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12년
솔로몬 노섭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  After Reading                                                                                                                                              
  
 
  ​인간이 자유를 침해당하는 사례는 현대인 지금도 간혹 일어나고는 있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끔찍하고 추악한 억압 중 하나는 '노예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는 일본의 위안부와 나치의 학살 등을 떠올린다.) '인간'이라는 이름 하에 왜 등급이 나눠져야 하는 것이며, "우리는 당신들보다 우월하다."라는 말도 안 되는 무식한 배짱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이란 말인가. 최근에 읽은 '만델라 평전'에서도 '노예제도'는 끔찍한 모습으로 설명된다. 1800년대, 미국에서 '노예 해방령'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남부의 농장 쪽에서는 오랫동안 극심한 인종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때 아마도, '솔로몬 노섭'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북부에 살고 있던, '자유인' 증명서를 받은 흑인이었지만, 아무도 모르게 길에서 납치되어 자유를 짓밟히고 노예로 팔리게 된다.
  ​그 12년 동안의 일기가 바로 <노예 12년>이다. 그러니까, 이건 저자의 실제 경험이 담긴 에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봐왔던 노예 소설들과는  - 어릴 때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톰 아저씨의 오두막> 등 - 다른 무언가를 전달한다. 여러 주인들을 거치면서 힘든 노동을 겪고, 거의 동물 취급을 당하는 다른 노예들을 목격한 장면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가장 특별한 점은 화자의 특수성에서 나온 것인데, 태어날 때부터 고된 노동과 핍박을 받아온 여타 많은 노예들과는 달리 노섭은 자유인이었고 (흑인이었지만 법적 제도를 통해 인권을 보장받았다 ) 결혼을 해서 화목한 가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고,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짓고 운하를 만드는 일에도 참여했고, 똑똑하고 바이올린마저 멋지게 연주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도 "자유에 대한, 백인과의 똑같은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과거가 있었다.' 그래서 노섭은 어떤 권력에의 음모로 노예가 되고, 정신적으로 크게 흔들릴 수 있는 끔찍한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서술해낸 이 책을 우리에게 안겨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런 정신력은 자유를 되찾기 위한 의지를 가질 수 있게 만드는 크나큰 원동력이 되었다.
  ​'노예 제도'라고 하면 생각나는 장면들, 흉악한 주인이 온갖 이유를 만들어 노예들을 억압하는 장면들은 이 책 속에서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등장하지만, 예외적인 장면들도 등장한다. 저자 솔로몬 노섭이 만난 주인들 (그를 산)의 경우, 포악하고 인간이길 포기한 주인들이 있는 반면에 몇 년 동안을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었던 주인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노예들의 재주를 인정하고, 적당한 노동과 휴식을 주고 인간으로서 보살핀다. 이런 부분들을 읽으면서 끔찍한 장면들을 보고 굳어진 마음을 조금 풀어내릴 수는 있었지만, 여기에도 역시 의문은 남는다. 그들에게 적당한 대우를 해주더라도, 그들을 '소유하는 것' 그 자체에 인권 유린이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러한 문제를 짚고 넘어가려면 많은 말들이 필요하겠지만, 그 제도를 행하는 데 있어서 그것이 인간적인 행동이든, 비인간적인 행동이든 '노예 제도'는 그 자체로서 야만적이고 상상하지 못할 끔찍한 제도임에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노예로서의 삶. 솔로몬 노섭이 경험하고 목격한 그들의 삶은 글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과 행실 모두에서 바람직한 여성 노예 '패치'가 인간으로서 가장 모욕적인 처벌을 받았을 때, 노섭과 동료들은 천국 - 노예도 없고 고통도 없는, 그들에게는 지상낙원인 - 으로 가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그들에게 '죽음'은 고통이 아니며, 오히려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시련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노예 12년> 속의 '노섭'은 비로소 자유를 찾은 모습으로 결말을 맞이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유를 완벽하게 되찾지 못했다. 책이 많이 팔렸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어떤 강연장에서는 야유마저 받았다고 한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노섭의, 책에 나온 이후의 삶을 부정적으로 추측한다. 다시 납치되어 노예로 되돌아갔거나, 가난으로 인해 죽었거나, 살해되었거나,라는 것이다. 물론 낙관적인 견해도 존재하지만 대부분 이런 추측들이 난무한다. 그에게도 '자유'는 죽음으로서만 넘어설 수 있는, 높고 높은 언덕이었던 것일까.
 
  자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죽음으로서만 되찾을 수 있는 그들의 자유는 어떻게 보상할 수 있는 것인가. "잃어버리기는 너무도 쉽고 되찾기는 너무도 어려운" '자유'. 지금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자유를 부르짖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왜 세상은 이토록 부조리한 것일까, 누구에게나 공평할 순 없는 것일까.
 
 
 
​  Underline                                                                                                                                                     
 
 
 
  ​그들은 거의 하나같이, 자유에 대한 비밀스러운 욕구를 간직하고 있었다. 더러 몇몇은 도주하겠다는 아주 뜨거운 열망을 표현했고, 그걸 실현할 최선의 방법에 대해 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붙잡혀서 돌아가게 될 때의 처벌을 그들은 확실히 알고 있었으며, 어떤 경우가 됐뜬 분명히, 처벌의 두려움이 그들의 시도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북부의 자유로운 공기를 숨 쉬며 살아왔던 터라, 내 가슴에도 백인들의 가슴에 있는 것과 똑같은 감정과 정서가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었다. 나아가 나보다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들, 적어도 그중 일부와는 지능도 다를 게 없다는 걸 똑똑히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비참하게 노예로 살아간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이해하기에는 너무 무지했다. 아니 어쩌면 너무 독립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노예제의 원칙을 지지하거나 인정하는 법률 혹은 그런 종교의 정당성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자랑스레 말할 수 있지만, 나를 찾아온 어느 누구에게도 기회를 엿보라고, 자유를 위해 싸우라고 조언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33p)
 
  불행한 삶을 살아오면서, 여러 번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지상의 슬픔이 끝나려 할 때 죽음에 대한 명상 - 지치고 힘든 몸을 위한 안식처로서의 무덤에 대한 명상 - 이 편안하게 느껴져서 자꾸 거기에 빠지게 되는 순간들 말이다. 그러나 그런 명상은 위기의 순간에는 사라진다. 죽을 힘을 다하는 사람은 무시무시한 <죽음의 대왕> 앞에서 두려움 없이 버틸 수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생명은 소중하다. 땅바닥을 기어가는 벌레도 생명을 위해 싸운다. 그 순간 나에게, 노예가 되어 학대받는 나에게 생명은 소중했다. (136p)
  ​나는 그날 하루 온종일 내가 겪은 다양한 두려움과 감정에 관해 캐물었고, 언제든 기도하고 싶은 때가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온 세상에서 버림받은 느낌이었으며, 내내 마음속으로 기도했다고 대답했다. 그럴 때면 인간의 마음은 본능적으로 창조주를 향하기 마련이지, 라고 그는 말했다. 잘나가고, 다치거나 두려울 일이 없을 때면 사람은 신을 기억하지 않으며, 신을 부정하게 되지만, 그러나 사람을 위험의 한가운데 놓고 도움의 손길을 막아 버리고, 그 앞에 무덤을 열어 놓으면 - 그제야, 고난의 시간이 닥쳐서야, 비웃으며 믿지 않던 그 사람은 신의 품 외에는 다른 희망이나 피난처, 안전한 곳이 없다고 느끼며 신에게 도움을 청한다. (150p)
  비인간적인 주인들이 분명히 있는 것처럼 인간적인 주인들도 있을 것이다. - 헐벗고 반쯤 굶주린 비참한 노예들이 분명히 있는 것처럼, 잘 입고 잘 먹고 행복한 노예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목격한 그런 부당함과 비인간성을 용인하는 제도는 잔인하고 불공평하고 야만적인 제도이다. 비천한 삶을 있는 그대로, 또는 그렇지 않게 묘사하는 소설을 쓸 수는 있다. - 어쩌면 진지한 척 엄숙한 태도로, 무지라는 축복을 자세하게 열거할 수도 있다 - 노예 생활의 즐거움에 관해 안락의자에 앉아 조잘조잘 떠들어 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밭에서 노예와 함께 일하도록 해보라 - 노예들과 오두막에서 같이 자고 - 곡물 껍질을 같이 먹도록 해보라. 노예처럼 채찍질을 당하고, 사냥을 당하고, 짓밟히도록 해보라. 그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갖고 돌아올 것이다. 그들에게 가련한 노예의 마음을 알도록 해보라 - 노예의 비밀스러운 생각들 - 백인이 듣는 곳에선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생각을 알아보도록 해보라. 밤에 깨어있는 노예 옆에 조용히 앉아 있도록 해보라 - <생명, 자유, 행복 추구>에 관해 노예와 진심 어린 믿음으로 대화를 나누도록 해보라. 그러면 노예들 100명 가운데 99명은 충분히 똑똑해서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 사람들 자신과 똑같이 열정적으로, 자유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2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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