같이 살자고 말하고 싶지 않다. 윤상이 마음에 아버지란 존재는 더럽고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더구나 심봉사는 자기가 보기에 아버지라는 말에 어울리는 위엄이 없다. - 운명이 저마다 타고나는 거라면 우리가 만드는 게 운명이겠지. (87p)
아버지께 드리려던 옷을 윤상이에게 주게 된 것에서 더 애틋한 사랑을 느낀다. 지아비의 옷을 짓는 지어미처럼 청이는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나간다. 바느질하면서 청이는 아늑한 사랑의 세계로 깊이깊이 내려간다. 그곳엔 따사로운 빛과 천천히 흐르는 물과 널찍한 바위가 있다. 살랑거리는 바람과 새초롬하게 피어난 들꽃들이 있다. 청이는 아무도 없는 그 깊은 계곡 하염없이 물길 돌아가는 절벽 아래 서 있다가, 올려다보니 가파른 벼랑 위로 되돌아갈 길이 막막하다. 모든 것을 단념하고 세속으로 되돌아가려는 한 가닥 미련조차 단념하고, 청이는 그냥 물가에 앉아 헤적이는 햇빛에 반짝거리는 물만 바라보기로 한다. 마음이 더할 수 없이 평온해진다. 생명이 이렇듯 연초록 나뭇잎들처럼 아름답게 반짝일 때 이렇게 훌쩍 떠나는 것도 좋으리. 마음이 명경처럼 고요하고 맑으니 이제 세상과 이별하는 절차도 자기 안에서는 다 끝낸 듯하다. 인생의 허망함이란 굳이 일러 말할 필요가 없다. (103p)
이제 정말 떠나야 하는가.
청이는 마침내 샛별 같은 두 눈을 꼭 감고, 두 손으로 떨리는 치맛자락을 꼭 움켜잡고, 비틀거리는 걸음을 애써 고르며 두어 걸음 배이물 앞으로 다가가, 허공을 향해, 마치 갈매기가 날갯짓으로 공중에 솟았다 바다를 향해 툭 떨어져 내리듯이 풍덩, 바닷물 곳으로 떨어져 내린다. 뱃사람들 모두가 그제야 정신이 깨어난 듯 소리를 내어 운다. 이 슬픈 광경은 오늘의 필치로는 제대로 그려낼 재주가 없다. 옛 문헌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해놓았다.
향화는 풍랑을 쫓고 명월은 해문에 잠겼도다. 영좌도 울고 사공도 울고, 접근 화장이 모두 운다.
장사도 좋거니와 우리가 연년이 사람을 사다 이 물에 넣고 가니 우리 후사가 잘 되겠느냐. 영좌도 울고 집좌도 울음을 울어대며 명년부텀은 이 장사를 그만두자.
그러나 사람의 어리석음이란 한이 없다. 내년인들 이들이 죄 없는 처녀를 용왕께 바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저렇듯 슬프게 울고 있는 이들이 내일이나 모레면 벌써 오늘 일을 잊고 바다를 건너가고 건너오는 사이에 배 곳간에 쌓일 재물 생각으로 근심을 잊고 희희낙락들 하게 된다. 이 웃음이 어리석은 중생의 뜻 없는 웃음일망정 그것이 그네들의 고단한 생애를 견딜 수 있게 하는 명약인 것이다. (1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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