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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 2014 제3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ㅣ 공간 3부작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14년 10월
평점 :
『모나코』 김기창 / 민음사
삶의 종착점을 향해 간다는 것
점점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 그 생각이 막연했던 이전과 다르게 '어땠으면 좋겠다-'와 같은 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바라볼 날들보다 지나가버린 날들을 더욱 생각하게 된다는 것. 노인의 삶을 이 정도쯤으로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그보다 쓸쓸하고 고적하게 살아가는 노인들이 많은 것 같다. 작년의 기록에 의하면 한 해의 고독사가 대략 천 건 이상이 되었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 후에 발견되기까지 며칠, 혹은 몇 달, 그토록 오랜 시간 방치되어 죽음 이후에도 외로움을 떨쳐내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그들은 가족들이 없어 홀로 살아가는 것인가? 아니다. 이제는 가족이 어딘가에 살아있는 경우도 다행이라고 말할 수 없는 시대다.
현대사회에 허다한 '노인의 고독사'를 다룬 『모나코』는 예상과는 다른 주인공을 내세웠다. '다 가졌는데 살아야 할 이유만 없는' 노인, 그는 넓은 집에 살고, 음식의 풍미를 즐길 줄 알며 철저한 운동으로 자신을 관리하고 있다. 가끔은 신에게 냉소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담배를 찾는 청소년들에게 시가를 건네면서 "나처럼 오래 살지 말라고 주는 거야."라는 말을 건네는 별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살아야 할 이유만 없다는 그가 생기있게 바라보는 것은 사랑하는 어린 여자 '진'과 환상의 공간 '모나코'에 가고 싶은 꿈이다. 이런저런 것들을 가지고 있어 조금은 행운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설이 후반으로 진행될수록 허울뿐인 그 배경들이 있어 노인은 더욱더 고독하게 여겨진다.
소설 속에서 이름으로도 등장하지 않는 '노인'은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지독한 아픔이 있다. 풍족한 재산과 잘 경영된 기업을 물려준 자식들은 이용만 해먹는듯 자주 나타나지 않고, 시시각각으로 노인의 집을 노리는 도둑들의 묘한 시선을 느끼고, 사랑하는 여자 '진' 은 그저 형식적인 친절을 베푼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체한다. '진'의 진짜 애인은 노인과 함께 있는 그녀를 보면서 "다행이다."라고 말한다. 이제는 사랑조차 느낄 수 없는 '무성욕자'로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그 말에 '노인'은 슬퍼한다. 그에게도 사랑이 있고, 좀 더 멋진 것을 택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이해해주지 않는 사회의 시선에 '노인'은 체념한다.
그리고 죽어간다. 블랙 유머로 가득 차있었던 초반의 소설은 '노인'의 인생처럼 스르르 죽어간다. 그렇듯 풍족한 삶을 살았고 좋아하는 이국 음식을 만들어 "나의 밤이 시작된다!"라고 외쳤던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저 곁에 살던 고양이들만 그의 곁을 조용히 맴돌 뿐. 사랑하는 여자도, 일을 도와주던 여자도 홀로 남겨진 그와 함께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홀로 있어도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노인'의 캐릭터는 새로웠지만, 그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격한 반응을 일으킬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자신의 바람을 놓아버리고 조용히 무너져가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더욱 생생하고 슬프다. 너무나 조용히 순응했기 때문에 반대로 반항하는 듯 느껴진다. 소설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로 반전될 때, 아니 그가 '미학적 죽음 - 죽음은 회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화려하고 마초 같은 노인의 죽음도, 그 마지막은 역시나 외롭게 간다는 것을.
-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입니다 :) 생각보다는 참 가볍게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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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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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조금 있다가 따귀라도 한 대씩 주고 받을 기세였다. 현실의 노인이 한 발 물러섰다. 피식 웃었다. 플라톤은 웃음에 의해 나라가 멸망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었고 그래서 웃음에 의해 조롱받을 수 있는 신과 영웅들을 기록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아니라는 사람도 있었다. 노인의 생각엔 전자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웃음은 모든 것을 부수고 다시 재조립했다. 웃음으로써 노인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웃음으로 모든 것을 멸망시키겠다는 듯 노인은 또 웃었다. (39p)
노인이 사는 구역은 으리으리한 집, 부서진 집, 모던한 집, 부서지기 직전의 집, 조금 낡은 집, 많이 낡은 집, 다시 으리으리한 집들이 지그재그로 서 있었다. 관리인이 있는 집은 드물었다. 눈이 오면 쌓이기 바빴다. 간혹 할 일 없는 노인네들이 나와서 자신의 집 앞만 비질하곤 했다. 그 때 젊은 사람이 탄 외제 차가 비탈길을 오르기라도 하면 알아들을 수 없는 욕을 스쳐 가는 운전석 차창에 대고 중얼거렸다. 반응은 없었다. 그들은 눈을 치우지 않을 때도 고독했는데 눈을 치우면서 더 고독해졌다. 하루 눈을 치우고 며칠을 앓았다. 그런 노인들마저 점점 사라졌다. 죽은 것이다. 노인은 나이와 고독의 상관성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 살 만큼 살고 할 만큼 하고도 죽지 않는 것에 대한 신의 분노가 둘의 고리였다. 노인은 신에게 반문했다. "당신도 너무 오래 사는 것 아닌가?" (51p)
동쪽 하늘 위로 구름이 엷게 퍼져 있었다. 노인은 자신이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감정에 대해서 생각했다. 자신이 얕잡아 본 감정들. 구질구질함은 경멸했다. 짜릿함은 회피했다. 무절제함은 비루하게 여겼다. 노인은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고, 욕조에 앉아 연인들 사이에나 할 법한 몸짓을 주고 받았으며, 술과 담배를 끊임없이 찾았다. 이것은 일종의 신호가 아닐까 생각했다. 갈때가 되었다는,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지 않으면 제일 슬퍼할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더 오래 산다면 진은 삶이 징그럽게 생각될 것이고 덕은 삶이 고단해질 것이다. 오래 사는 게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서 반대로 일찍 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노인은 그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144p)
밥그릇에서는 아직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노인은 식탁을 치우며 다행이라고 말하던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다행입니다. 다행입니다." 노인은 그 말을 반복했다. 그 말은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정확히 좌표를 찍어 주었다. 남자가 티켓을 끊어 준 노인의 마지막 목적지는 죽을 날이 머지않은 마음씨 좋은 동네 할아버지였다. 거기다가 무성욕자이기까지 한. 진이 남자에게 노인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짐작이 되었다. 추측일 수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직접 말하지만 않았지 남자는 노인에게 고맙다고 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는 뭔가 많이 아는 남자거나 아니면 너무 모르는 남자였다. (1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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