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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니맨 - 생에 한 번, 반드시 떠나야 할 여행이 있다
파비안 직스투스 쾨르너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저니맨』 파비안 직스투스 쾨르너 / 위즈덤하우스
인간은 여행길 위해서 다시 한번 태어난다
요즘 들어 여행의 가장 필수 요소는 돈이 아닌 용기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휴식과 관광을 위한 여행을 위한다면, 확실히 넉넉한 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을 위해서라면 돈이 우선순위는 아니다. 관광여행이 아닌 무언가 뜻을 가진 여행. 내가 그렇게 떠나기를 꿈꾸면서도, 혼자 어딘가를 배회하고 싶은 꿈을 꾸면서도 아직 이렇게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단언컨대 용기가 없어서가 아닐까. '언젠가는.'이라고 되뇌면서 지금의 일상을 버리지 못한다. 아직도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지금으로써 가장 걱정되는 것은 '언젠가는' 하다가 정말로 똑같은 일상 속에 틀어박혀버릴 것 같아서다.
중세 시대에 '수련 여행'이라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장인이 되려면 기술교육을 마친 뒤에 지식 체험을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랜드 투어'라고 불렸던 이 여행은 유럽의 특권 계층 사이에서 유행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다고 한다. 『저니맨』의 저자 '파비안'은 이 전통에 영감을 받아 세계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자신에게 엄격한 10가지의 규칙을 정하고 두 번째 인생을 위해 또 하나의 갈림길을 선택했다. 그는 "개인의 삶에도 르네상스의 시기가 있다."라고 믿었다.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난 뒤, 여행길 위에서 두 번째로 다시 태어난다고 했다. 그에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련 여행', 그는 두려웠지만 후회 없이 출정했다. 중국과 말레이시아, 이집트, 콜롬비아 등의 나라를 전전하면서 그가 자신에게 내린 규칙 중 몇 가지를 열거하자면, '여행지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번다', '잠 잘 곳과 먹을 것 말고는 바라지 않는다.', '금지구역 (고향에서 300킬로미터 이내인 곳)을 피한다'였다.
그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다. 무보수로 일하는 대신 숙식을 제공받으면서, 건축과 사진, 디자인 등의 일을 해냈다. 자신의 전공분야와 경험을 살려, 운 좋게 일자리를 구해서 전시회에 참여하기도 하고, 설계한 건축물을 직접 눈으로 보기도 한다. 단순히 '여가'를 위한 여행이 아니라, 장소를 바꾸어 '생활'하는 듯한 파비안의 여행은 '수련 여행'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방식인 것이다. 그는 "조건이 갖춰야만 떠날 수 있다."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고 한다. 익숙함과 안전함을 놓지 못한 소심한 마음을 갖는다면, '언젠가는'이 아니라 '언제라도'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비롯하여 여행에 관한 많은 책들을 접해왔다. 자신만의 목표를 갖고 세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여행가들의 삶을 만나보았지만, 『저니맨』은 유독 더 깊게 다가왔다. 이 책은 항상 '떠나고 싶다'라고 말하면서도 용기 내지 못하는 부끄러운 마음을 들춰내고 있었다. "여자라서 그곳은 위험할 거야.", "언어가 안되는데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은 현재 이 자리에 굳게 기둥을 꽂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아쉬운 마음이 크다. 지금도 그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건. 언제쯤 그 소심함을 버릴 수 있을까.
_ 한 챕터의 끝에는 QR코드가 있는데, 여행지에서 작업한 영상으로 연결이 됩니다.
사진보다 더욱 그 지역을 매력적으로 표현해내는 것 같은 영상들이었어요.
베테랑 여행자와 아마추어 여행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선 배낭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아마추어 여행자의 배낭은 딱히 필요 없는 물건들까지 빽빽이 들어차 있어 무겁기 그지없지만, 베테랑 여행자의 배낭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들어 있다. 심지어 여유 공간마저 남아 있다. 정말로 필요한 것들은 현지에서 구하면 되고, 못 구해도 크게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다. 아마추어 여행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필요해 보이지만, 베테랑 여행자는 필요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적응력이다.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일수록 짐이 가벼워야 한다. 배낭 속의 집 뿐만 아니라 머릿속에 든 짐까지. 여행이란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이나 신념을 공고히 다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 새로운 관념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179p)
"아짐, 제가 하는 일이 원래 계획되어 있었던 건가요?" 나는 그게 정말 궁금했다. "글쎄요, 미리 짜놓은 건 없지만 아무튼 당신은 잘 해내고 있잖아요." 아짐의 대답은 내게 '계획'이란 개념을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곳에서의 계획과 내가 독일에서 배웠던 계획은 개념이 확연히 달랐다. 독일에서 나는 '언제나 현실성을 잃지 말라'고 배웠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완전히 비현실적으로 계획을 세운 뒤 아이디어를 통해 현실의 장벽을 조금씩 헐어내는 식으로 접근했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이제껏 학습했던 '현실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한정적이고 제약적인 단어인지를 느끼게 되었다. "리얼리스트가 되라,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져라"라고 말했던 한 혁명가의 말처럼 '계획'이란 이미 불가능한 이상을 포함하고 있는 단어였다. (182p)
관광은 밝은 빛을 보는 여정이지만 여행은 빛 뒤에 가려진 어둠까지 봐야하는 여정이다. 그래서 관광객이 단지 눈으로만 즐거워할 때 여행자들에게는 가슴으로 아파할 기회가 주어지며, 그것이 곧 삶의 화두로 이어진다. 중세 이전, 혹은 그 이후의 수많은 수련여행자들이 자발적으로 고행과도 같은 여행을 선택한 까닭은 바로 그 화두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2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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