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당신을 감싸고 있던 것은 외부, 즉 허공이지만 자세히 말하면 당신을 둘러싼 허공 속 당신의 몸이다. 발뒤꿈치는 땅에 굳게 딛고 있지만 나머지 부분은 허공 속에 있다. 그곳이 당신의 몸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고 또한 모든 것이 몸에서 끝날 것이다. 지금 당신은 바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 후에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열과 추위, 셀 수 없이 다양한 비, 눈이 없는 사람처럼 휘청거리며 뚫고 온 안개, 바르 강가에 있는 집의 타일 지붕을 덜거덕거릴 정도로 미친 듯이 때리던 기관총 소리 같은 우박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신의 주의를 온통 차지한 것은 바람이다. 공기는 가만히 있을 때가 거의 없다. (18p)
사람이 죽음을 맞는 바로 그 순간, 존재는 의식의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적어도 당신 생각으로는 그랬다. 그로부터 5년 후 처음으로 공황 발작이 일어났을 때, 몸이 갈기갈기 찢겨서 바닥에 패대기쳐지는 것 같은 갑작스럽고 엄청난 타격을 받았을 때 당신은 침착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그때도 역시 당신은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공포에 질려 울부짖었다. 살면서 그렇게 두려움을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의식의 다른 차원이니 눈물의 계곡으로부터의 조용한 탈출이니, 다 쓸데없는 소리였다. 당신은 바닥에 누워 가슴이 터지도록 울부짖고 또 울부짖었다. 죽음은 당신의 안에 있었지만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울부짖었다. (40p)
서른두 살. 1979년 초 거기에 정착하기 전 한바탕 충격과 갑작스러운 변화, 당신을 바꾸어 놓고 당신의 삶을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틀어 놓은 내면의 동요가 몰아쳤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지만 갈 데도 없고 이사할 돈도 없는 상태에서 당신은 파경 이후에도 더치스 카운티의 집에 머물며 아래층 서재 구석의 침대 겸용 소파에서 잠을 잤다. 지금 와서야 (서른두 해가 지나) 생각해 보니 그것은 어린 시절 당신의 침대였다. 두어 주가 지난 뒤 뉴욕으로 떠나면서 당신은 우주의 틈새 속으로 당신을 밀어 넣는, 델 듯이 뜨겁고도 명징한 에피파니의 순간, 일종의 계시를 경험했고 그것은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게 했다. (102p)
세 번째 잔을 다 비우고 또 한 잔을 비운다. 결국 이것이 마지막 잔, 치명적인 한 잔이 되고 만다. 몸의 안팎에서 동시에 공격이 시작된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당신을 의자에 억지로 주저앉혔다가 땅바닥에 패대기치는 것처럼 당신을 둘러싼 공기의 압력이 갑자기 엄습한다. 동시에 머리통 벽면을 두드리며 절그렁거리는 소리가 어지럽게 울리고 머릿속은 섬뜩할 정도로 가벼워진다. 그러는 내내 바깥쪽에서는 계속해서 당신을 짓누르고 안쪽은 텅 비어 가는 바로 그 순간, 어느 때보다도 더 어둡고 텅 빈 바로 그때, 당신은 기절해 버릴 것만 같다. 고동이 빨라지고 가슴을 뚫고 터져 버리려고 하는 심장을 느낄 수 있다. (...) 이제 당신은 돌이 되어 가고 있다. 부엌 바닥에 누워 입을 벌린 채 움직일 수도 생각할 수도 없게 되어 검고 깊은 죽음의 바닷속으로 당신의 몸뚱이가 익사해 가기를 기다리며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다. (140p)
당신은 <옛날이 좋았지>라는 말을 싫어한다. 문득 향수에 젖어 지금보다 삶을 더 낫게 만들어 준 것만 같은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데 슬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스스로에게 당장 그만두고 잘 생각해 보라고, 지금을 볼 때와 같이 그때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오래지 않아 당신은 그때와 지금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으며 본질적으로는 같다는 결론에 이른다. (19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