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불량일기 - 고군분투 사고 치며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에서 살아남기
에릭 케스터 지음, 차백만 옮김 / 미래의창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하버드 불량일기』 에릭 케스터 / 미래의 창

하버드 부적응자의 시트콤 같은 이야기

 
  뭘해도 요리조리 약삭빠르게 잘 빠져나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이상하게 운은 항상 지지리도 안 좋아서 남들보다 더 곤란한 상황을 겪고 좌충우돌하는 놈이 있습니다. 마치 코미디 시트콤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유독 그 사람에게 독특하고 기상천외한 일이 생기죠. 이 책을 보기 전엔 '바로 나다' 싶었는데, 『하버드 불량일기』의 주인공은 더하답니다. 평소에 하버드 학생'이라고 하면 모두 모범생 스타일에 반듯하고 깔끔한 사람들 뿐일 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의 학생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세계에서 내로라할 인재들이 모이는 만큼 바보같이 보이는 천재도, 날티나는 사람들도 모두 볼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죠.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그 상상을 강하게 깨 부십니다. 첫날부터 팬티를 입고 하버드 광장을 가로지르는가 하면, 교수님이 스크린에 띄운 중간고사 시험 성적 그래프에선 혼자 바닥을 치기도 하고, 기숙사에 침투한 노숙자로 오인받아 전교생 앞에서 경찰에 소환되기도 합니다.

 

 

  『하버드 불량일기』는 그가 하버드에서 대학 생활을 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입니다. 얼굴도 보통, 공부는 하버드생들 중에서 하위권인 '에릭 케스터'가 잘하는 게 있다면 바로 미식축구 (그는 체대생 입니다)와 '유머'입니다. 입학 첫날부터 사고를 치는 책의 앞장면을 볼 때부터, 그가 남다른 '똘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리고 미식축구 팀에 속해있는 그는 대회 준비하랴, 성적 따라가랴, 나름의 부담이 많습니다. 그는 하루하루 하버드에서 자신의 방법으로 생존하기 위해 기를 씁니다. 그리고 책 속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하버드의 모습들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컨닝은 기본인 학생들, 하버드의 3대 기행 (존 하버드 동상에 오줌싸기 등), 상류층만 들어갈 수 있는 클럽, 가끔 열리는 파티....... 저자인 에릭 케스터는 이런 하버드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고 신랄하게 내보이며 이야기합니다.

 

 

  책은 '하버드'의 실상을 낱낱이 고백하는 느낌이 아니라, 제목 그대로 우스꽝스러운 '일기'를 보는 느낌입니다. 저자인 '에릭 케스터'의 똘끼가 글에서도 묻어 나와 읽는 내내 키득거리며 웃게 하기도 하고요. 분명 에세이 장르인데, 소설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꽤 많은 분량에도, 점점 페이지가 조금 남아 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재밌더군요. 남다른 비밀을 가지고 있는 룸메이트, 15살의 어린 천재 대학생, 짝사랑 그녀 같은 다양한 캐릭터도 이 글에 매력을 더하는 듯싶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를 빼놓고서, 이 책이 재밌고 유쾌한 건 저자의 글솜씨 때문인 것 같아요. (미국식 농담이 가끔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고, 어느 정도 과장된 부분도 있다지만, 이렇게 재밌게 쓰는 것도 능력인 것 같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로 나오면 정말 많은 사람을 웃게 만들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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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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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시험지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학생들의 낄낄대는 소리가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학생들이 웃는 건 플름 교수 때문이 아니라, 화면에 비춰진 그래프 때문이었다. 플름 교수는 프로젝터의 배율을 확 줄였고, 그러자 그래프도 크게 축소됐다. 나는 실눈을 뜨고 그래프를 주시했다. 그러자 플름 교수가 다시 그래프를 확대해서 이번에는 그래프의 0점에서 50점에 해당하는 부분을 비췄다. 그래프에는 달랑 점 하나가 박혀 있었다. 마치 무능력의 바다를 떠도는 난파선처럼 '38점' 이라고 적힌 점 하나가 외로이 표류하고 있었다. "이런, 썅."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38p)

사실 하버드 학생들은 극성스런 부모를 둔 경우가 많다. 상당수는 오래전부터 인생의 목표가 오로지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었고, 그에 맞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심지어 몇몇 학생들은 유아기 때부터 하버드 입학을 위한 교육을 받아왔다. 부모는 아기가 손에 쥐고 놀던 장난감을 빼앗고 대신 그 손에 바이올린을 쥐어줬다. 아기는 '미래의 하버드생'이라고 적힌 턱받이를 하고 유아용 의자에 앉아 주기율표를 노려봐야 했다. 아빠는 침을 흘리는 아기에게 브로콜리를 먹어야지만 저녁에 루빅 큐브를 가지고 놀게 해주겠다고 말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수년 동안 심화 학습 과정이 이어졌고, 그 기간 동안 아이는 '여름방학 때 캠핑을 가느니 그 시간에 차라리 여름학교에서 유기화학을 배우라.'는 가훈을 철저하게 지켰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이미 정상적인 10대의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린 뒤였다. 이들이 고등학교 때 접했던 섹스라고는 생물 수업 시간에 관찰한 세균 간의 짝짓기가 전부였다. (47p)

모든 하버드 기숙사 입구에는 학생증을 인식시켜야만 문이 열리는 전자자물쇠가 설치돼 있다. 전자자물쇠는 대학교에서 흔히 쓰는 보안장치였고, 특히나 하버드에서는 아주 중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버드는 다양한 사람들을 비롯해 심지어 정신 나간 사람들도 왕래하는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버드 광장은 노숙자들로 넘쳐났다. 여기에 하버드 공부벌레들까지 더해지면 언제든 불의의 사고가 터질 수 있었다. 한마디로 하버드 광장은 나무 밑에서 천재가 형이상학 교재를 탐독하는 동안에 약간 떨어진 곳에서는 부랑자가 풀숲에서 똥을 누는, 매우 특수한 공간이다. 하버드 학생들과 노숙자들은 서로 다른 것 같으면서 동시에 비슷했다. 학생들은 노숙자가 다가와 돈을 구걸하면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한 시간 후에는 그 자신이 교수를 찾아가 리포트 점수를 더 달라고 구걸하는 처지가 된다. 게다가 하버드 학생들은 계속해서 혼잣말로 뭔가를 주절대고, 몸에서 악취가 풍긴다는 점에서 노숙자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165p)

하버드 학생들이 밤에 존 하버드 동상을 찾는 이유는 당연히 하버드의 3대 기행 중 첫번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번 찾은 학생이 또 다시 존 하버드를 찾는 걸 보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오줌을 싸러 오는 녀석도 많은 것 같다. 그 이유는 하버드를 상징하는 불멸의 아이콘에게 오줌을 갈기는 행위가 왠지 모를 쾌감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마디로 존 하버드에게 오줌을 싸는 행위는 하버드 학생들에게 일종의 치유 과정이었다. (2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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