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일격 밀리언셀러 클럽 136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둠 속의 일격』 로렌스 블록 / 황금가지

 사소한 생각이 주는 '한 방', 실제로도 존재할까요?

 

 

 

 
  앞서 읽었던 『살인과 창조의 시간』에 이어지는 '매튜 스커더' 시리즈 네 번째 편입니다. 이전 편이 아주 깔끔하게, 뒷맛도 개운하게 끝맺어주는 소설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조금 더 복잡해졌지만, 비슷하게 재미있지요. 그리고 전편에서도 매력적으로 여겼던 스커더의 성향과 성격들이 이 소설 속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경찰을 관둘 수 밖에 없었던 개인사도 조금씩 등장하고, 알코올에 탐닉하며 우연하게 찾아온 사랑을 맞이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듭니다.
  도저히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은 '미궁'과 같은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어둠 속의 일격』. 스커더는 9년 전에 일어난 '얼음송곳 사건'에서 살해된 8명의 여자들, 그리고 그중에 뭔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한 여인의 죽음을 파악해달라는 (그 여인의 아버지에게) 의뢰를 받게 됩니다. 이미 가해자라고 판명되는 사람이 잡혀 복역하고 있고, 설사 다른 가해자가 있더라도 9년이란 오랜 시간 속에서 자취를 감춘지 오래일 수도 있는 어려운 사건을, 스커더는 집요하게 파헤치게 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자리가 잡혀진 9년 전 사건을 드러내기란 쉬운 것이 아닐 겁니다. 딸의 죽음을 목격하고 잡힌 가해자를 파악하고 슬퍼했던 현실에 가까스로 적응해서 9년이란 시간을 보내왔지만,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착잡할지 모르고요. 사건과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그 관계를 파악하면서 나올 수 있는 비밀이 어떤 것일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현실이 두려운 피해자의 아버지는 의뢰를 포기하지만, 스커더는 멈추지 않습니다. "벌레가 가득 찬 깡통을 열어놓고 이제 와서 그 벌레들을 그냥 다시 깡통에 넣자고 결심할 수 없다"고요. 조심스럽긴 하지만 단호하게, 진실을 캐내는 여정을 끝까지 지속하지요.

  계속해서 파헤쳐도 진실이 나올 것 같지는 않은 책 속에 사건은 "탄광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는 꼴"과 같은 비유가 계속 나올 정도로 어렵고 막막합니다. 마치 어둠과 같죠. 그러나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나 경찰, 프로파일러들이 그러듯이 아주 사소한 생각하나가 큰 실마리를 주기도 합니다. 그 사소한 뭔가가, 빗겨서 생각하는 작은 뭔가가 번뜩일 때, '어둠 속의 일격'이 되는 거겠죠. 이런 '어둠 속의 일격'과 같은 '한 방'은 소설 속에서도 급격한 반전과 함께 큰 재미를 선사합니다.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이런 생각들이 사건에 크게 적용하는지는 의문입니다. 과연, 실제로도 이런 '한 방'이 존재할까요?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Copyright ⓒ 2014. by Rinny. All Rights Reserved.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선생님은 범인이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싶으신 거죠.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미리 알아 두시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설령 밖에 살인자가 돌아다닌다 해도, 살인자가 누군지 알아낼 길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증거가 남아 있진 않을 겁니다. 누군가의 공구 서랍에 피로 얼룩진 얼음송곳이 있진 않을 거란 말이죠. 제가 운이 좋아서 실 한 가닥을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배심원 앞에서 펼쳐 보일 수 있는 그런 물건으로 변하진 않을 겁니다. 누군가 따님을 살해했는데도 벌을 받지 않았고 그걸 생각하면 울분이 치미시겠죠. 하지만 범인이 누군지 아는데도 그자에게 손 하나 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그게 더 열 받지 않을까요?"

"그래도 알고 싶습니다."

"알고 싶지 않은 일들을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말하셨잖아요. 누군가 아마 이유가 있어서 따님을 죽인 것 같다고. 그 이유를 모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시겠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19p)

"날 해고하고 싶다 이거군요."

"당신이 그런 표현을 선호한다면......."

"선생님은 애초에 날 고용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날 해고할 수 있죠?"

"스커더 씨."

"벌레가 가득 찬 깡통을 열어 놓고 이제 와서 그 벌레들을 그냥 다시 깡통에 넣자고 결심할 수 없습니다. 이미 많은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나는 그것들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보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멈추진 않겠어요."

그는 기이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날 조금 두려워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어쩌면 내가 언성을 높였거나 왠지 모르겠지만 내가 위험하게 보였나 보다.

"긴장 풀어요. 내가 죽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죽은 사람은 그런 일을 당할 수도 없습니다. 선생님은 내게 수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고 나는 꺼지라고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비공식적인 수사를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도와준다면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겠지만, 혼자서도 해낼 수 있습니다." (164p)

아이는 내게 아파트 번지수를 말해 주기 시작했다. 나는 거리 이름을 말해 달라고 했다.

"세인트 마크스 플레이스 212번지요."

나는 순간 가끔 꿈에서 나오는 것 같은 순간을 느꼈다. 잠을 자면서 불가능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걸 알고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는 바로 그런 순간 말이다. 난 지금 앳된 목소리의 아이와 이야기를 하고 잇는데 이 아이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은 주소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아니면 아마도 이 아이와 엄마는 톰킨스 스퀘어 공원에서 다람쥐들과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 (223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