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분노의 심연 속에서 던지는 질문 <멸종 직전의 우리 - 김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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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얘기될 수 있는 소재였던가? SF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 단어는 낯설지만 우리는, 혹은 주변의 어떤 이들은 빠져나올 수 없는 불안 속에, 지옥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도 그렇다. 오해로 둘러싸인 한 소녀의 죽음, 그녀가 떠나간 후 남겨진 사람들. 그들은 각자의 응어리를 가슴에 지닌 채, 길고 긴 인생의 발걸음을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다. 언젠가는 그 발걸음이, 돌부리에나 걸려 쓰러질까 불안해하며 멸종 직전에 서있는 그들, 그리고 우리는 그 위기 속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소설의 내용은 제목을 보고 지레 짐작했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는 그럴듯하게 꾸며진 내용도 아닌,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극적인 반전이 빵빵 터지는 내용도 아니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 가끔은 논쟁도 벌어지는 - 잔혹한 이야기보다도 덜한, 그렇기에 너무나 익숙한 소재로 만들어진 이야기다. 한 교실 속에서의 청소년 왕따, 그리고 죽음, 그 죽음에 대한 복수심.... 그중 포인트는 증오와 분노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피아니스트를 향한 자신의 욕망을 딸에게 투영하던 엄마 '권희자' 그리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마저 할 수 없었던 그녀의 딸 나림. 그들은 서로에 대한 분노를, 증오를 내뱉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분노 덩어리는, 나림이와 같은 반이었던 선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순수한 동경에서 비롯된 오해가 나림의 증오를 만들고, 그 증오는 재밋거리 (따돌림)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었다. 자신을 왜 미워하는지도 알 수 없었던 왕따 '선주'는 나림을 칼로 찌른다. 그리고 순식간에 두 집안은 마치 '멸종 위기'에 놓인 가족들처럼 망가지게 된다.
선주는 증오심이 가득 찬 세월을 버리고 '수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조용히 이름을 바꾸고 잠적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그녀에겐 남아있었다. 어릴 적, 자신도 시원하게 사실을 토로하지 못 했던 그 사건에 그녀는 수인(囚人)이라는 이름처럼 여전히 갇혀있는 것이다. 그녀는 꾸역꾸역 삶을 버텨내기 위해 살았고, 자신의 자식이 딱 친구 '나림'이 죽었을 나이가 되었을 때, 나림의 엄마 '권희자'가 찾아온다. 권희자와 나림, 선주(수인) 그 세 사람 모두 감정의 응어리를 어디에서도 시원하게 풀지 못했고, 그 증오는 악순환의 질긴 고리가 되어 가장 부정적인 방법인 복수의 감정으로 자라나게 된 것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돌보지 않는 분노의 심연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더 이상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가는 것은 그 감정을 어떠한 곳에서도 풀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디에도 그 감정을 배출할 길이 없었던 그들은 오해 속에 가려진 진실을 외면한 채, 그 진실을 해결하기 위한 발버둥도 치지 못한 채 멸종 직전까지 살아오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은 마음속에서 커져가기만 했던 분노 뒤에 있던 진실을, 꼬이고 꼬인 그들의 관계를 풀 수 있었던 실마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화자가 여러 차례 바뀌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장을 넘기면 진실이 드러나듯, 우리의 삶 속에서도 숨겨진 진실을 풀어내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기야 그렇다면, 삶은 너무나 쉬울 테지만.
Underline
그때 여자는 한 손으로 수인의 멱살을 잡고 다른 손으로 뺨을 후려갈겼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머리채를 잡고 울부짖었다.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수인조차 그런 자신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아프지 않았다. 늪이 쇠구슬을 집어삼켰다. 소리들도 사라졌다. 단지, 먹먹했다. 제풀에 지친 여자는 무너져내려, 수인의 발아래서 통곡했다. 수인은 무심한 눈으로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죄송하다고, 잘못했다고 말해. 이것아. 어머니는 등을 밀며 재촉했다. 수인은 외국어 교본을 읽듯 또박또박 말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20p)
삼 층 짜리 허름한 건물로 들어가는 김선주를 뒤로 하고 택시를 잡아 탔다. 열쇠공을 불러 문을 따고 김선주의 집으로 들어갔다. 카드 명세서가 말해주듯 살림은 빈궁했다. 그나마 마음이 달래졌다. 칠칠하게 살고 있었다면 모자가 잠든 사이에 집에 불을 질렀을지도 모른다. 벗어놓은 스타킹, 텔레비전 위의 먼지, 변기에 고인 오줌, 화장실 앞에 깔린 구질구질한 러그, 깜빡거리는 부엌 형광등, 구석에 던져놓은 아이 잠옷. 냉장고 문을 열자 두엄 냄새가 밀려왔다. 야채 칸은 물크러진 오이와 싹이 난 양파, 크트머리가 녹아든 상추들로 채워져 있었다. 보이는 것마다 구질구질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그들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죽은 사람은 그런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다. (65p)
치지 못한다고 말해야 한다. 이제 피아노를 치지 못합니다,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된다. 담임 선생님은 재촉했다. 손가락으로 건반을 눌렀다. 손가락은 건반 위에서 죽마를 탄 어릿광대처럼 뒤뚱거렸다. 피아노 속의 해머가 머릿속을 두들겨댔다. 누군가 웃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방에서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 합창 대회 반주는 다른 아이가 맡았다. 화장실로 가려는데 그 아이가 가로막았다. "나림아, 너 피아노 잘 쳤잖아."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지려고 하는데 그 아이는 비켜주지 않았다. 정말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아이를 밀치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내 손을 들여다보았다. 차라리 잘라내고 싶다. 더러운 장갑처럼 눈 속에 파묻고 싶다. 나는 왼손으로 변기 레버를 내리고, 오른손으로 휴지를 뜯어 코를 풀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김선주라고 했다. (172p)
"엄마가 좋아?"
어른들은 가끔씩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한다.
하늘이 왜 파란지, 구름은 왜 하얗고, 금붕어는 왜 죽는지, 겨울이면 눈이 왜 오는지 나는 모른다. 그렇지만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금붕어는 죽었고, 겨울이면 눈이 온다. 눈이 녹으면 꽃이 핀다는 걸 안다. "엄마가 나쁜 사람이라도?" 나는 화가 났다.
"우리 엄마는 나쁜 사람 아니야." (240p)
이 소설은 독자의 마음을 한껏 불편하게 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어떤 희망의 손짓이나 구원의 기대도 사라진 자리에서, 모든 행복의 씨앗이 사라진 폐허 위에서, 우리 자신에게 질문하게 만든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누구도 이 증오와 분노와 폭력의 심연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면, '멸종 직전의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구해낼 수 있을까. (283p, 작품해설)
P.S
김나정 작가는 저에게, 조금 생소했지만 문학평론가이자 작가로 활동하신 분이고, 여러 권의 저서가 나와있네요.
문장도 참 좋고, 일단은 깔끔한 느낌이 들었던. 소재는 요즘 참 흔하디 흔한 것이었지만, 단순히 왕따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가 있기 때문에 흥미로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