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지음, 에두아르 부바 사진,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글, 에두아르 부바 사진

아름답고 정직한,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세계

 

 

 

 

 

 

 뒷모습은 아무런 말이 없다. 밋밋한 그 모습, 표정과 손짓이 없는 뒷모습. 그러나 그 속에 진실이 있다. "생략과 은연중의 말, 빗대어하는 말, 암시의 세계"인 뒷모습은 수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그러나 주시하기 전엔 그 진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아마도 우리들은, 뒷모습이 아닌 앞모습의 얼굴만이 진정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품고 있는 의미를, '뒤'에 감춰진 이야기를 『뒷모습』에서 풀어내었다. 어떤 사진 작품이 있다면 - 아니 사진이 아닌, 다른 장르의 작품일지라도 - 그 이야기 옆에 구구절절 이야기를 붙이는 것이 어색할 때가 있지만,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과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이 꼭 동시에 만들어진 것처럼 서로와 맞아떨어진다. 안간힘을 쓰는 뒷모습, 기도하는 뒷모습, 아이를 안고 있는 뒷모습, 젊은 여자와 중년 여자의 뒷모습, 발레리나의 뒷모습...... 흑백 사진의 명암 속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그들의 모습.

  꼭 뭐라고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 풍경 속의 뒷모습을 추측할 수 있는 사진들도 있다. 단순히 볼 때는 그냥 서 있는 어린아이가 응시하는 저 먼 곳을 바라볼 때 사진은 이야기가 된다. 바짓단을 걷고 바닷물에 들어가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두 연인의 모습에서 약간은 초라하지만 행복한 사랑이 느껴진다. 사진을 찍고 감상하는 맛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물론 사진가의 기교와 의미를 부여함이 뛰어나야 할 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옆에 붙은 미셸 투르니에의 글은 사진과 같이 풍부하다.)

  이렇게 수많은 뒷모습에, 앞으로 돌아보기 전에는 아무런 표정조차 없어 보이는 뒷모습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이 책 때문이다. 세상의 다양한 뒷모습이 아름답고, 처연하고, 쓸쓸하고, 애수 깊기도 하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뒷모습』 속의 많은 사진들이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다.

 "뒷모습은 정직하다. 눈과 입이 달려 있는 얼굴처럼 표정을 억지로 만들어 보이지 않는다. 마음과 의지에 따라 꾸미거나 속이거나 감추지 않는다. 뒷모습은 나타내 보이려는 의도의 세계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세계다. 벌거벗은 엉덩이는 그 멍청할 정도의 순진함 때문에 아름답다." - 역자 후기 中

 

 

Copyright ⓒ 2014. by Rinny. All Rights Reserved.
소장하고 있는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렇고 말고, 사람의 몸은 / 본래 그렇게 생겨 있어서 / 누군가를 `품에 안는다`고 / 할 때 그것은 반드시 그의 등 뒤로 두 손을 / 마주 잡는 것일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 얼굴을 서로 맞대고 그 들어가고 나온 곳이 / 맞물리도록 꼭 붙게 되면 / 저 뒤쪽 - 목덜미, 등, 허리, 엉덩이 - 은 / 탐험하고 소유하는 지역으로 변한다. 그렇기에 / 두 손이 그 지역에서 / 획책하는 일을 사진으로 / 찍는 것은 실례가 될지도 모른다. / 그러나 여기서는 치렁치렁 흘러내린 머리채가 / 포옹을 분리시키고 한 다발 카네이션 꽃이 / 그 포옹을 장식하며 고정시킨다. (머리털 中)

구내 식당에서 식사를 끝내고 다시 공장의 / 일터로 돌아가기 전, 공원에서 잠시 쉬는 짬을 / 메울 셈으로 책을 한 권 들고 나오긴 / 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될 성싶지 않다. / 돋아나는 어린 싹에 비치는 햇살, / 살며시 움트는 은방울꽃의 새순, 먼지 속에서 / 폴짝거리는 참새들, 축복을 내리는 손처럼 / 바람에 흔들리는 마로니에 가지, 정오의 하늘에서 / 흘러내리는 나른한 무기력, 삼라만상 속의 / 약간 쓸쓸하면서도 낙관적인 행복감, 그런 / 모든 것을 두고 어찌 한동안 짧은 명상에 잠기지 / 않을 수 있겠는가. 멀리서 들리는 자동차 소리, / 지나가는 행인들, 사진 찍는 사람, 그리고 심지어 / 이 페이지를 읽는 우리 독자들, / 그 모든 것들에 등을 돌린 채. 책은 물론, / 그 모든 방해꾼들에 대해서 당장은 /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는 세상의 생명들이 나직이 / 고동치는 소리에 까무루 홀려 있는 것이다. (세상의 노래 中)

해 저물녘에 찾아와 미래의 행복을 / 꿈꾸는 - 혹은 외로이 마음속의 / 슬픔을 털어놓는 - 사랑에 빠진 처녀와 / 원통 모자를 쓰고 자갈밭에 앉아 있어도 / 그 완강한 안락함이 든든한 중년 여인, 그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 어쩌면 그저 삼십 년의 나이 차이? / 어쩌면 삼십 년 후에는 처녀도 / 지금은 모자란 자신감과 / 안정감을 갖추어 자갈밭과 / 부서지는 썰물과 눈부신 석양을 / 제압할 수 있을까? / 이것은 한갖 정신의 관점. / 그러나 한낱 추측만이 아닌 것이 있다면 / 그건 풍경. 그 무슨 조화의 기적이 있어 / 중년 부인의 발 아래에는 / 고즈넉하고 빛나는 공허뿐인데/ 처녀의 주위에는 바위 많은 내포 / 굴곡이 심한 암초, 폐허와 / 소나무를 머리에 인 가파른 벼랑이던가? / 두 가지 마음 자리와 두 가지 풍경/ (바닷가의 두 여자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