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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롯 -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 20년간의 연구로 복원한 인간 예수를 만나다
레자 아슬란 지음, 민경식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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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Reading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역사는 어떤 사건의 결과에 의해서나, 어떤 목적에 의해서 상당 부분 왜곡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말'과 '기록'으로만 남을 수밖에 없는 역사의 특성상 피할 수 없는 논의점인데,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꼭 읽어야 할 도서로 지목되고 있는 '성경'의 경우도 일종의 오류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부분은 '예수'에 대한 것이다. 종교를 접하다 보면 너무나 모호하게 생각되는 '예수의 정체', 신인지 인간인지 정의하기 어려운 예수의 정체를 파헤치고 있다. 일단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사건'이란 첫째로 예수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 민중 운동을 일으킨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이었고 둘째는 로마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과연 사실일까? 신앙의 대상이자 부활의 기적을 알려준 그리스도의 예수, 그리고 유대인으로서 로마에 대항해 민중 운동을 일으켰던 나사렛의 예수 중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건 '그리스도의 예수'다. 하느님의 아들이며, 구원자였던 예수 말이다. 하지만 나사렛 예수에 관련된 부분들은 성서나 여러 복음서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수정되었다. 교회의 주요 전도 대상이 로마인으로 된 현실 속에서, 팔레스타인과 하느님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예수의 혁명적인 수고를 드러낸다면 로마인의 화풀이 대상이 될 것이 분명했던 것에 이유가 있었다.
이 책에 의하면 예수는 신앙의 대상이 된 위대한 인물이며 영향력 있는 '정치적 혁명가'였다. 정의를 위해 싸웠고 피 흘리며 죽어간 영웅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책의 제목인 '젤롯'이란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자신의 '열심'이라는 이상을 수호하기 위해서 힘쓰고, 극단적으로 폭력까지 빌리려는 사람들이었다. 일종의 혁명가이며, 로마인과 아첨꾼들에게 폭력까지 행사했다. 그들의 언어에서 '열심'을 의미하는 '젤롯'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들은 후에 '젤롯당'과 '시카리'라는, 하느님의 원수를 처치하는 활동단으로도 발전했다. 그러나 예수는 폭력을 행사하는 혁명가도 아니었고 젤롯당도 아니었다. 단지, 하느님의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열정적인 신념을 끝까지 놓지 않았으며 종교적 경건의 모범(젤롯)을 보인 선구자였던 것이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킬만한 책이다. 어릴 때부터 의무감으로 성당을 다녀왔지만, 자연스럽게 '냉담자'가 돼버린 나에게도 살짝 충격적인 부분이 많다. 지금은 성서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을 잊고 살고 있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예수'의 존재는 단연 '신'과 같은 존재였고, 인간으로서 투쟁하던 예수의 모습은 상상 밖이었달까. 그러나 '혁명가'라는 해석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신앙이 얕게 남아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신적인 존재든 단순히 인간이었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열정적인 신념을 가진, '존경할 인물'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끝에는 쓰는 자에 의하여, 목적에 의하여 바뀌게 된 각 복음서의 차이도 비교한다. 또한 주석은 100페이지, 어마어마하다. 신앙이 깊은 종교인들에게도 어렵지만,
종교에 관련된 단어들과 성경의 역사를 포함한 이 책이 단연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부터 시작하여, 로마가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던 시기, 수많은 인물들과 예수와 관련된 복음서들의 해석까지, 최근에 봤던 책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방대한 책이다. 다소 읽기는 어렵지만, 수많은 종교의 지도자와 종교인들 사이에서 논의되었던 '인간 예수'로서의 삶을 파고들어 연구해낸 것은 엄청난 일이며, 연구서로서의 가치는 훌륭한 책이다. 물론 종교인들에게 이 책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Underline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 (미가 5:2)라는 예언자 미가의 말씀 때문에, 누가 기자에게 예수는 새로운 다윗이며 유대인들의 왕이다. 하느님의 왕좌에 앉아 약속의 땅을 통치할 인물이다. 다시 말하자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보도된 예수의 탄생 이야기는 역사적 기록이 아니다. 또 그렇게 읽히도록 기록된 것 역시 아니다. 하느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의 예수의 지위를 확인시키는 신학적 진술이다. 예수는 다윗 왕의 자손, 즉 약속된 메시아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창조의 근원인 영원한 로고스로서의 예수라든지,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계신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는 베들레헴의 더러운 말구유에서 포대기에 싸인 채 태어났다. 곁에는 목자들과 선물을 들고 온 동방박사들이 둘러서 있었다. 그러나 진짜 예수는 기원전 4년과 기원후 6년 사이에 피폐한 갈릴리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가난한 소농이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바람이 많이 부는 나사렛의 어느 작은 마을, 벽돌을 엉기성기 쌓아 진흙을 발라 만든, 흙이 풀풀 날리는 초라한 집이었다. (75p)
요한의 세례가 지니는 역사적 중요성이라든지 예수의 선교에 끼친 영향력은 복음서 기자들에게 해결하기 힘든 딜레마가 아닐 수 없었다. 요한은 매우 인기가 좋고 존경도 받았다. 또 널리 인정받는 제사장이자 예언자였다. 그의 명성은 너무나도 자자해,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또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절대 숨길 수 없을 만큼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든 탈이 생기지 않도록 이야기를 각색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의 역할이 바뀌어야만 했던 것이다. 예수가 우월하고 요한은 열등해야 했다. 그래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네 복음서에서 요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축소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에서는 위대한 예언자이자 예수의 스승으로 묘사하는데 반해, 마지막에 기록된 복음서인 요한복음에서 그의 역할은 예수의 신성을 인식하는 정도로 제한된다. (140p)
도시며 마을이며, 예수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몰려들었다. 예수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소문으로만 들은 것, 즉 예수가 일으킨다는 기적을 보고 싶어 했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를 하느님이 약속하신 메시아로 받아들였다. 다윗의 왕국을 이을 후계자로 인정했다. 반면 로마는 예수가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거짓말쟁이라고 여겼다. 또 율법학자와 성전 제사장은 그를 신성을 모독하는 위험한 인물로 규정했다. 유대교에 대한 지배력을 위협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에 사는 대부분의 유대인들 (예수는 자기가 이들을 억압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왔다고 주장했다)에게 예수는 메시아도 아니고 왕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예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 갈릴리 지역을 떠돌며 재주나 부리는 전문 축귀자일 뿐이었다. (162p)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채찍질당해 멍든 몸으로 필라투스 앞에서 심문을 받았을 때 예수가 받은 질문이 단 하나였다는 점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것이 유일하게 중요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반역자와 폭도를 다스리는 표준적인 처형 방식인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로마 총독 앞에 끌려와 대답해야 했던 유일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193p)
특별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복음서 기자들은 어느 정도 창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었다. 예수의 삶에서 혁명적 열정의 흔적을 모두 제거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죽음에 대한 로마인들의 책임을 완전히 씻어주어야 했던 것이다. 이제 메시아를 죽인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다. 로마인들은 뜻하지 않게 대제사장 카야파스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다. 대제사장이 예수를 죽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그는 합법적으로 예수를 죽일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로마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를 속여 이 비극적인 오판을 하게 했던 것이다. 가엾은 필라투스는 예수를 살리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끝까지 예수의 피를 요구했고, 결국 필라투스는 그들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넘겨준 것이다. 실제로, 더 늦게 저술된 복음서일수록 (해당 복음서가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의 파괴 사건과 시기적으로 멀수록), 예수의 죽음에 대한 필라투스의 역할은 감소한다. (22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