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216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강훈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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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문학작품들에는 작가가 의도하여 사회를 반영하여 메시지를 던지는 경우와,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회의 모습이 그려지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더블린 사람들>은 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몇백 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가 20세기 초 독립되고 난 후, 아일랜드 사회에서는 강한 민족주의 정신이 팽배하게 되고 그것은 문예부흥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민족주의의 최정점에서, 더블린 출신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는 점점 마비되고 세속적이 돼가는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올바른 가치를 깨우쳐주고자 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반들반들하게 닦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볼 기회를 주기 위해 썼다고 그는 이 작품을 썼다고 말했다.

 

 짧은 단편들 여럿이 담겨있는 <더블린 사람들>에는 이처럼 아일랜드 사람들과 역사를 비추는 장면들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 <애러비> 속에서 주인공에게 꿈같은 공간이었던 '애러비'는 알고 보니 천박하고 공허한 공간이었고, 그는 결국 분노와 환멸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작은 구름>에서는 아일랜드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유럽에 대한 동경만으로 살아가는 '더블리너'의 모습이 그려진다. <짝패들>에 나오는 한 아버지의 초상을 통해서 많은 시간 동안 지배당해왔던 아일랜드의 모습과 그 사회 속에서 권력에 굴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나 가족 안에서는 그러한 권력과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그린다. 또한 탐욕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그렸던 작품인 <어떤 어머니>와 행복을 꿈꾸며 도피하려 하지만 결국 그 도피처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블린> 속에서 종속적인 여자들의 모습도 드러낸다.

 

  작가 제임스 조이스는 이러한 '더블린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대놓고 비판하지 않는다. 과장되지 않은, 현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글속의 주제를 독자들이 해석하게끔 한다. 이렇듯 정확하게 드러내지 않는 텍스트들의 특성상, 작가가 비판하는 공간에 대한 어떠한 지식 없이 메시지를 해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언급한 단편들 이외에도 많은 글속에서 아일랜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힘썼던 인물과 '문예부흥운동'과 같은 역사적 사실들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정보들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므로 그냥 작품만 읽고 넘어간다면 약간은 심심할 지도 모른다.

 

  예쁘게 포장된 그림이 아닌, 마비되고 우울한 한 시대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단편집이지만, 누구보다도 그 나라를 사랑하고 그 나라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전해주려 했던 작가의 상황이 연상된다. Dubliner의 이야기지만, 사회 속에서 제 모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작품인 듯 하다. 짧지만 강한 임팩트가 있는 소설들이, 마찬가지로 기억 속에 강하게 남는다.

 


 

 

  더 있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그 여자의 물건들에 좀 더 관심이 있는 듯 보이려고 잠시 더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천천히 몸을 돌려 바자 중심부에서 걸어 나왔다. 나는 들고 있던 1페니짜리 동전 두 개를 주머니 속 6펜스 동전 위에 떨어뜨렸다. 전시장 끝에서 누군가 불이 나갔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홀의 윗부분은 이제 완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어둠 속을 바라보면서 나는 허영심에 속고 놀림당한 어리석은 내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내 눈은 괴로움과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43p, 애러비)

 

 

  늦가을 붉게 타는 석양이 풀밭과 산책로를 비추고 있었다. 석양빛은 흐트러진 옷차림의 보모들, 벤치에서 졸고 있는 늙은 남자들 위로 친절하게 황금빛 먼지를 뿌리고는 움직이는 모든 것들 - 소리를 지르며 자갈길을 달려가는 어린이들과 정원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 - 위에서 어른거렸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인생을 생각했고 (인생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그랬듯이) 그러자 슬퍼졌다. 미묘한 우울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운명에 대항하는 것이 얼마나 무익한가를 느꼈다. 이것이 수많은 세대들이 그에게 물려주었던 지혜의 핵심이었다. (91p, 작은 구름)

 

 

  차가운 어둠 속에서 붉은 불빛들이 아늑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언덕 아래를 쳐다보았다. 아래쪽 공원 벽의 그림자 아래에 누워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타락한 은밀한 사랑에 그는 절망감을 느꼈다. 그는 자기 인생의 청렴함을 곱씹어 보았다. 그는 자신이 삶의 축제에서 추방되었음을 느꼈다. 한 인간이 그를 사랑했었던 것 같았지만 그는 그녀의 삶과 행복을 거부했다. 그녀에게 불명예, 부끄러운 죽음을 선고했던 것이다. 그는 벽 아래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 그가 빨리 가버리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도 그를 원하지 않았다. (153p, 가슴 아픈 사건)

 

 

  게이브리얼의 눈에 관용의 눈물이 고였다. 그 자신은 어떤 여자에게도 그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지만 그런 감정이 사랑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눈물이 더 많이 고였고 희미한 어둠 속에서 그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나무 아래에 서 있는 젊은 남자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다른 모습들도 가까이 있었다. 그의 영혼은 수많은 죽은 자들이 살고 있는 그 지역에 접근 했었다. 그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깜빡이는 그들의 존재를 의식할 수는 있었지만 인식할 수는 없었다. 그 자신의 정체성도 회색빛의 알 수 없는 세계로 사라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 죽은 자들이 한때 지어내고 살았던 확고한 세상 그 자체도 점점 줄어들어 사라지고 있었다. (303p, 죽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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