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21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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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찰스 디킨스 / 열린책들

족쇄가 되버린 인생역전의 꿈,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요

 

 

 

 

 After Reading                                                                                                                                    

 

 

   ​사람들은 가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아, 하늘에서 돈이 마구 쏟아졌으면 좋겠다" 요행을 바라는 것, 어리석은 일이지만 가끔은 당신도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있지 않은가? 물론 이건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엄청나게 극소한 확률이 주어지는 일)이지만 혹시 로또에 당첨되거나 상속돼있는 유산을 받게 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떠한 반응을 할까? 아마도 제일 먼저 당혹스럽고 어리벙벙할 것이고, 정신을 차린 후엔 엄청난 기쁨이 밀려올 것이다. 그러나 그 후로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사람들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준비되지 않은 인생역전, 갑자기 뒤바뀐 삶은 감당하기 너무 버겁거나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인생역전 스토리는 소설, 영화, 드라마 등 많은 곳에서 다뤄지는데, 그중 꽤 오래전에 쓰였을 이야기 <위대한 유산>의 주인공 핍이 바로 이 행운의 사나이다. 소년 '핍'은 어려서부터 누나와 매형 '조'의 집에서 '손수' 키워졌다. (손수 키워졌다는 것은 모유가 아닌 분유나 우유에 적신 빵조각을 먹이거나, 혹은 매를 때려 키운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소설은 핍이 마을의 묘지에서 탈옥수를 만나 협박을 당하고, 그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는 걸로 시작된다. 탈옥수의 협박에 벌벌 떨어 굴복하고 몰래 음식을 가져다준 '핍'의 행동은 오랫동안 소년의 삶 속에서 죄의식으로 남아 있게 된다. 다소 괴팍한 누나와 스무 살 차이의 '조'와 함께 생활하던 어리숙한 소년 '핍'에게 어느 날 으리으리한 저택에 사는 은둔자 '미스 해비셤'을 돕는 역할이 주어지게 되는데, 해비셤의 양녀인 '에스텔라'에게 마음을 뺏기게 된다. 그러나 항상 그를 멸시하는 '에스텔라'의 행동으로 '신사가 되고 싶다'라는 바람이 '핍'에게 생기게 되고, 어느 날 그 바람을 이룰 수 있는 행운이 그에게 찾아오게 된다. 바로 이름 모를 누군가의 유산을 받고, 그 대신에 '제대로 된 신사가 되어야 한다'라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고, 멋진 신사까지 되는 꿈을 이루게 된 '핍'. 과연 그는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 책표지에 나와있는 그림, <하편>에서 기울어진 의자와 흔들리는 촛불, 금방이라도 넘어질듯한 유리 잔은 어떤 것을 의미하고 있었을까. 사랑하는 여자를 쟁취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멋진 신사가 되고자 하는 순수한 바램은 영국의 자본주의 사회를 만나면서 조금씩 흔들리게 되고, 갑자기 신분이 상승한 자신에게 굽실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핍'은 변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씩 걷혀지는 비밀들과 추악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그는 서서히 깨닫게 된다. 어떤 것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지를, 그리고 무엇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지를, 그리고 이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내용이 어떻게 진행될지,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와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소설의 구조 때문에 지루할 틈 없이 편안하고 재밌게 읽어낼 수 있다. 또한 깔끔하고 통쾌한 마무리가 인상적이기도 하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가 왠지 정석적인(?) 고전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듯했지만, 이 소설이 1860년대에 주간지 연재를 시작했다고 하니, 지금 읽어도 절대 어색하지 않은 놀라울 정도로 세련된 소설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Underline                                                                                                                                                  

 

 

  ​한때 조의 도제가 되어 소매 깃을 접어 올리고 대장간에 들어가게 된다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막상 내 손아귀 안에 그런 현실이 쥐어지자 내가 싸구려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먼지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그리고 비교를 해본다면 모루가 깃털처럼 느껴질 정도로, 무겁고 육중한 짐이 내 일상의 기억 위에 놓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뿐이었다. 이후 세월이 흐른 뒤 훗날 내 인생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지루한 인내의 삶 말고는 그 어떤 일에도 더 이상 관여하지 못하도록 한동안 모든 재미난 일들과 낭만적인 일들 위로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발을 들여놓은 조의 도제 생활이라는 길을 따라 내 인생행로가 쭉 펼쳐져 있던 그때처럼 그런 커튼이 너무나도 무겁고 공허하게 드리워진 적은 결코 없었다. (상권, 184p)

  세상의 모든 사기꾼들은 자기자신을 속이는 사기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그런데 나는 그런 터무니없는 구실들을 만들어 내면서까지 자신을 속인 사람이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만든 0.5크라운짜리 가짜 동전을 아무것도 모르고 받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스스로 만들어 낸 가짜 동전이라는 걸 알면서도 진짜 동전인 양 생각하는 일이 어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낯모르는 사람이 친절을 베풀며 안전을 위해 내 은행권 지폐들을 꼬깃꼬깃 접어 주겠다는 구실로 그것들을 사취한 뒤 내게 가짜 지폐들을 내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손기술은 내가 스스로 접어서 진짜 지폐들인 양 나 자신에게 건네고 있는 내 손기술에 비하면 얼마나 대수롭지 않은 것인가! (상권, 384p)

  아직도 세 시간가량이나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을 모두 소비하면서, 이처럼 감옥과 온갖 죄악의 오점들로 온통 둘러싸여 있다는 게 참 이상하다는 생각, 그리고 그때의 그 오점은 퇴색해 버리긴 했지만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그동안 두세 차례 튀어나와 내 앞에 재등장했었다는 생각, 그러다 그 오점이 이처럼 새로운 방식으로 내 운명과 내 행운에 스며들기 시작하고 있다는 생각 등을 했다. 이런 생각들에 열중하면서 나를 향해 오고 있는 도도하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에스텔라도 생각했다. 그리고 감옥과 그녀가 너무 대조되어 끔찍한 혐오감을 느꼈다. (상권, 28p)

  「그래, 이게 바로 -」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그가 두 손으로 내 두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며 말했다. 「이게 바로 내가 만든 신사다 이거지! 진짜배기 신사 말이다! 너를 바라만 봐도 좋다, 핍! 내 요구 조건은 그저 네 옆에 서서 바라만 보는 거란다, 얘야!」

  나는 가능한 한 빨리 손을 빼냈고, 그제야 내 처지를 숙고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서서히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쉰 목소리를 들으면서 양옆으로 잿빛 머리카락이 나 있고 주름이 깊게 파여 있는 그의 대머리를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비로소 내가 어떤 육중한 쇠사슬에 묶여 있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권, 14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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