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 태어남의 불행에 대해
에밀 시오랑 지음, 전성자 옮김 / 챕터하우스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좌절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는 인생" 그리고 "모든 것이 덧없다는 느낌." '태어나는 것'이 불행이라는 인식은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소외'나 '허무주의'를 다루는 작품들은 많다. 그러나 탄생 자체를 불행으로 보는 관점은 굉장히 낯설다. '삶의 시작'을 설레는 '시작'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철학이 작가의 생각 속에 자리 잡혀 있는지, 세상에 있는 소수의 생각을 엿보는 느낌이라 매우 궁금했다.

 

  작가는 루마니아 출신의 '허무주의 철학자'이자 수필가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이전에 한번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한 바가 있다. '사르트르 이후 프랑스 최고의 지성, 절망의 팡세'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처럼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와 파괴 등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번 책도 그와 같은 맥락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삶은 - 즉 깨어있는 상태-는 숨 막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죽음은 태어나기 이전의 공간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이며, 태어나지 않았던 그 시간을 무한한 공간과 행복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라'라는 말은 많은 책들을 보면서 깨닫고 나의 생각 속에 지니게 된 명언이다. 나는 그를 통해 현재를 충실하게 살 수 있는 원동력으로써 '죽음'을 생각해왔지만, 작가의 남다른 생각은 다소 충격적이다. "불행 속에 먼저 몸을 던져야 하고, 시간은 나를 크게 희생시키면서 존재에서 떨어져 나가게 한다."라는 작가의 부정적이고 허무적인 시선을 보다 보면 의문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 오로지 죽는 것만이 해답인 것인가?" 작가가 말하기를 '불행하다고 죽음을 앞당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책을 읽다 보면 극단적인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살아가는 것을 견딜 만하게 만들기 위한 남다른 관점이 제시된다. 그는 삶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 준 것은 '내가 어떻게 그 시간을 넘길 수 있을까?'를 구경하고픈 호기심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은 것에 초연하고 낯설게 만들어, 무관심에 빠진다고 한다. 그런 자신에 대한 연민은, 결국 사색으로 그를 이끈다고 말한다. 사색과 무관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삶을 견디는 것이 작가의 해답인 듯하다.

 

  순간순간을 지나쳐가지만 그것에서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의식은, 모든 순간을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 하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철학자의 생각을 존중할지라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책의 많은 부분에서 자신의 남다른 철학을 인정하고 있는 듯, 다른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서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깊은 사유를 행하고 있다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책 속에서는 삶에 대한 인식과 함께, (글 또는 시를 ) 표현하는 것에 대한 욕망, 불안에 대한 정의, 사회와 혁명에 대한 생각들이 함께 한다. 글은 짧은 문단 문단으로 편집되어 있어, 작가의 순간순간 생각을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에세이 보다는, 아포리즘이다) 흐름이 살짝 뚝뚝 끊어진 감이 있어서, 그에 대한 연결점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읽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물론 쉽사리 읽어내기 어려운 철학적 생각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 했던 낯선 생각이기에 읽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세상엔 참 희망을 주는 책들이 많지 않은가? 불행도 행복으로 생각하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행복을 희망으로 견디고 바라보는 것. 그런 많은 책들에 지친 독자들은 반대로, 이쪽의 책을 바라봐도 괜찮을 것 같다. 나에겐 맞지 않았지만, 자신의 존재를 부단히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 계속해서 오는 불행에 삶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무게와 깊이를 앗아가는 어떤 깨달음이 있다. 순간, 그 깨달음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아무 근거가 없다. 그 깨달음이란 어떤 행위를 하건 하지 않건 종국에는 둘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다. 그런 자각의 상태는 깨달음의 대상이 되는 개념까지도 혐오할 만큼 순수하다. 그것은 지극한 만족감이 따르는 깨달음이다. 우리의 어떤 몸짓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없음을, '현실'이란 정신 나간 자의 발판이고 원동력일 뿐임을 일상의 어떤 만남에서건 확인할 수 있는, 그러한 깨달음은 비로소 죽음 이후에야 오는 것이라고 해야 하리라. (10p)

 

 

  내면 깊은 곳의 탐구를 지향하는 사람의 특징은, 그가 어떤 성공보다도 실패를 우위에 두고, 무의식중에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실패는 언제나 본질적인 까닭에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 주기 때문이다. 실패는 신이 우리를 보듯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볼 수 있게끔 해 준다. 반면에 성공은 우리 자신 속에, 모든 것 속에 있는 가장 내밀한 것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29p)

 

 

  인간은 시간에 의해 치명상을 입을수록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흠 없는 한 페이지의 글을 쓴다는 것은, 아니 한 문장이라도 쓴다는 것은 생성과 부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언어를 통하여, 노쇠의 상징 그 자체를 통하여, 파괴될 수 없는 것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은 죽음을 초월한다. (51p)

 

 

  '행복'하기 위해선 자신이 용케 모면한 불행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늘 떠올리고 있어야 할 일이다. 그것은 기억이 스스로를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다. 기억은 실제로 닥쳐왔던 불행만을 간직하고 있어서 행복을 파괴하는 데 주력하고, 또 그 일을 기가 막히게 잘하기 때문이다. (79p) 

 

 

  사물을 어두운 쪽으로 보는 것은 그것들을 어둠 속에서 저울질해 보기 때문이고, 사념이란 일반적으로 잠 못 이루는 밤, 요컨대 암흑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생은 보이지 않는데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생에는 적용될 수가 없다.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선 우리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우리는 그때 모든 인간적인 사념, 구원 혹은 파멸, 존재 혹은 비존재의 경계를 벗어나, 공허의 극단적 형태인 어떤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162p)

 

  "...... 자신이 모든 것이라는 느낌과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명함." 젊은 시절 우연히 나는, 이 한 마디 문장과 부딪쳤다. 나는 흥분했다. 당시 내가 느끼고 있던 모든 것, 그 후 느끼게 되었던 모든 것이, 확장과 좌절, 황홀과 낭패감의 종합인 이 기묘하고도 평범한 표현 속에 집약되어 있었다. 흔히, 계시와 같은 깨달음이 떠오르는 것은 역설로부터가 아니라, 단순하고 자명한 사실로부터이다. (2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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