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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 산다는 것 - 잃어버리는 많은 것들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제니퍼 시니어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부모로 산다는 것> 제니퍼 시니어 / 알에이치코리아
잃어버리는 많은 것들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아이들을 참 좋아하지만 정말로 '잘' 키울 자신은 없다. 아직 엄마가 되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배 아파 낳은 사랑하는 자식이 갑자기 짜증 덩어리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한 부모의 자식인 나도 자라는 내내 부모님 속을 썩이고 또 썩인다. 내가 만약 부모가 된다면, 처음으로 경험하는 '부모'라는 이름에 환희를 부르겠지만, 점점 더 걱정은 태산일 것이다. 밖에 나가면 많이들 보이는 젊은 엄마들은, 내가 보기에도 꽤 어리숙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영화를 보러 왔다가 아이가 생떼를 부리는 바람에 채 다 보지도 못하고 복도에서 아이를 안고 조마조마 스크린을 살피는 엄마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우는 아이들을 어쩌질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있는 엄마들을 보면....... '부모로 산다는 것', 역시 참 어려워 보인다.
이 책은 미국인 저자에 의해 미국 사회의 부모 - 아이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뤄졌지만, 책에서 보이는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중산층 부모들의 이야기를 주로 하면서, 엄마에게만 집중되는 육아, 가장의 피로에 허덕이는 아빠, 커갈수록 점점 손윗사람이 되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산층의 어린이는 자기 부모에게 자기 의견을 주장하면서 대들고, 자기 아버지의 무능함을 불평하며, 부모가 내린 판단을 헐뜯고 방해한다.") 아빠들은 육아에 대한 판단에 그리 가혹하지 않은데 그것은 아이들을 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엄마들보다 육아에 대한 완벽주의가 조금 덜한 것뿐이다. 미국의 엄마들도 우리의 열성 엄마들처럼 좋다는 것들은 모두 양육에 참고한다. '구몬'같은 학습지, 미식축구 같은 스포츠, 그리고 외국어를 아이에게 익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외국어를 번갈아가며 말을 건다. 책 속에서는 양육에 대한 부모 (아빠와 엄마)의 시각 차이 또한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다루며, 다양한 학문을 토대로한 설명과 함께 (주석이 엄청나다.) 부모의 마음을 감정적으로 이해하는 글 보다는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냉정하거나 혹은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여타의 육아 관련 도서들과는 달리,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책들보다도 '부모'의 삶에 집중하여 삶의 방향을 만들어나간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육아의 고통을 기쁨으로 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잃어버리는 많은 것들,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아이를 낳자마자 아이에게 속박을 당하고,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가지만 왜 사람들이 자식을 키우고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가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아이는 향기로울 수 있고 사랑스러울 수 있고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어른이라면, 너무도 뻔뻔스러워서 미치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든 특성 또한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필립스는 이 특성들을 하나씩 열거한다. 아기는 자제할줄 모른다. 우리가 하는 언어로 말을 하지 않는다. 또 스스로를 다치게 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아기는 지나칠 정도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사는 것 같다. 마치 이 세상에는 자기 혼자만 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41p)
사람들은 모두 판에 박힌 일상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한다.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어른 자아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한다. 적어도 이따금씩은 그런 경험을 간절하게 바란다. 공적인 역할들과 일상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온갖 의무들과 관련이 있는 자아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단순히 휴가를 가거나 독한 술을 마심으로써 그런 위안을 찾을 수는 있다.) 내가 이야기하는 자아는 육체보다는 머리에만 의지해서 너무 많이 살아가는 자아,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보다 세상의 원리에 대한 지식으로 짓눌려 있는 자아, 누군가로부터 비판과 평가를 받고 사랑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자아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관용과 무조건적인 사랑이 넘치는 세상에서 살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65p)
아이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지식이 (이 지식은 하루 온종일 우리 주변에서 윙윙 소리를 낸다) 한때 우리가 배워야 했던 바로 그 지식임을 일깨워준다. 아이들은 옷을 입은 채로 욕조에 들어가고 먹다 남은 바나나를 냉장고에 집어넣으며 장난감을 장난감 제조회사들이 전혀 상상도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사용한다. (각각의 물감을 따로 사용하지 않고 아예 여러 개를 합치고 섞어서 사용한다. 스티커를 나란히 붙이지 않고 포개서 계속 붙인다. 도미노를 블록으로 사용하고, 자동차를 하늘을 나는 비행체로 사용하고, 발레 치마를 신부의 면사포로 사용한다. 그래 아이들아, 실컷 해라!) 지금까지 그 누구도 아이들에게 다른 방식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전체 우주는 온갖 종류의 실험을 기다리고 있는 대상이다. (178p)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는 상실을 피할 수 없다. 아이가 어느 날 자기를 훌쩍 떠나갈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쏟아부어서 강하게 키우는 것이 부모가 수행해야 하는 역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자기 몸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할 때조차도 우리는 이 아이들이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나고 말 것을 예감한다. 우리는 이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이제 곧 아이가 벗어 버릴 모습을 아쉬워한다. (4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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