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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피플 ㅣ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 북스토리
진지하거나 서글프거나 괴기스럽거나

'하루키'라는 이름 그 자체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이 되기 전에, 그리고 내가 그의 여러 작품들을 만나기 전에는, 이 작가가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내놓았는지 알지 못했다. 우연히 북 카페에서 만나 쉼없이 읽었던 『상실의 시대』 같은 장편 소설부터, 그리고 하루키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담백한 에세이들, 그리고 어깨너머로 들었던 많은 작품들의 이름이 '독서 활동'을 하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듯 새겨졌다. 그런데 『TV 피플』은 이상하게 전혀 들어보지 못 했던 제목이었다.
단편 소설집인 『TV 피플』. 그러고 보니 하루키의 단편 소설은 또 처음이었다. 읽어보지 못한, 들어보지도 못한 작품을 차례차례 접하니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누군가는 허세라고 치부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이 단순히 '이름값'은 아니었구나, 오랫동안 수많은 작품들을 내보였구나. 물론 큰 위상을 가지고 있는 작가인 만큼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피치 못할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섯 개의 단편 소설이 들어있는 『TV 피플』.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있었다. 어떤 단편은 내가 접한 다른 장편 소설들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있었고, 작품에서 나오는 진지한 대화 속에 하루키의 고민이 녹아들어 있는 듯했고. 그리고 어떤 단편은 평범한 일상 속을 침투한 긴장감을 살렸고, 어떤 단편은 거의 장난스러울 정도의 소재였지만 괴기스러울 정도로 독특했다. 가장 좋았던 단편은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점점 변화해가는 시대, 소멸되고 있는 세월에 대한 서글픔,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난 다음, 임금님도 신하도 모두 배를 움켜쥐고 폭소를 하였습니다."라고 끝내는 가벼운 유머가 좋았다. 이 소설은 단편이어서 더 좋았겠지만 긴 장편으로 나와도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고. 또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잠』은 멋진 일러스트판으로 새로 나오기도 했지만, 조금은 약했던 소설이었다. 표제작인 『TV 피플』도 아쉽기는 마찬가지.
수많은 그의 작품들 중에서 이 단편집을 손에 꼽지는 않을 테지만, 이 책에 수록된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는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주제도, 하루키의 내면도 분명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느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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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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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거기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 내 생각 - 거기에 있었던 것 자체는 그리 희귀한 것은 아니었다. 시대의 회전이 뿜어내는 열기와, 거기에 내건 약속과 어떤 종류의 무언가가 어떤 종류의 시기에 자아내는 어떤 종류의 한정된 찬란함, 그리고 망원경을 거꾸로 보고 있는 듯한 숙명적인 답답함, 영웅과 악한, 도취와 환멸, 순교와 전향, 총론과 각론, 침묵과 웅변, 그리고 지루하기 짝이없는 기다림, 그 밖의 등등, 등등.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그런 것들은 빠짐없이 있었고, 지금도 분명 있다.
하지만 우리들 시대(란 과장된 표현을 용서해주기 바란다)에는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손에 꼭 잡힐 듯한 모양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하나하나가 선반에 올려져 있었다. 더구나 지금처럼 무언가를 하나 손에 올려놓으면 허울 좋은 광고나 도움이 되는 관련 정보, 할인 서비스권이나 업그레이드를 위한 옵션 따위의 복잡한 것들이 줄줄이 따라오는 일도 없었다. 두툼한 매뉴얼북을 몇 권이고 덤으로 받는 일도 없었다. (예를 들면, 이 책이 초급 취급설명서이고, 그리고 이쪽이 중금이고, 이것이 상급의 응용 편이고, 그리고 이것이 초급 기종과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다룬 커넥션 설명서이고.......) 우리들은 그저 단순히 무언가를 손에 들어, 집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밤중에 가게에서 계란과자를 사는 것처럼 아주 간단하고 쉬웠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방식이 통용될 수 있는 마지막 시대이기도 했다. (35p,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그녀는 또 고개를 저었다. 정말 어쩔 도리가 없구나, 라고 말하려는 듯, 그러고는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사랑에 대해 우리가 뭘 알고 있을까, 라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 사랑은 아직 아무런 시련도 당하지 않았어. 우리는 아무런 책임도 지고 있지 않다고. 우린 아직 어린 애야. 너나 나나.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서글펐다. 자신을 둘러 싸고 있는 벽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 서글펐다. 방금 전까지, 그 벽은 그를 지키기 위해 존재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그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무력하다고 느꼈다. 나는, 이제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는 느꼈다. 나는 아마 이대로, 이 막강한 틀에 갇힌 채, 거기에서 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나이를 먹어가겠지, 하고. (54p,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그도 그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행기다. 그의 마음의 숲 속 어딘가에서 만들고 있는 비행기를. 그것은 어느 정도 크기에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어떤 색을 하고 있을까, 어디로 가려 하는가, 하는 것들을. 거기엔 과연 누가 탈 것인가를. 깊은 숲 속에서 끈기 있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비행기를. 잠시 후에 그녀가 또 울었다. 그녀가 하루에 두 번이나 울다니, 처음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두 번 운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특별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는 테이블 너머로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왠지 아주 리얼한 감촉이었다. 마치 인생 그 자체인 것처럼, 딱딱하고 매끈하고, 그리고 멀리에 있었다. 그는 생각한다. 그래, 그 무렵, 나는 마치 시를 읽듯 혼잣말을 했다. (92p, 비행기)
그럼, 죽음이란 대체 무엇인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때까지, 잠을 일종의 죽음의 원형이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죽음을 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이란 요컨대, 보통 때보다 훨씬 깊은, 의식이 없는 잠 - 영원한 휴식, 블랙 아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죽음이란 잠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상황이 아닐까 - 그것은 어쩌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 같은 끝이 없고 깊은 깨어 있는 어둠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이란 그런 암흑 속에서 영원히 각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죽음이란 상황이 휴식이 아니라면, 우리들의 이 피폐로 가득한 불완전한 생에 대체 어떤 구원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결국은 아무도 죽음이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누가 죽음을 실제로 보았는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죽음을 본 사람은 이미 죽어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은 죽음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다만 추측할 뿐이다. (152p,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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