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 메메드 - 상
야샤르 케말 지음, 오은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의적 메메드』 아샤르 케말 / 열린책들

 영웅을 보는 민중의 시선

 

 

 
 
 
  책을 덮고 난 뒤,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타락한 시민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그리고 다수 시민들에게 희망을 남겨주기 위해 악당이란 누명을 쓰며 쫓기는 배트맨의 모습을 떠올렸다. 화려한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자유자재로 누비며 약한 사람들을 적들로부터 멋지게 구해내는 영웅에게 연민이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면 '영웅' - 단어의 의미부터 남다르고 거창한 이 이름 - 이란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영웅이 품은 큰 뜻, 그 원인이 복수심이든 단순한 동기든 상관없이 그것은 자기 자신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을 향하기 때문이다.
  과거 터키의 사회 현실을 알려주는 듯한 이 소설은 '의적' 메메드, 즉 그 사회에서 다수를 위해 의롭게 싸웠던 청년 영웅을 허구적으로 그려내어 이야기한다. 죽도록 일하고도 지주의 탄압으로 제대로 일한 값을 받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그 중 한 소년이었던 '메메드'. 그는 주변에서 말하던 "스스로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마을을 꿈꾸며 마을을 탈출하고 여태껏 보지 못 했던 크고 다른 세상을 목격한다. 탈출 후 포악한 지주에게 금방 잡혀오지만, 조금씩 큰 뜻을 품기 시작한다. 시작은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고 싶다는 꿈일지도 모르겠지만, 점점 그 뜻은 다수에게 향한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땅에서 자급자족하며 살게 하는 꿈, 자신은 산에서 그들을 지켜낼 수 있는 꿈. 그러나 조금은 평범해 보일지 모를 '의적 메메드'의 삶은 쫓기고 쫓기는 투쟁으로 가득했고, 사랑 또한 쉽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로부터 자유를 얻은 마을 사람들도 결국은 그를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세상만이 계속되고 있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영웅'이 되는 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메메드'라는 작은 소년이 큰 뜻을 품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작은 '영웅'은 곳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많지는 않아 보인다, 현대에는 더욱. ) 자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많은 압박을 받으면서까지 터키의 리얼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이 작가 또한 - 쿠르드족의 독립투쟁을 정부는 탄압하고 있다고 한다. -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자국 내의 답답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영웅'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러길 바라는 또 다른 국가의 바람이 만든 것일지도. 결국은 '영웅'의 또다른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불행한 현실 속에서 기댈 곳 없는 민중들의 희망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우리가 바라보는 '영웅'이기도 하다.
  ​작가는 '영웅', 즉 '소명을 가진 자들'에 대하여 파헤치고 싶었다고 언급했으며, 이 소설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책의 뒤쪽에서 다시 전하고 있다. 그는 '인간은 궁지에 처해 있거나 극한의 고통을 느낄 대 자신들의 은신처가 될 신화의 세계를 창조하려 한다'는 것이다. 어두운 세계의 '은신처'가 될 수 있었던 '의적' 그리고 '영웅', 결코 많지 않은 그들이 밑거름을 쌓아준 희망의 세계를 지켜나갈 것은 '우리' 밖에 없다는 것을 깨우쳐주고 있다.
 
 
 

 

Copyright ⓒ 2014. by Rinny. All Rights Reserved.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메메드는 충격에 휩싸였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온갖 상념에 빠져 있었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밀려왔다. 머릿속엔 온통 이 넓은 세상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어쩌면 세상이 이렇게나 넓을 수가 있을까? 물방앗간 마을은 이제 하나의 점처럼 느껴졌다. 그 대단한 지주 압디도 개미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사랑과 연민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나 자신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메메드는 몸을 뒤척이며 중얼거렸다. 「지주 압디도 사람이고, 우리도 사람이야......」 (109p)

「메메드, 이 녀석아. 네가 못된 짓을 하거나 엉뚱한 사람을 죽이기라도 하면 내가 이 손으로 너를 직접 경찰에다 넘길 테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내가 해칠리 없다는 걸 아저씨도 잘 아시잖아요.」

쉴레이만은 반색을 하며 메메드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말을 잘 들어 보렴, 아들아. 네가 결백하거나 나쁜 짓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이거나 또 재물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면, 너는 나를 피해가지 못할 거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관련 없는 자들만 죽였어요.」 메메드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

쉴레이만은 그래도 그의 목을 놓지 않고 덧붙였다.

「그런데 또 다른 지주 압디를 만났는데도 그런 자를 네가 죽이지 않는다면, 내 손이 너를 용서하지 못할 거다. 네가 백 명의 지주 압디를 만나면, 만나는 대로 다 죽여야 한다......」 「약속할게요......」 메메드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백 명의 지주 압디를 만나면 백 명 모두를 죽여 버리겠어요.」 (167p)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자바르?」

자바르가 대답했다.

「내가 어찌 알겠어?」

​ 「디켄리로 가는 거야. 다섯 마을에 사는 노인들을 모두 한 군데로 불러, 지주 압디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지. <지금부터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소들은 여러분 것입니다. 절반이고 뭐고 소작료는 이제 낼 필요가 없어요. 땅도 모두 여러분 것이 되는 거예요. 농사는 원하는 만큼 지으세요. 내가 산에 있는 한, 마음 놓고 사십시오. 내가 총에 맞아 죽으면 그때나 다른 방법을 찾아보시고요.> 나중에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엉겅퀴 밭을 모두 태워 버릴 거야. 엉겅퀴를 태우지 않으면 절대로 농사를 못 짓게 할 거라고.」

자바르가 눈시울을 적시며 말했다. 「좋아. 지주가 없는 마을이라니! 자기가 수확한 것은 모두 자기가 가져가는 거야.」

메메드가 미소를 지었다. 「자기가 수확한 것은 모두.......」 (393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