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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행복의 기원』 서은국 / 21세기북스
지금까지의 통념을 엎어버리는 새로운 방식의 '행복론'
'행복'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책들 중에서, 이 책은 가장 쇼킹한 책이 아닐 수 없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간단하지만 막연하고, 생각해보면 또 철학적이기도 한 질문. 이전에 내가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뭐라고 답했을까? 아마도 행복한 이유를 구구절절 말했겠지만, 대표적으로 한 가지를 골라보자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사실, 이 질문은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정말 막연하고 답도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그 답은 아마 수천 개, 수만 개가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행복의 기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암, 당연 그렇겠지, 수긍이 간다. 하지만 뒤이어 내 눈에 들어온 문장.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이럴 수가, 행복에 대하여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세상의 많은 책, 힐링 책들은 조언한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 "마음을 바꾸라", "고정관념을 깨라." 일단 딱, 들어보면 괜찮은 말인 것 같기도 하고, 다시 활기차게 살아갈 힘도 난다. 하지만 갑자기 의문이 든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바꿔야 할 일이 왜 이리 많은지, 하고. 『행복의 기원』의 저자, 서은국 교수는 이런 의문에 대하여, 수많은 '행복 관련 책'들의 함정을 잡고 재밌는 해답을 제시한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며, 모든 생각과 행위의 이유는 결국 생존을 위함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행복의 기원』에서 말하는 행복은 다윈의 '진화론'에 바탕을 둔 정의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에게 박힌 생각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이고 최종 종착지"라는 것이였다. 의미 있는 삶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행복론'이었다. 저자는 그의 생각을 '도덕 책 방식의 행복론'이라 칭하고, 또 다른 갈림길에 있는 '과학 책 버전의 행복론'을 주장한다.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는 우주에 살고 있으며, 자연의 법칙에 따라 존재하고 살아온 생명체이고 많은 동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생존을 위해 먹고, 투쟁하고, 도구를 만들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쯤에서 질문을 던진다. "행복 또한 생존에 필요한 도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결국 우리는 본성, 즉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으로 생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행복은 그 안에 있으며,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삶의 목적지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아마도 정말 자주) 지나치는 코스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결국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을 할 때,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을 느낀다. 특히나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은 사회에서 있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것. 만약 나에게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같이 슬퍼해줄 한 사람이라도 없다면 얼마나 가슴 아플까. 사람, 그리고 사회성 이것은 내성적인 사람이든 외향적인 사람이든 간에 요구되는 양은 같다. 그리고 행복, 즉 생존을 위한 삶에서 유리한 사람은 유전, 그리고 성격 상으로 외향성을 타고난 사람이다. (살짝 아리송하지만, 수긍이 가기도 한다. 내성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의 사교성을 부러워할 때가 많다.)
『행복의 기원』은 책의 첫인상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더욱 발칙하고 쇼킹한 책이었다. 우리가 이제까지 행복으로 가기 위해 '어떻게 (How)' 하냐고 항상 물어왔다면, 이 책은 우리가 왜 (Why) 행복을 찾는지를 묻는 책이다. 지금까지의 통념을 깡그리 엎어버리는 이 놀라운 책의 '행복론'. 이 '행복론'만이 진짜라고 무지막지하게 우겨대기는 어렵지만, 행복에 관한 색다른 시각을 살펴보는 흥미로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인간의 심리, 인간 본연의 모습을 파악하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다.
- 사실 이렇게 잘 읽힐 거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저자가 참 글도 맛깔스럽게, 익살스럽게 씁니다.
과학과 관련되어 무거운 얘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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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하고 있는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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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성적 사고 대 동물적 본능, 무엇이 진짜 모습일까? 인간은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이성의 역할을 상당히 과대평가하고 있다. 역으로 본능의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를 얼마나 움직이는지는 과소평가 한다. (...) 행복에 대한 책에서 왜 이성이나 본능 같은 주제를 굳이 다루느냐고? 이런 비유가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 행복을 소리라고 한다면, 이 소리를 만드는 악기는 인간의 뇌다. 이 악기가 언제, 왜, 무슨 목적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지를 알아야 행복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 우선 이 악기의 주인, 즉 인간에 대한 심층적 파악이 필요하다. 생각은 그의 모습 중 아주 작은 일부다. 그는 보면 볼수록 동물스럽다. (28p)
우리는 이런 기이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자들의 후손이 아니다. 호모사피엔스 중 일부만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는데, 그들은 목숨 걸고 사냥을 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짝짓기에 힘쓴 자들이다. 무엇을 위해? 삶의 의미를 찾아서? 자아성취? 아니다. 고기를 씹을 때, 이성과 살이 닿을 때, 한마디로 느낌이 완전 `굿`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상이 된 자들은 이 강렬한 기분을 느끼고 또 느끼기 위해 일평생 사냥과 이성 찾기에 전념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게 된다.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거창한 포부 때문이 아니라, 개가 새우깡을 통해 얻는 쾌감을 인간도 최대한 자주, 많이 느끼기 위해 고기와 이성에 몰두한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읽고 있는 우리에게 성공적으로 유전자를 전달했다. (70p)
자, 여기서 좀 황당한 상상을 한번 해보자. 어떤 최신형 동전탐지기가 등장해 동전에 접근할 때, `삐`라는 신호음 대신 중독성 있는 음악을 들려준다고 하자. 혹시 이런 경우 동전을 찾게 해주는 신호(음악) 자체에 매료되는 사람은 없을까? 아니, 한 발 더 나아가 음악 대신 아예 뇌에 미세한 쾌감을 준다면?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탐지기 주인이 자기의 원래 목적(동전)보다 그 목적 달성을 위한 신호(쾌감)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 말이다. 황당한 상상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행복을 좇는 우리 모습이 어쩌면 이같은 주객전도의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becoming(~이 되는 것)`과 `being(~으로 사는 것)`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재벌집 며느리가 되는 것과 그 집안 며느리가 되어 하루하루를 사는 것은 아주 다른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화려한 변신의 순간에만 주목하지, 이 삶을 구성하는 그 뒤의 많은 시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실상 큰 행복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살면서 깨닫게 된다. 그제야 당황한다. 축하 잔치의 짧은 여흥만을 생각했지, 잔치 뒤의 긴 시간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17p)
행복을 정육점에서 판다면, 현재 시중의 고기들은 기름이 너무 많이 붙어 있다. 오컴의 칼날이 필요하다. 그 칼날로 기름기를 제거하고 나면 행복의 살코기로 남는 것은 주관적인 즐거움과 기쁨니다. 행복하기 위해 쾌락주의자가 되자는 말인가? 다소 그럴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에서처럼 자신을 집단의 일부로 생각할수록 행복의 쾌락적 부분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동안 우리는 내일이 없이 즐겁게 사는 여름 베짱이를 한심하게 생각하도록 세뇌받고 살았다. 두 가지 염려 때문에. 첫째, 쾌락주의자들의 즐거움은 저급하다. 둘째, 그런 삶의 말로는 한심할 것이다. 둘다 근거 없는 염려다. 세상 모든 베짱이들이 루저가 된다는 증거는 없다. 수많은 최근 연구들에서 나오는 결론은 오히려 그 반대다. (1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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