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 소설의 느낌 그대로, 그러나 왠지 깔끔한 기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무라카미 하루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나' 혹은 '하루키' 그 자신이 대학생 시절부터 하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는 한 문장. 글쓰기란, 그에게 어려운 작업이었다. 정직하기란 어렵고, 정확한 언어를 찾기도 어려웠던, 많은 고난을 겪게 하는 일. 그러나 책 속에서의 또 한 문장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일은 즐거운 작업이기도 하다. 삶이 힘든 것에 비하면 글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너무나 간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길 원하고,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모색하고, 나아질 거란 확신을 가지고 한 줄 한 줄 써내려간다.

 

  그러고 보면 글을 쓰는 작업은 삶을 사는 것과 유사한 것 같다. 현재까지 한 경험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혹은 써내려갈 문장의 불씨가 되고, 언제나 완벽하기를 원하지만 완벽할 수 없고, 어렵고 어려운 것... 차이점이라면 글은 고치면서 써나갈 수 있지만 삶은 이미 행해진 것은 고칠 수 없다는 것뿐. 그래서 삶은 글보다 더욱 더 어렵고 고되다.

 

  지금은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한 그의 청춘 시절은 생각보다 더욱 파란만장하고, 시끄럽게도 사색과 고민이 넘치던 시기였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소설 속에서 '청춘'들의 이야기를 써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루키의 초기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또한 '청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자신의 경험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다. 하루키는 재즈카페를 경영하면서 '불현듯 무언가 쓰고 싶어서' 이 작품을 썼다. 고향을 방문한 '나' 그리고 '쥐'라고 불리는 개성적인 친구, 손가락 한 개가 없는 여자친구, 정도가 책 속에 등장하는 주요 등장인물이다. 그리고 책 속의 '나'가 심취하고 위안 받았던 가상의 작가 '데릭 하트필드'에 대한 서술이 여러 부분 등장한다. '하트필드'는 소설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필연적으로 문학에 심취하게 만드는 존재가 된다. ('나'가 하루키 자신이라면 '하트필드'에 해당하는 실존 인물의 작가가 있었을 듯싶다.)

 

  이 책은 다른 하루키의 장편 소설들처럼 느낌은 비슷하지만 읽고 난 뒤의 기분은 유달리 깔끔한 느낌이다. 이후에 나온 작가의 다른 장편 소설들도 물론 멋진 소설들이지만, 약간의 부담스러움과 살짝궁 찝찝함이 남았던 것이 있었다. 무언가 한 번에 감당하기 힘든 생각들이 쭉 늘어진 느낌. (작가의 표현력도 성장하고, 그래서 더욱 폭발적으로 써내려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그래서 약간은 에세이처럼 가벼운, 무거운 대화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고민들을 독자에게 많은 부분 넘겨주는, 간결함이 느껴지는 이 소설에 더욱 애정이 간다.

 

 

 

 

 

 

          "맛있었어?" 

 "굉장히 맛있었어."

그녀는 가볍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왜 언제나 물어보기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

"글쎄...... 버릇이라고나 할까? 언제나 중요한 건 꼭 빼놓고 얘기한다니까."

"충고 한 마디 해도 돼?" "해봐." "그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손해 볼걸."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고물자동차와 같아서 어딘가를 수리하면 다른 곳이 한층 두드러지거든."

 그녀는 웃으면서 레코드를 마빈 게이로 바꿨다. 시곗바늘은 여덟시 가까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87p)

    

 

         누구나 쿨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시절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나는 마음속의 생각을 절반만 입 밖으로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유는 잊어버렸지만 나는 몇 년동안 그 결심을 실행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이 생각한 것을 절반밖에 얘기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린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이 쿨한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1년 내내 서리제거제를 넣어주어야 하는 구식 냉장고를 쿨하다고 부를 수 있다면, 나 또한 그렇다. (106p)

 

 

  "그때 생각을 했지. 왜 이렇게 거대한 걸 만들었을까....... 물론 모든 무덤에는 의미가 있어. 어떤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지. 그래도 그 무덤은 너무 거대하더군. 거대하다는 건 때때로 사물의 본질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어 버려. 실제로 말이야, 그것은 전혀 무덤으로 보이지 않더군. 산이지. 해자의 수면은 개구리와 수초로 가득 차 있었고 울타리 주위는 온통 거미줄 투성이였어. 나는 잠자코 고분을 바라보면서 수면을 가르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그때 내가 느낀 기분을 도저히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어. 아니, 기분 같은 게 아니었다고. 마치 뭔가에 푹 감싸인 듯한 감각이었어. 그러니까 매미나 개구리, 거미, 바람, 그 모든 게 하나가 되어 우주를 흘러가는 거지."

 쥐는 그렇게 말하고 이미 탄산이 빠진 콜라의 마지막 한 모금을 마셨다. "글을 쓸 때마다 나는 그 여름날의 오후와 나무가 울창한 고분을 떠올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지. 매미나 개구리, 거미 여름풀 그리고 바람을 위해서 뭔가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고 말이야." (111p)

 

 

 "(...) 이 세상에는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없는 일도 있더군."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충치 같은 거야. 어느 날 갑자기 쑤시기 시작하지. 누가 위로해 줘도 통증은 멈추지를 않아.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신에게 무척 화가 나기 시작하지. 그리고 그 다음엔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는 녀석들에게 견딜 수 없이 화가 나기 시작하는 거야. 알겠어?"

 "조금은"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라구. 조건은 모두 같아. 고장난 비행기에 함께 탄 것처럼 말이야. 물론 운이 좋은 녀석도 있고 나쁜 녀석도 있겠지. 터프한 녀석이 있는가 하면 나약한 녀석도 있을 테고, 부자도 있고 가난뱅이도 있을거야. 하지만 남들보다 월등히 강한 녀석은 아무 데도 없다구. 모두 같은 거야.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자는 언젠가는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겁을 집어 먹고 있고,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는 영원히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지. 모두 마찬가지야." (113p)


 

 


 

 

- '레종 데트르'는 하루키 소설에서 여러 번 등장하네요. 아직도 완벽하게 파악하긴 어려우나... T.T

- 초기 4부작 중 3개가 남았다는 사실이 반가워요. <1973년 핀볼>, <양을 쫓는 모험>, <댄스댄스댄스>

이것들로 조만간 책장을 채워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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