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사회 - 현대사회의 감정에 관한 철학에세이
정지우 지음 / 이경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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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사회> 정지우 / 이경

 개인의 보편적 관념이 사라진 지금, 우리의 사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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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 한국 사회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지금의 한국은 정말 분노 덩어리다. 해결되지 못한 많은 병폐들이 교묘하게 덮어씌워져서, 혹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흩어져서 조용한 울음과 분노로 터져나오고 있다. 조용히 타오르는 촛불 속에서 우리의 슬픔은 끓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무리 빠른 성장과 역사적인 아픔이 있기로서니, 어느 하나 불안하지 않은 곳이 없어 개인의 무기력함과 우울은 더해진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에 대한 답을, 그리고 생각의 틀을 <분노사회>를 통해 잡을 수 있을 듯 싶었다. 작가가 말하는 분노 사회란 무엇인가. 우리나라, 한국의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을까. 책을 덮은 지금, 우리의 사회는 예상했다시피, 너무나 심각했다. 

  현대사회에서 감정은 의식, 즉 관념에 의해 드러나는데 그중 분노라는 감정은 유독 관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크게 드러난다. 분노는 그 관념이 정당한 것인가 부당한 것인가에 따라, 혹은 올바른 것인가 그른 것인가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지며, 분노가 증오로 바뀌는 연결점이 바로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분노는 정말로 많은 부분 왜곡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큰 굴곡이 있었고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성장과 병폐가 동시에 발생된 만큼, 집단주의 또한 너무나 팽배해졌는데, 뜨겁게 일어나는 집단주의가 있는 반면에 개인들은 자신의 보편적인 사회와 관념을 또렷하게 자리매김하지 못한다. 개인의 보편적인 관념이 만나서 사회가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데, 그 보편적인 관념마저 형성되지 못한 채 그릇된 분노와 증오를 쏟아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한국 사회는 안타깝고도 허탈한 단어로 존재한다. '사회 없음' 어긋나버린 개인의 관념과 사회가 정상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부자연스러운 사회. 증오와 분노, 상실이 넘쳐나는 사회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다.

  최근까지 엄청난 논쟁에 휩싸인 '일베(일간 베스트)'는 증오의 아이콘이다. "증오는 자기가 믿는 세계가 현실과 일치하지 않을수록, 그럼에도 더욱 자기의 세계를 맹신하고 싶을 때" 불어나는 감정인데, 그들의 증오는 너무나도 뒤틀리고 끔찍한 모습으로 보이고 있다. 자신들이 믿는 세계에 도취되어 있는 그들, '일베'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우리는 또한 분노를 일으킨다. 책에 발췌된 내용에 따르면 그들은 "자기 존재를 형성하는 임을 외부에서 찾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좌절한 사람들이기에 급진적인 변화를 선호한다."라는 것이다. (에릭 호퍼 『맹신자들』) 그것은 극우를 비롯하여 극좌에도 포함된다. "열등감, 시기심, 수치심에서 비롯된 좌절과 분노는 사회가 정당하게 바로 서는 데는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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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에 의하면 "나 하나만 잘하면 돼"하는 상상은 절대 잘못된 것이다. 인간은 계속해서 변화되는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으며,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의 내면만을 향하는 것은 결국 막다른 길에 머물 것이며, 자신의 존재가 반드시 세계 전체와 연계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올바른 관념을 형성하고, 그 관념과 일치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믿음과 (그러나 사회가 당연히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 따른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자유를 갈망하며 책임을 감수하는 개인들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타자를 고려하고, 삶에 대한 정확하고 올바른 관철이 좋은 사회를 건설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정당한 분노가 행해질 수 있을 것이며, 현재의 '사회 없음'으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가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답이 나온다. 우리는 개인의 올바른 의식(관념)을 정립할 의무를 지녀야 하고, 분노하고 실천할 권리를 지녀야 한다. 나에 대한 중심을 잃지 않고, 전체를 보아야 한다. 쉽진 않을 것이고 꽤 오래 걸릴 것이지만, 일단은 책을 통해 희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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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를 알고자 한다면, 우리 사회의 관념들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더불어 현재 사회의 관념이 정확히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관념들은 하나같이 분노를 양산해내고 있는데, 그만큼 우리 사회의 모든 관념들이 거의 다 어긋나 있고 파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상 우리에게 '하나의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남아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 없는 상태에서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회 없음, 그것이야 말로 지금의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말일지도 모른다. (60p)

​  우리는 사회 없는 사회, 세계 없는 세계 속에서 분노를 느끼고, 누군가를 증오하며, 속물성에 충실히 살아간다. 이 모든 사태를 만들어낸 게 우리와는 관련 없는 것들일 수도 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왔던 자본주의, 세계화, 국제관계, 금융, 역사, 권력, 전쟁 등이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켜서 우리로부터 세계를 앗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참여해서 그 논리에 따라 충실히 살아가는 순간 우리 역시 공범이 되었다는 사실을 면죄해주지 않는다. (85p)

  어떻게 살 것인가? 나에게 달려있는, 오직 나만의 문제인 것 같은, 내게만 가장 절실해 보이는 바로 그 질문에 내 삶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존망 역시 달려 있다. 중요한 건 내부와 외부, 주관과 객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구분을 뛰어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초월 속에서 진정한 삶이 실현된다. 그 삶은 사익을 줄이고 공익을 택하거나, 주관적 삶보다 객관적 사회를 우위에 놓거나, 내 삶을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식의 삶이 아니다. 그것은 내게 가장 이득이 되는 삶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에도 가장 이득이 되는, 내가 가장 좋다고 확신할 수 있는,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좋은 삶' 이다. 그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고 좋은 삶에 동참할 때, 자유로운 개인들의 사회가 성립한다. 그 삶에 참여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결국 우리가 믿는 사회도 바꾸게 된다.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는 삶 속에 사회가 있다. 내가 내 삶을 저버릴 때, 사회 역시 저버리게 된다. (122p)

  사회가 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회를 규정하며 사는 삶이 될 때, 다시 말해, 사회라는 너트에 나라는 볼트를 끼워 맞추는 삶이 아니라 사회와 내가 삼투 관계를 이루며 융화될 때, 나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가 되고 사회의 문제는 나의 문제가 된다. 나라는 존재는 완전히 표백된, 순일하고 순수한 상태의 존재가 아니다. 나는 세계의 무한 관계망으로 얽혀 있는 존재다. 나는 어떤 의미에서 반드시 이 사회에 의해 혜택을 보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이 사회에 의해 피해를 입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이 사회에 보탬을 주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회에 해를 끼치고 있다. 그러한 관계를 벗어나기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의 삶은 근본적으로 부채의 삶이면서 기부의 삶이다. 어느 한 사람 예외 없이, 지금껏 살아왔던 모든 인간은 누군가에 의한 피해자이면서 누군가에 대한 가해자이며, 채무자이자 채권자이다. 그러한 관계를 마음 안에서 의도적으로 끊을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삶은 항상 타자와 연계되어 있다. 자본주의의 폐기를 주장하는 지식인이 자본주의의 수혜자이고, 속세를 부정하며 떠도는 출가승이 세속인의 보시에 의존하여 살 수밖에 없듯이, 모든 관계로부터의 '완전하고 순수한 자유'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131p)

  가장 좋은 삶이 무엇인지 알면 알수록, 주인은 그 삶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에게는 반드시 앎과 실천이 동반된다. 실천은 앎에 의해 추동되고, 앎은 실천에 의해 더 확실하게 자리잡는다. 가장 좋은 가치, 가장 좋은 삶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이는 그 가장 좋은 삶에 대한 관념마저도 잃게 된다. 결국 그는 현재의 자기 자신을 합리화만 하는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 반면, 진정한 앎 앞에서 복종하고 실천하는 자는 그 앎을 더욱 강화시키면서 진정한 주인으로 끊임없이 상승해간다. (178p)

 

 

 

  P.S                                                                                                                                                            

 

 

 

하나하나 포스트잇이 붙여질수록 감동이 일었던 책.

너무나 냉철해서 부끄러웠고, 무언가 울컥했던 책.

 

정지우 작가의 책은 지금까지 세권 읽었고, 세권 다 베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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