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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여행법 - 세상의 모든 길들
미셸 옹프레 지음, 강현주 옮김 / 세상의모든길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철학자의 여행법> 미셸 옹프레 / 세상의 모든 길들 (2013.3.15)
정해진 장소를 따라, 사이를 가로지르며, 찬란한 순간을 맛보는
'여행'이라는 말 한마디로 가슴 떨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는 가족들과 오랜만에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누군가는 일상의 지루함을 탈피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목표했던 곳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곤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여행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여행자의 상황, 기분, 준비과정에 따라서 가지각색이겠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부터 '기쁨'과 '만족'을 얻는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혹여 그 기쁨에 더하여 큰 만족을 얻고 싶다면, 그 답은 '여행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철학자의 여행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한줄로 함축해보면, 여행이란 '소크라테스의 다이모니아가 이끄는 대로 니체의 원근법으로 세상을 보고 바슐라르의 상상력으로 세상을 해석하며 사이(entre-deux)의 시공간을 꿈처럼 떠다니다가 현실 속 이타카로 귀환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놓으니 굉장히 어려운 철학서인듯하지만, 읽는데 어렵지는 않다. 대부분의 철학적 상식들은 주석이 포함되어 있으며, 본문은 주옥같은 문장들과 함께 물 흐르듯 읽을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자아에 대한 탐험'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책에서의 여행은 자신을 돌아보고 또 다른 상황에서의 자신을 직면하고, 자아가 이끄는 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나'를 잊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말한다. 그런 경우 자신을 잊지 못함은 물론이고, 가장 두려웠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유목민의 기질을 타고났기 때문에 여행을 갈망하고 또 갈망한다. 여행의 장소를 정할 때부터 우리는 흥미로운 경험을 시작하게 되는데, 우리가 여행할 지점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들에 의해 우리가 선택된다는 것이다. 우리 기억 속에 뿌리 깊이 존재하는 무언가가 갑자기 어떤 감정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여행의 시작, 그것은 딱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다. 그리고 여행자는 그때부터 '사이'의 상황에 돌입하게 된다. '사이'의 상황이란, "더 이상 떠나온 장소에 있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우리가 갈망하던 장소에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공간이다. 그곳은 사람들이 오가며 무가치한 말을 주고받는 곳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목적지가 다른 누군가의 출발지가 되는 새로운 공간, 새로운 공동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교차의 장소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꿈꾸던 장소에 도착한다. 이후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이는 여행, 그 순간들은 "세공해야 할 원석과 같은 기억"이다. 그래서 어떤 것으로든 가장 편한 방법으로 기록해야 한다. 냄새와 향, 소리, 맛, 시각과 같은 모든 감정들을 사진이나 그림, 시, 녹음 등으로 기록한다. 그것에 대한 기록은 "여행을 어느 정도 불멸시키고, 강렬한 순간들을 고정시킨다."
<철학자의 여행법>은 여행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 그리고 여행의 기억을 빛바래게 하는 위험한 행동들 몇몇을 언급하면서, 철학적 맥락에서의 '참 여행'을 말하고 있다. 떠나고자 하는 용기는 있지만 시간이 잘 나지 않아서 쉽게 떠나진 못하는 오늘 우리의 '여행'. 그러나 갑자기 뭔가에 끌린 듯이 떠나게 되는 여행에서의 빛나는 순간을 재창조하기 위한 생각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선, 여행의 모든 순간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을 하는 도중, 어떤 책을 읽어야만 한다면 난 이 책을 고를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생각들은, 다른 많은 물품들을 제외한 오로지 내 마음을 위한 '준비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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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하고 있는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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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일종의 시작 의식과도 같다. 독서는 이교도의 신비를 밝혀 준다. 욕구가 점점 더 커질수록 한층 정제되고 세련되고 독창적인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인위적이거나 문화적인 환희를 경험할 수 있으려면 자연스러운 욕구가 넘쳐흘러야 하고, 그럴 수 있을 때 비로소 관능적인 여행이 가능해진다.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는 장소에 도착하게 되면, 우리는 존재론적인 공허함을 느낄 수도 있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단지 이미 가지고 있던 것만을 발견할 수 있다. 여행자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여행은 공허해진다. 따라서 풍부한 준비는 뛰어난 여행을 만든다. (33p)
고장나 있던 모든 감각들을 여행을 통해 다시 살아나게 하고 그것을 글로 정리할 때 이 모든 훈련이 가능하다. 거대한 강 하구의 반짝거리는 물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트란실바니아 상공을 날고 있는 비행기의 둥근 유리창 옆에서, 수천 헥타르에 달하는 아프리카 평야 한복판에 외롭게 자리 잡은 어느 카페에서, 피곤한 육체 위로 공기를 낮게 보내 주는 선풍기가 달린 이집트의 호텔 방이나 공항 대기실에서 시를 쓰거나 구겨진 종이에 글을 써 보는 것은 단어에 대한 연금술적인 능력을 요구한다. 백열하는 여행의 소재를 경험이라는 도가니 속에 쏟아부어서 한 줌의 이미지라는 황금을 얻는 것이다. (39p)
온갖 정보들이 끝없이 밀려들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모든 정보들을 다 붙잡을 수는 없다. 여행은 사실 우리의 오감을 확대시키는 기회를 제공한다. 더 생생하게 느끼거나 듣게 되고, 더 강력하게 쳐다보거나 지켜보게 되고, 더 주의 깊게 맛보거나 만져 보게 된다. 새로운 경험들을 준비하느라 불안하기도 하고 긴장하기도 한 몸은 평소보다 더 많은 것들을 기록하게 된다. 매일의 사소한 일과보다는 현상학적 시련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 일상 속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의지와 의식의 작용에 의해서 자신이 제한된 존재임을 깨닫고, 결정하지 못한 자질구레한 일들 속에서 허무함을 경험한다. 그러나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의 감각은 완전히 기능하게 된다. 감동, 애정, 열정, 놀람, 의문, 감탄, 기쁨, 경악, 이 모든 감정들이 아름답고 숭고하고 낯설고 색다른 경험과 뒤섞인다. (67p)
우리가 우리 자신과의 동행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길을 나설 때 우리의 영혼 속에 담겨 있던 것들은 여행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열 배 정도 더 커져 있게 된다. 우리 안에 있던 고통과 상처, 권태와 번민, 아픔과 불행, 슬픔과 우울은 여행을 하는 도중에 점점 더 확대된다. 세계일주 여행을 한다고 해도 이런 것들은 치유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정점에 달하게 되고, 우리는 그 깊은 구렁텅이 속으로 점점 더 빠져들게 된다. 여행은 우리에게 치료제로 작용하기보다는 우리 존재에 대해서 정의해주고,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해준다. 단지 자신을 잊기 위해서 떠난다면 자신, 그것도 가장 직면하기 두려웠던 자신을 직면하게 될 위험이 더욱 크다. (1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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