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람 물결소리
남지심 지음 / 얘기꾼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솔바람 물결소리』 남지심 / 얘기꾼

마음이 정화되는 소설, 오랫동안 이 기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오래전 출간된 이 책이 다시 새로운 옷을 입고 나왔다 했지만, 제목과 작가마저 생소해서 인터넷에 조금 검색을 해보았다. 그때 당시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사람들도 보이고, 추억을 회상하는 사람도 보였다. 너무 오래된 책이라선지, 아니면 종교적 특색 때문인지 많지는 않았지만, '남지심'이라는 작가의 책들은 눈에 많이도 띄었다. 그리고 이 책을 새롭게 접한 나는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이야기의 여운에 깊게 빠져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인물과 삶,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여타 다른 소설과 비슷하지만, 『솔바람 물결소리』는 종교적인 색채를 깊게 지니고 있는 책이다. 이야기 속에서 삶과 선택, 생각에 불교적 사상이 연결된다. 한없이 청정한 마음의 다솔스님, 나병환자의 자식이지만 그에게 키워진 재능 많은 소년 혜강, 어머니에게서 핍박을 받고 자라는 소년 덕이,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교사 '기혜'가 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고, 신뢰하며, 삶과 부처에 관한 끊임없는 대화를 나눈다. 다솔스님과 기혜의 사랑이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있는 듯하지만, 사랑보다 이들은 더 큰 차원의 관계로도 보인다. 그들은 교리에만 치중하지 않고, 삶의 모든 것이 진리일 수 있다는 불교의 화엄사상을 바탕으로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실천해나간다.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랑의 실천, 이 세상에서 얼굴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나환자촌에 봉사를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허세와 경쟁의식을 비판하고, 누군가를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탐구하고, '윤회'를 통해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주인공들의 특색이 강하여 각각의 성장을 지켜보는 소설로도 보이는데, 절에서 자란 소년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미움만을 받는 소년은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 순 없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들을 아끼던 주인공은 사랑을 실천하면서 삶의 의미를 되묻게 되면서 마지막에 여운을 남기게 된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불교의 사상이 드러나고 있지만, 사상보다도 이야기의 힘이 유독 강하여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불교 신자가 아니지만, 불교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오히려 그들의 관계에, 차분하고 순수한 대화들에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제자인 '혜강'이 선생인 '기혜'에게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저의 대지'라고 말했을 때, 그리고 수많은 곳곳,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정말 많이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 기분을 잊지 않을 것만 같았다.

 

 

 

 - 이 책의 후속작, <연꽃을 피운 돌>도 받아보았는데, 곧 리뷰 올릴 예정.

 

 

 

Copyright ⓒ 2014. by 리니의 컬쳐톡 All Rights Reserved.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인간이 느끼는 희 로 애 락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숱한 얼굴들, 어떤 사람은 나를 행복하게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나를 괴롭게 했다. 나를 괴롭게 했던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행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사람도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될 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에게는 작은 행복이나마 줄 수 있었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괴로움을 준 적도 있었다.

서로 행복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만남은 좋은 인연이고 서로 고통스러운 마음을 나눠야 하는 만남은 악연일 것이다. 가능하다면 좋은 사람만 만나면서 살고 싶지만 살다보면 꼭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싫은 사람을 만나야 할 때도 많고 내 자신 다른 사람에게 싫은 사람이 되어야 할 때도 많다. 이런 관계는 의식에서 선택되어지기보다는 거의 필연적으로 와 진다. 이 필연적인 관계가 바로 업연인지도 모르겠다. (76p)

나는 얼른 눈을 감았다. 내 가슴속에서 다솔스님의 잿빛 승복 위로 불어오던 깊은 산 솔바람소리가 들려오고 있어서였다. 이것은 무엇일까? 내 가슴 속에 와닿는 이 신선한 솔바람소리는 무엇일까? 다솔스님을 처음 만난 순간 느꼈던 그 경이로운 감정은 다시 한 번 내 온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내가 눈을 뜨고 혜강을 쳐다보자, 혜강이는 조금 상기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 혜강이한테 남아있던 꺼림칙한 생각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내 가슴속에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혜강이를 위해 힘이 되어 주자. 혜강이를 위해 힘이 되어 주자.`(81p)


"다솔 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법당 근처에서 풀을 뜯어먹던 염소가 매일 스님들의 염불소리를 들은 공덕으로 다음 생에서는 축생도를 벗어났다고요."

"그렇지만 너도 큰 공덕을 쌓고 있구나."

"그렇지요. 저는 염불소리를 들으면서 자라왔으니까요."

"염불소리를 들으면서 자랄 수 있었다는 건 분명 예사 공덕은 아닐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내 가슴은 착잡했다. 혜강은 자신의 생명을 긍정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발밑에 있는 지렁이를 바라보았다. 지렁이는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혜강은 몸부림치는 지렁이를 보고 있더니 수돗가로 가서 플라스틱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은행나무 밑에 물을 부어서 흙을 적셔 놓고는 나뭇가지로 지렁이를 들어 그 젖은 흙 속에 묻어 주었다.

"선생님, 저 지렁이는 다음 생애에 조금 더 지혜 있는 축생으로 태어날 겁니다."

"왜?"

"염불소리를 듣고 자란 제 손으로 살려 주었으니까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혜강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206p)



나는 창문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쏘이며 자리에 누워서 새털처럼 흐르는 하얀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망중한이라고 할까 몸도 마음도 편안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다솔스님과 그 마을을 찾아갈 일을 생각했다. 지구의 끝이라고 해야 할지, 연옥의 끝이라고 해야 할지, 도무지 이 세상 같지 않은 그 마을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스님이 다시 와 주기를 원했다. 불교가 무엇인지 알리가 없는 그 사람들도 스님을 보는 순간 막연하게 부처님을 생각하고 내세의 구원을 생각했을 것이다. 종교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경전을 외우고 교리를 아는 것이 무슨 그리 큰 의미가 있겠는가. 고통스럽고 절망에 빠진 약한 자신을 내려다보고 너그럽게 손을 뻗어 구원해 줄 것 같은 대상, 그 대상에게 자신을 던지고 겸허하게 매달리는 것이 종교의 본질일지도. (25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