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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취록 - 조선 최고의 예언서를 둘러싼 미스터리
조완선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비취록』 조완선 / 북폴리오
조선 최고의 예언서를 둘러싼 미스터리
"~년에 지구가 멸망한다", "재앙이 일어난다" 같은 예언들은 신빙성이 명확한지 아닌지와 관계없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끕니다. 사실 그런 예언들이 대개는 정확하지 않고, 아주 간혹 운이 맞아떨어져 예언대로 될 때가 있는데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막연한 불안함이나 기대감을 갖게 되는 거죠. (그 무시무시한 2012도 무사히 지나갔으니까요 !)
흥미로운 점은, 우리의 먼 옛날, 조선에도 이런 예언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거친 일종의 '예언'들과 각종 학문들과 관련되어 민간에 유포되어 있었다고 해요. 이 예언서 <정감록>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민족사를 예언하고, 조선 후기에 가서 반왕조적인 성향을 띠게 되면서 정말로 힘든 시기에 민중들의 봉기에 힘을 실어주는 등 민중의 의식에 정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학농민운동, 홍경래의 난 등 많은 민중봉기가 <정감록>의 사상을 체계로 했다고 해요. )
『비취록』 은 조선 최고의 예언서, <정감록>을 토대로 허구를 보태어 만든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실제로 존재했던 <정감록>의 사상을 듬뿍 담고 있는 소설 속 허구의 예언서 <비취록>을 둘러싼 음모와 살인이 나타납니다. 이야기는 한 역사학자에게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찾아와 <비취록>의 한 부분을 보여주면서 진품 감정을 해달라는 요구와 함께 시작되는데요. <비취록>에는 소설 속 현재, 2015년의 예언이 담겨 있고, 곧이어 일어나는 살인들이 무언가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역사학자와 형사, 그리고 <비취록>이 존재하고 있다는 음산한 '쌍백사'라는 절에서 비밀을 파헤치는 한 스님이 힘을 합쳐 작은 증거들을 하나씩 끄집어 내고 점차 진실을 발견해가면서, <비취록>은 그냥 우스갯소리 같은 예언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와 끈질긴 인연이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존재하고 있었던 예언서 <정감록>이 우스꽝스럽게도 민족 대이동을 시킬 정도로 큰 영향을 가했고, 때로는 맞지 않은 예언들도 있었겠지만, 그때 당시의 어지러운 사회 속에서는 세상이 조금이라도 변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담고 있었죠. 말 그대로 백성을 위한, 민중을 위한 예언서였습니다. 소설 『비취록』도, 그 방향이 어긋나긴 했지만, 그들이 칼을 들게 된 그 이유에 어지러운 세상 -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한 (恨)'이 있는 세상 - 을 바꿨으면 하는 기대와 노력이 있었던 것 같아서, 그저 살인과 미스터리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상상력이 빈약해서 역사적인 사건들을 소설로 차용할 수밖에 없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셨지만, 소설은 역사적 고증이 놀라울 정도로 탄탄하고, 거기에 어우러진 상상력도 너무나 흥미롭습니다. '후일'을 언급하는 마지막이 묘하게 기대감을 안게 만드는군요. 또 한 번 멋진 후속작으로 우리를 놀라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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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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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서에 적힌 대로라면....... 그러니까...... 조만간 우리나라에...... 아주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단 밀이유." 최용만은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비취록』말미에 무엇이 적혀 있기에 그리 긴장했던 걸까? 그의 느려 터진 쇳소리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물론 최용만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예언서의 매력은 불확실성에 있다. 같은 예언이라고 해도 각기 해석하는 자에 따라 내용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이를 테면 불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재앙이라고 해석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한술 더 떠 원자폭탄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글자 하나를 가지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해석의 의미가 달라지며, 앞뒤 단어의 조합에 따라 각양각색의 해석이 나온다. 이른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이중성이 예언 문구에 담겨 있다. 이는 우리나라 예언서 뿐만 아니라 노스트라다무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언서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책이나 구전을 통해 전해져 오는 예언이 적중한 것은 일 할이 채 되지 않는다. 확률로 따지자면 형편없는 수치다. 사람들은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예언 문구를 억지로 꿰맞추며 예언의 신비로움을 한층 부풀린다. 예언 내용이 틀린 것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오직 예언이 적중한 것에만 열광한다. 그것이 예언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50p)
흰 바위는 미륵불의 상징이다. 이는 미륵불의 출현, 달리 말해서 복된 새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상서로운 표징이다. 쌍백사 경내에는 그와 유사한 글이 여럿 적혀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고 진인의 출현을 바라는 중생의 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 같소. 제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시대가 변한들 인간의 본성이야 타고난 게 아니겠소." 부처를 모시는 불자가 진인이라니, 유정은 왜 이런 글을 경내에 붙여 놓았는지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때로는 부처의 가르침에서 얻지 못하는 것을 이런 글에서 얻을 때가 있소. 허허. 나라가 어수선한 걸 보니 진인이 나타날 때가 되긴 한 모양이오." 스님의 말이 점점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불자가 부처의 가르침 말고 또 무엇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92p)
이 글은 대정 12년(1923년)에 발생한 대역 사건과도 일치하며, 보천교 신도들에게 불온사상을 주입하는 데 일조하고 있음. 이에 따라 이 글을 철저히 분석하고 파악하여 향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임. 또한 대역 사건의 주모자를 심도 있게 심문하여 배후 세력의 정체를 밝혀야 할 것임. 명준의 두 눈이 문장 속으로 하염없이 빨려 들어갔다. 박열, 대역 사건, 보천교, 조선의 예언집이 한데 뒤섞여 선명한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여기......유정 스님이 적어준 글과 같은 단어가 있어요!" 그랬다. `창해적도`, `야계` ...... 무엇보다 명준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이 두 단어였다. 이는 백화원 승려들이 적은 글귀, 유정 스님이 건네준 종이에도 적혀 있던 단어였다. 이게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2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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