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7
안치우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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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안치우 / 황금가지

 파격적이고 용감한 작품, 추리소설로 종교를 논하다

 

 

 

  믿음이나 신앙을 강요하는 행위는 개인적으로 어떤 종교이든 안 좋게 보입니다. 간혹 이런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정당한 일이라는 양 행하는 사람들 때문에 순수한 종교인들까지 나쁜 시선을 받곤 합니다. 종교생활의 방식도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혼자서 기도를 하든 어떤 장소에 가든 나름대로 신앙을 실천하는 것이 될 수 있고, 그 실천을 틀린 것이라고 매도할 순 없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사실 이렇게 말하지만,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서든 참 민감한 부분이기는 한데, 특히나 종교의 영역이 엄청난 우리나라에서는 특히나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재림』은 정말로 파격적이고 용감한 (?)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딘가 안 좋은 방향으로 틀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신앙행위를 비판하면서, 놀랍게도 '살인'을 소재로 하고 있으니까요.

 소설의 처음, 단순하게 벌어진 실종 (살인)에 대한 증거물이 '베드로의 십자가'로 나왔을 때 소름이 끼쳤습니다. 예수님의 대표적인 충실한 제자로 알려진 '베드로'는 예수가 예언한 대로 새벽닭이 울기 전 세 번, 그를 부인하고 회개하면서 순교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책 속의 살인자는 이 '베드로의 십자가'를 남기고 끔찍하게 살인을 저지르는데, 그 살인의 명분은 참 치졸합니다. "놈은 자신을 신성한 응징자로 착각하고 있다."라는 말처럼, 그는 미치광이 같은 자신의 신념을, 신과 종교에 의한 것이라고 포장하지요. 『재림』은 추리 형식을 통해서, 이런 무겁고 민감한 '종교'라는 소재에 대하여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의 모순적인 종교 행위와 자신만의 신념을 강요하고 몰고 나가는 행위들을 말이죠. 보다 보면 정말로 통쾌하기도 하고,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거침없어서 내용과 책 자체에 압도되는 것 같았습니다. 신성해 보이는 '종교'와 관계된 살인이어서 그런지 더욱 소름이 끼치기도 했고요. 어쨌든 사회적인 메시지도 묵직하며, 스릴 넘치는 소설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리고 반전, 이 작품은 『재림』이란 장편소설이 아닙니다. 중간 정도부터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또 다른 작품 『만남, 그리고 시작』이 등장하지요. 『재림』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의 프리퀄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 작품도 참 재미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그려졌던 여자 탐정 '권민'에 대하여 더 상세하게 볼 수 있고, 탐정 - 우리나라에서 민간 조사단 -으로 활동하는 삼인방이 어떻게 만났는지도 볼 수가 있죠. 앞의 작품과 뒤의 작품이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왜 더욱더 무거운 작품을 앞에 두었나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아무래도 뒤의 작품은 조금 가벼운 느낌이 있어서 맞는 선택인 것 같았습니다. 혹시나 다른 작품이 나오게 된다면 다른 식으로 조합해서 시리즈로 나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편 모두, 정말 만족스러워서 다른 작품을 기대할 만큼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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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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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자기 눈앞에 있는 악의 무리들을 어떻게든 처단하고 싶었을 거예요. 베드로가 과오를 참회했듯이 그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겠죠.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원래 살인마들은 피해자를 물리적으로 복종시킴으로써 강렬한 쾌감을 느끼는 이상심리를 갖고 있잖아요. 거기다 종교적 망상까지 겹치니까 쾌감이 더 컸을 걸요."

팀장이 이맛전을 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승주가 마저 설명했다.

"이런 놈들은 감정기제 자체가 우리랑 달라요. 살인하는 순간에 도파민이 솟구칠 걸요. 살인이 곧 오르가즘이에요. 살인할 때마다 황홀경에서 멈춰버린다고나 할까. 얼마나 치명적인 쾌락이겠어요. 그러니 살인을 끊지 못 하는 거죠."

그동안 대면했던 연쇄살인범들, 그놈들이 지껄이던 살기어린 자백들이 팀장의 뇌리로 무섭게 스쳤다. (130p)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기적의 체험을 하고 있어요. 그들 중엔 사회지도층도 많고 전문직에 엘리트도 많죠. 그분들이 강철수씨만큼의 지식도 없을라고요. 지식 따위로는 설명이 안 되는 전능한 성령의 힘을 느꼈기 때문에 다들 숨죽이고 경배하는 거예요."

흔들림이 없기는 승주도 만만치 않았다.

"그게 종교의 속성이죠. `신과 나` 내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무려 유일신의 주목을 받는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생각!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근사한 일이겠어요. 이런 판타지에 한번 빠지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죠.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신데렐라 콤플렉스 같은 거라고나 할까. 엘리트건 아니건 이런 환상에 빠질 위험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신기루일 뿐이죠. 믿음이란 건 달콤한 자기기만이에요." (148p)

영혼이 이미 떠나버린 눈동자는 여전히 고통 속에서 헤매는 듯 비통함으로 그렁거렸다. 마지막 순간에 애처롭게 스쳐갔을 한 인생의 추억과 희망이 먼지로 부서져 차디찬 육신 주위로 흩어졌다. 승주의 뇌신경은 먼지들 속에서 환영을 보았다. 없음의 환영. 아무것도 없었다. 무서우리만치 태연한 극사실의 세계만 보일 뿐이다.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이아몬드 빛깔 영혼이 빙그레 웃어주는 환영이나마 보고 싶었다. 충격받은 뇌신경이 진통용 환각으로 위로해주기를 바랐지만 인체 손상의 병리학적인 정물화만 눈앞에 또렷이 떠 있었다. 그래서 더 믿을 수 없었다. 너무나 태연히 벌어져 잇는 저 엄혹한 현실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흔들리는 건 승주 뿐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은 지독히도 차분했다. 암막커튼의 가느다란 틈새로 기어들어오는 빛줄기는 빈 공간을 스치고 지나갈때처럼 무심하게, 참혹히 널브러진 손바닥마저도 여전히 무심하게 뚫고 지나갔다. 승주는 그 태연함이 슬퍼다. 한 인간의 지독한 비극은 쉽사리 과거로 묻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그토록 태연히. (196p)



들쑥날쑥 변덜을 부리는 게 인생이라고 권민은 머릿속에서 중얼거렸다. 변덕스런 상황이 던져준 패에 굳이 도전정신을 발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가치관 속에서 인생은 상황과 의지가 씨줄날줄로 교직된 옷감이었다. 눈앞에 닥친 상황을 어떤 의지로 반응할 것인가에 대해 인생이라는 피륙의 결이 결정된다는 걸 숱하게 목격해 왔다. 누군가는 교활하게 치고 빠지며 매끈한 비단으로 인생을 직조하고, 또 누군가는 미련하게 달려들다가 구멍 숭숭한 거친 무명 한 포 남기고 산화해 버린다는 걸 권민은 종종 되새겼다. 맞서느냐, 피하느냐, 이 두가지 선택 사이에 매달린 외줄을 타는 일이 연쇄살인마를 쫓는 탐정 일보다 훨씬 더 아슬아슬했다. (3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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