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
팀 보울러 지음, 양혜진 옮김 / 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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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 팀 보울러 / 놀

 가족의 운명을 위해 위험천만한 거리를 달리다, 잘 읽히는 성장소설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성장소설에는 비슷비슷한 공식이 있다. 무언가 불완전한 생활을 하거나 가족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특이한 생각이나 행동을 하기도 한다.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의 '지니'도 이 공식에 속한다. 엄마는 다른 남자를 집에 데리고 오고, 아빠는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한다. 집세를 몇달이나 밀려 집주인이 찾아오기도 한다. 학교에선 '스핑크'라는 아이가 이유 없이 괴롭힌다. 그런 그가 어두운 밤거리를 달리기 시작한다. 정체불명의 누군가의 협박을 받고,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위험천만한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린다. 허리춤엔 뭔가 가득 들은 주머니를 찬 채로,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그에게 집도, 가족도 학교도 아무런 안정감을 주지는 않지만, 그가 밤거리를 달리는 이유는 '가족'을 위해서다. 가족의 운명을 짊어지고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달리는 한 소년. 군소리 없이 절박하게 달리는 소년의 모습에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터진다. 어린 소년이 왜 위험한 밤거리를 달려야만 했을까?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는 정말 잘 읽히는 소설이다. 소년의 절박한 뜀박질을 빠른 호흡으로 뒤따라가면서, 용기 있게 달리는 소년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 또한 그가 성장하고 결국엔 행복으로 치유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따뜻한 성장소설의 끝에는 항상 행복이 있고 깨달음이 있고, 화해가 있으니 소년이 더 이상 눈물 위를 달리지 않기를, 기쁨 속에 뛸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에서는 가슴 저릿한 감동이 있지는 않지만, 툭툭 던지는 말속에 미지근한 다정함이 있다. "그 개자식을 왜 사랑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지니. 한때는 싸우고 아등바등 하는 가족도, 이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필연이 있는 것이다. 어딘가 비정상적인 '지니'의 부모님도, 아들을 미워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사랑하지만 가끔은 실수를 하는 우리네 가족들의 모습과 참 비슷하다.
   그러나 소설의 방향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는 함정이 있어, 약간은 밋밋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와 소년의 따뜻한 성장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읽어봐도 좋겠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리버보이』를 쓴 작가이니, 그의 신작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제목이다. 원제가 『Night Runner』, 약간은 밋밋해 보이는 제목이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라는 세련된 제목이 되었다. 멋진 번역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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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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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색이 짙었어요. 번드르르하게 차려입었고요. 깔끔히 면도한 얼굴에, 미끈해 보이는 남자예요. 서른 살쯤 돼 보였고, 번쩍거리는 코트를 입었어요. 분명히......." 웬 손이 나타나 딸각 전화를 끊는다. 겁에 질려 돌아보자 내가 방금 묘사한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는 전화박스 문을 열고는 내가 나가지 못하게 떡 버티고 서 있다. 그는 잠시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싸늘하게 바라보더니, 침착하게 내 손에서 수화기를 빼내 제자리에 걸어 놓는다. 손수건이 펄럭이며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내 코트가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그가 조용히 말한다.

나는 그를 쏘아보며 당당하게 행동하려고 애쓴다. "번쩍거린다고 했지, 마음에 든다는 말은 안 했는데요."

그의 입에 미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눈은 그대로다. 계속해서 차들이 으르렁거리며 지나간다. 그가 옆으로 몇 걸음 옮기자 길가에 세워 둔 차가 한 대 보인다. 크고 번쩍번쩍한 차다. 앞자리에는 남자 둘이 탔고, 뒷자리의 인도 쪽 차 문이 열려 있다. 플래시 코트가 고갯짓으로 문을 가리키며 말한다. "타." (21p)

아빠가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맥주 캔을 내려놓는 소리가 나지 않았으니 침대는 물론 몸에도 엎질렀을 것이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한번은 몸에 온통 토한 채 그대로 잠이 든 적도 있었다. 나는 아빠가 괜찮은지 확인하러 가지 않을 거다. 지금 당장은 그 꼴을 보아낼 자신이 없다. 대체 내가 왜 저 개자식을 사랑하나 모르겠다. 함께 보낸 좋은 날들 때문인 것 같은데, 요즘은 그런 날도 거의 없다. 엄마도 똑같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집 밖을 주시한다. 아무도 없다. 애벗가는 조용하다. 어쨌든 이 근방은 늘 그렇듯 조용하다. 이웃들은 없느니만 못하다. 이런 때조차, 아니, 이런 때는 특히.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도, 괜찮은지 물으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늘 이런 식이다. 우리 엄마가 총에 맞았는데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이웃들은 그저 커튼을 닫고, 문을 걸어 잠그고, 오코로 가족이 자기네 문제를 알아서 처리하게 내버려 둔다.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아암." 나는 그들을 향해 중얼거린다. "댁들하고는 아무 상관없고말고." (69p)

"우리 그렇게 할 수 있어. 산뜻하게 새 출발을 할 수 있다고."

그런 말이 낯설다. 아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한번도 없어서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지금 환청을 듣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온갖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들판과 언덕들, 길고 고즈넉한 밤, 호수에 비친 달....... '산뜻하게 새 출발'이라? 안 될 게 뭔가? 엄마는 이미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활짝 미소까지 지으며, 하지만 나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꿈을 꾼다. (2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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