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기에 '부자연스러움'을 갈망할 수 있는 우리 <자연을 거슬러 - 토마스 에스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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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자연을 거스른다'라고 하면 광활하고 무한한 자연에 맞서 인간이 물리적으로 대항하는 등의 장면을 예상하곤 한다. 그러나 이 소설 속의 '자연'은 조금 더 폭넓은 의미를 지칭한다. 'Nature',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동식물 등의 자연이 아닌, 자연스럽고 천진한, 당연한 것을 의미하는 그 모든 의미까지 포함된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움'과 그 반대의 '부자연스러움'을 판단할 때 우리는 작은 딜레마에 봉착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들, 사랑을 포함한 삶을 이야기할 때 어떤 것을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라고 믿어야 하는가? 많은 미디어에서, 혹은 입으로 전해지는 루머 등에 등장하는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 그들은 왜 그렇게나 비난받으면서 서로 죽고 못 사는 것일까? 세상의 많은 성 소수자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까지 세상이 말하는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려 하는 것일까? 나도 사실은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끔은 편협한 시각을 내세우기도 하며 "괜찮다."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부정적인 감정을 처음에는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이후 "오죽했으면 저럴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의 마음을 공감할 수는 없지만 '이해'하는 식으로 다가가게 된다.
작가인 '토마스 에스페달'도 이런 부자연스러운 사랑에 푹 빠져있었다. 자신의 사랑이 이 세상 속에서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빠르게 달리는 롤러코스터에 어쩔 수 없이 앉아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면서도, 숨 막히는 사랑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듯 보인다. 소설 속에서 작가의 분신으로 등장한 등장인물은 자기보다 한참 나이가 적은 여자를 만나는 한 남자, 혹은 과외 선생님과 육체적 관계로 사랑하는 한 소녀다. 그들은 여느 연인들처럼 서로에게 홀린 듯 사랑하고 행복을 찾는다. 그러나 고민한다. 우리의 부자연스러운 사랑이, 행복을 가져올 순 있는 것일까. 그렇게 의심하던 그들에게는 불행과 고뇌가 따른다. 파괴, 모욕, 그리고 실연.
각 소주제로 분류된 소설은 작가의 체험이 스며든 자전적인 소설이다. 후반부에 나오는 한 남자의 고백록은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여느 연인들의 말들처럼 절절하고 감상적이다. 모든 세상이 자신의 위주로 돌아가는 듯, 그의 주위에 있는 자연과 풀과 잎사귀, 새가 지저귀는 소리조차 자신이 해오던 사랑의 체험 속에 들어있는 듯. 그는 외친다.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오." 남들의 눈에 부자연스러웠던 사랑을, 자연을 거슬러 그 감정 덩어리를 하나씩 하나씩 분출하는 그의 모습은 안쓰럽고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실연이 있고 난 뒤, 그 사랑을 거스르려고 (잊으려고) 하는 그의 노력은 소용이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그렇다. 그만의 사랑, 당연히 존재했던 그의 '사랑'이 없어짐으로써 그는 좌절한다.
그리고 그는 여러 번 행복에 대하여 자문한다. 그리고 삶에 대해 자문한다. "시간, 물질, 죽음, 삶.... 그 모든 것의 '자연'을 거스르며 살 수는 없을까?" 하지만 그런 그의 시도에 자연은 무자비하게 대응한다. 절대로 자연의 흐름을 거부해선 안된다고,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그가 받은 자연의 대답은, 그를 더 고독하고 절망하게 만든다. 삶과 운명, 그리고 자연을 절대로 거부하거나 바꿀 수 없음을, 소설은 노자의 '무위자연'의 삶을 가리키는 듯 강력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자연을 거스르려는 그의 행동은 쓸모없는 일은 아니다. 우리는 살아있기 때문에 어디로든 퉁퉁 튀어나갈 수 있으며, 때로는 '부자연스러움'을 맛보고 거리낌 없이 행동할 수 있다. 우리는 살아있기 때문에....
Underline
우리는 침대에서 지체 없이 모을 일으켜 몇 분 동안 꼼짝 않고 앉아 허공만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그 순간, 우리가 누구인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기억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는 그 몇 분 동안 실체없는 존재였으며, 아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생명에 불과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가 누구인지, 또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짐승인지 인간인지, 또는 인간인지 기계인지 아무 생각도 없이 침대에 앉아 있곤 했다.
그 순간은 몇 초씩 또는 몇 분씩 지속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베개에 머리를 묻고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 후 다시 잠에 빠져들었으면 하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부드러운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빠져 들 것 같은 그 달콤한 수면 속으로 도망치고 싶은 생각을 떨치려 안간힘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그것이 단지 희망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곤 했다. (41p)
우리의 삶엔 진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우리는 자연 속에서, 숲과 날짐승들에 둘러싸여 살지 않았던가?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함께 살면서 아이도 낳았고 필요할 때면 함께 힘을 합쳐 일하기도 했지만, 그녀와 나 사이의 사랑은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다. 어쩌면 우리 사이의 사랑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결혼을 하려 한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자연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우리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롤러코스터에서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앉아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 같았다. 롤러코스터는 무거운 속력으로 돌고 또 돌았으며, 우리는 두려움에 떨며 서로를 꼭 붙들고 있었다. 문득, 제자리를 벗어난 롤러코스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낯선 세계로 향했다. (103p)
행복에 관한 책은 짧고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행복을 이야기할 때, 장편소설처럼 지속적이고 서로 연관이 있는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속에서는 연계성도 찾아볼 수 없으며, 이성과 논리를 찾을 수도 없다. 이처럼 행복에 대한 장편소설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150p)
행복은 눈앞만 가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도 덮어버린다. 그것은 마치 새살처럼, 이전의 낡고 상처난 피부를 얇고 매끈하게 덮어 버리기 마련이다. 내가 그녀의 불편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행복에 한가운데에 있으면 기억력도 나빠지기 마련이다. 설탕처럼 달콤한 그 무엇이 몸속 핏줄을 통해 내장까지 가득 차오르고 결국은 손가락과 발가락, 성기와 얼굴, 눈과 귀, 코와 입술, 혀와 피부를 통해 분출된다. 행복에 젖어 있으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기 마련이며 과거는 망각 속으로 사라져 버리기 일쑤다. 집중할 수도 없고 주변의 일에 주의를 기울일 수도 없다. 나는 사랑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너무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164p)
나는 두 주먹을 꼭 쥐고 거친 숨을 내쉬어 본다. 문득 온몸을 스치는 한기에 몸서리친다. 몸속에 자리한 땀과 열을 불어내기라도 하듯 숨을 훅 내쉬어 본다. 폐와 심장 주변에 얇게 서리가 내려앉은 것 같다. 위장과 간과 혈관과 고환을 조여오는 한기. 온몸이 얼음장 같다. 잠에서 깬 후 한기에 몸을 떤다. 차가운 공기 때문에 눈가와 입가가 쓰라리다. 얼굴의 살갗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서리 낀 얼굴. 차갑고 무거운 양손. 얼음처럼 차가운 공기는 성기마저 오그라뜨린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났건만 살아갈 의욕이 없다. 열정과 따스함, 믿음과 힘이 사라져 버렸다. 살아갈 의욕이 없다. (228p)
P.S
소설이 마치 단편집처럼, 화자가 바뀌면서 약간 읽는데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소설의 문장은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 일단은 주제도, 내용도 새로운 자전적 소설을 만났다는데 의의를 두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