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렌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이렌』 피에르 르메트르 / 다산책방

이 소설은 정말 '세다'. 하지만 끝까지 읽게 된다

 

 

 
  형사반장 베르호벤 3부작이라고 일컫는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기존에 나와있던 책도 표지가 바뀌어 재출간되었고, 그중 첫 번째 책인 『이렌』은 『능숙한 솜씨』라는 소설의 제목이 바뀌어 새로 나왔다. 그 이외에 같은 제목으로 출간된 『알렉스』, 『카미유』가 이어지고, 비교적 짧은 양의 외전 『로지와 존』이 함께 나왔다. 추리 스릴러 책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사들이는 매니아들에겐 아주 반가운 소식이 될 듯하다. 비슷한 느낌의 표지, 그리고 한 손으로 들기엔 살짝 벅차도록 방대한 양의 소설은 독자들이 시리즈에 푹 빠져 며칠 동안 시간을 죽이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아,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가 상당하니, 너무 빨리 아쉬움을 맛볼 수도 있겠다.) 특히나 이 시리즈의 주인공 '카미유 - 베르호벤'은 캐릭터 상으로도 아주 매력적이다. 145cm의 키와 왜소한 체격으로 강력계 형사반장의 카리스마를 뿜어대는 주인공이라니.
  주인공뿐만 아니라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의 행보와 점점 밝혀지는 의도 또한 쇼킹할 정도다. 주인공인 카미유가 "지금까지 해결한 그 어떤 사건과도 같지 않다."라고 언급한 살인의 형식부터, "모든 것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의미심장하고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카피, 그리고 그와 관련한 '완벽한 텍스트의 소유'라는 목적까지. 그리고 가끔가다 작가가 책 속에 간혹 등장시키는 단상들도도 흥미롭다. 하찮은 분야로 취급되고, 유사 문학이라고 불려온 '탐정 문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살인'이라는 소재로 인한 선입견으로 만들어진 '이런 소설'에 대한 소외에 깊은 유감을 보내고 있기도 하고, 주인공의 회상에서 나오는 대화를 통해 '악'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한다. 공감 가는 이 이야기들은 전혀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연쇄살인사건이란 소재, 파악할 수 없는 범인과 가짜 손가락 지문, 참혹하게 다뤄진 인간의 몸체. 소설 속에서 나오는 것들을 연상해보자면 여느 스릴러 소설과 다를 것이 없지만, 특히나 이 소설은 조금 더 '세다'. 이 작가의 특징인지는 장차 시리즈를 하나하나 읽어봐야 알겠지만, 정말로, 꽤 쎄다. 무서운 것들을 싫어하지만 활자로 보는 것에는 조금 익숙하고 덜 두려워하는 편이어서, 어느 공포 스릴러 소설을 읽더라도 괜찮을 줄 알았지만, 이 책은 조금 달랐다. 참혹하게 다뤄진 시체도 상세하게 묘사된 점에서 심하게 눈을 찡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상황 자체도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으나 "절대로 이렇게는 안되겠지, 이러진 않을 거야. 설마 여기까지 나간다고?"하고 생각할 찰나에 예감이 진실이 돼버리는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의 안타까움을 주고 끝내버리는 이 소설에 다음 편, 그다음 편을 내건 작가의 배짱이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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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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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요사이 세상을 들썩이게 하고 있는 희대의 범죄를 맡고 있다.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극히 야만적'이고도 괴이한 사건이다. 사람들은 그 사건에 관해 더 소상히 알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이런저런 말들을 강력하고 간결하며 효과적인 방식으로 흘리고 다닐 뿐이다. 모두 영웅의 이미지 관리만을 염두에 둔 표현들이다. 하지만 그가 소소한 사건들을 외면하고 오로지 대형 강력사건에만 집중한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딱 한마디만으로 충분했을 수도 있다. 말한다는 것이 무얼 뜻하는지 잘 헤아리고 있는 베르호벤 반장은 닳고 닳은 기술로 완곡어법을 즐겨 사용하면서 대경실색한 얼굴로 길 가다 무심코 매스미디어의 시한폭탄과 마주친 척한다. 이제 한 달후 쯤이면 그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곧 태어날 자식을 위해 일하는 방식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원숙한 프로'의 반열에 이미 올라 있으며, 특히 끊임없는 인내심으로 그들만의 신화 창조를 꿈꾸는 이들이 베르호벤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 (146p)

루이는 카미유의 어깨 너머로 책을 넘겨보려다말고 느긋하게 책방 내부를 둘러본다. 그러는 동안 제자리에 우두커니 버티고 선 서점 주인은 뒷짐 진 자세로 물끄러미 창밖의 거리를 내다보고 있다. 카미유는 내부에서 발작에 가까운 감흥이 솟구치는 것을 느낀다. 서점 주인이 서표를 꽂아둔 지점으로 넘어가자 공포심까지 밀려올 지경이다. 입을 꾹 다문 카미유는 그 대목에 집중해서 파고들기 시작한다. 때때로 그는 머리를 이쪽저쪽으로 갸웃거리며 이렇게 웅얼거린다. "이럴 수가......" 보스의 반응을 보고 루이도 호기심에 이끌린다. 카미유는 루이도 읽을 수 있도록 책을 슬며시 추켜든다. 388페이지.

(...) "이런 망할.......!"

카미유는 혼잣말로 웅얼거린다. 두 눈이 페이지의 행들을 쫓아 화급하게 달려 나간다. 그러다 읽는 속도를 줄이며 생각을 가다듬어보려고 한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두 눈 앞에서 춤추듯 활개 치는 활자들이 자신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도 집중해야 한다. 숱한 생각들만큼이나 숱한 느낌들이 그의 뇌수를 가차 없이 짓눌러 온다. (200p)

사무실에서 막 나서려는 순간, 카미유는 뭔가 어렴풋이 떠올라 발길을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사무실 안을 빙 둘러보았다. 뭐가 마음에 걸렸는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출구로 향했다. 우연히 광고에서 본 표현이나 신문을 볼 때 눈에 들어온 이름이 가물거리다 마는 것처럼 이런 여운은 금세 희미해지게 마련이다...... 그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하지만 그 여운은 희미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해졌다. 본의와 상관없이 이런 여운에 출렁거리는 기억은 이름이 가물가물한 어떤 얼굴의 느끼해 보이는 인상과 맞닿았다. 과히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다. (2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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