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9
샬럿 브론테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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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샬롯 브론테 / 민음사

 그 시대, 남성 필명으로 발표했던 소설

 

 

 

 

  아주 어렸을 때, 좋아하는 책의 이름을 댄다면 주저 없이 말했던 책이 『제인 에어』였다. 청소년을 위한 축약본이어서 두께가 완역본에 비해 4분의 1가량 정도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책 속의 이야기와 상상하던 그 배경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지금이라면 '막장'이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릴 정도로 경악스러운 이야기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제인 에어'가 리드의 집, 그리고 학교에서 받은 핍박 같은 장면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잃고 난 로체스터의 곁에 그녀가 남는 장면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로맨스 소설이라 하면 그렇게도 말할 수 있다. 집 주인과 가정교사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날 이렇게 대한 건 니가 처음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로맨스의 우스꽝스러운 공식, 밀고 당기며 오해하는 그들의 사랑 빼고 이 소설을 말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에서부터, 제목까지 낚아챈 '제인 에어'라는 이름은 분명 큰 힘을 갖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여자고, 남다른 여자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이 틀에 박혀있던 그 시대에도 그랬지만, 지금으로서도 그러하다. 물론 현재에 와서는 '고루하고 고지식'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의 용감하고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는 제인 에어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심술궂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맹랑하고 자신의 선택에 완고했던 제인 에어는, 사랑을 하면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사회적으로 명성이 높은 로체스터에게도 정신적으로 평등한 존재로서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의 비밀을 알게 되고 나서, 그녀가 사랑을 잃을까 영혼을 잃을까의 문제에서는 결국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어디에도 종속하지 않는 '제인 에어'라는 존재로서 살아가기 위한 선택. 그러한 고뇌는  『제인 에어』 2권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난다. (어렸을 때 읽었던 축약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부분들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가슴에 남았다.)

  또한 책 속의 많은 대화는 (이 소설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질문인)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중 한 대목은 이렇다. "여성이란 집안에 처박혀서 푸딩이나 만들고 양말이나 짜고 피아노나 치고 가방에 수나 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보다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남성들의 소견 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 부분을 비롯하여 작품에서 드러난 제인 에어의 주체적인 행동과 결정, 그것은 여성으로서 소극적이고 순종적일 수밖에 없었고, 그 시대 남자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소망이 구현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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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하고 있는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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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비슷한 감정을 내가 맛보기는 그것이 처음이었다. 복수는 향기 좋은 포도주와 같아서 마실 때는 따듯하고 독특한 맛이 돌았다. 그러나 뒷맛은 쇠붙이 맛이 나고 입 안이 얼얼해서 흡사 독이라도 마신 것 같았다. 나는 당장 리드 부인에게로 달려가서 용서를 구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녀는 이중의 멸시로 나를 물리칠 터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성깔을 북돋우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절반은 경험으로 절반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거친 소리를 내뱉기보다는 보다 나은 정신 능력을 구사하고 싶었다. 음침한 분노보다도 무엇인가 부드러운 감정을 기르고 싶었다. (1권, 64p)

​`새로운 고생살이! 거기엔 무엇인가가 있어.`하고 독백을 했다. (마음속으로 했다는 것이지 크게 소리를 내서 했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 있다는 걸 나도 알아.` 왜냐하면 그다지 구미를 당기는 말로는 들리지 않으니까. 자유니 흥분이나 쾌락이니 하는 말과는 다르다. 이런 말은 참으로 즐겁게 들린다. 하지만 나에겐 공허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처럼 공허하고 순간적인 것이어서 그따위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조차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고생살이! 이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일일 것이다. 내가 이제 원하는 것은 어디 다른 곳에서 봉사하는 것이다. 그만한 일쯤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단 말인가? 이것쯤은 실행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할 수 있어. 할 수 있고 말고. 목적은 힘든 것이 아니다. 만일 내가 그 목적을 달성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예리한 두뇌만 갖고 있다면. 이런 두뇌를 깨우쳐보려는 듯이 나는 침대 위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쌀쌀한 밤이었다. 나는 숄로 어깨를 감싸고 열심히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1권, 154p)

그러나 젊음처럼 외고집을 부리는 것이 또 어디 있을까? 무경험처럼 맹목적인 게 또 어디 있을까? 로체스터 씨가 나를 보아주건 보아주지 않건, 그분을 다시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기쁜 일이라고, 젊음과 무경험은 단언하였다. 그리고 또 말하는 것이었다. `어서 가자! 어서! 곁에 있을 수 있을 때 곁에 있어야 해. 이제 앞으로 며칠, 기껏해야 몇주일, 그러곤 그분과는 영 이별이란 말이야!` 그러고 나서 나는 새로 생겨난 고민 - 내 것으로서 가지고 싶지도 않고 키우고 싶지도 않은 흉측한 그것 - 을 묵살해 버리고는 달음질쳤다. (2권, 13p)

"나는 나의 제인에게 공단과 레이스로 만든 옷을 입히고 머리에는 장미를 꽂게 하겠소. 그리고 내 가장 사랑하는 그 머리에는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베일을 씌워주겠소." "그 다음엔 저를 못 알아보시겠죠. 그리고 전 당신의 제인 에어가 아니고 어릿광대의 옷을 입은 원숭이 아니면 이솝 우화에 나오는 남의 깃털을 빌려 단장한 어치가 되는거죠. 로체스터 님. 제가 궁정의 여인 같은 옷을 입기보다는 차라리 당신께서 무대 의상으로 잔뜩 장식하신 걸 보는 게 낫겠어요. 전 당신을 미남이라고는 하지 않아요. 하지만 전 당신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어요. 너무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아첨도 할 수 없어요. 당신도 저에게 아첨하지 마세요." (2권, 44p)​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의 양심과 이성은 나에게 반역하고 내가 그에게 반항을 하는 것이 죄악이라고 나를 책했다. 양심과 이성은 거의 `감정`과 같이 드높은 목소리로 미친 듯이 외쳐댔다. `자, 승낙하라! 그의 비참한 꼴을 생각하라. 그가 직면한 위험을 생각하라. 그가 혼자 남게 되었을 때의 상태를 생각하고 그의 앞뒤 가리지 않는 성질을 명심하라. 절망에 뒤따르는 무모함을 생각하고, 그를 달래고 구원하고 사랑하라. 그리고 너는 그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의 것의 되겠노라고 말하라. 세상에 너를 걱정할 사람이 누가 있느냐? 너의 행동으로 해를 입을 사람이 누가 있느냐?` 그러나 대답은 여전히 굴복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나를 걱정한다. 쓸쓸하고 고독하고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으면 없을수록 나는 나 자신을 존경한다.

나는 하느님이 내려주시고 인간에 의해 인정된 법을 지키리라. 지금과 같이 미치지 않고 바른 정신일 때 내가 받아들이는 원칙대로 살아나가리라. 법이나 원칙은 유혹이 없을 때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지금과 같이 육체와 정신이 그 존엄성에 대해 반기를 들었을 때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법과 원칙은 엄청한 것이며 침범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에나 개인의 편의를 위해 침범해도 좋은 것이라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것들은 가치 잇는 것이다. 나는 항상 그렇게 믿어왔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것을 믿을 수 없다면 그건 내 정신이 이상해진 탓이다. 아주 미쳐서, 혈관은 붙같이 달아오르고 심장은 박동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빨리 뛰고 있는 까닭이다. 지금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전부터 품어온 의견, 전부터 가지고 있던 결심뿐이다. 나는 거기에 꿋꿋이 발을 디뎌야 하는 것이다.` (2권, 1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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