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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가우초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9월
평점 :
문학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다 <참을 수 없는 가우초 - 로베르토 볼라뇨>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놀라운 작가를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뭔가 확- 하고 와 닿는 글을 만날 때, 놀라움이 생기고 그저 그렇게 읽어나가던 책이 한순간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참을 수 없는 가우초>를 읽으면서 나는 작가에 대한 특별함을 느꼈다. '볼라뇨'라는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나보았지만, 예전에 작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아, 언제 이 책도 읽어봐야겠다' 정도로 스쳤던 책이 볼라뇨의 책이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았다. 그때 읽어보았으면 좋았으련만. <참을 수 없는 가우초>는 물론 멋진 책이기는 하지만 '어떤 작가의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하기엔 조금 아쉬운 감이 있기 때문이다. 뭔가 많은 단계를 단숨에 뛰어넘어버린 느낌이랄까. (작가의 다른 작품을 더 읽은 후에 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시한폭탄'이라고 불리는 '볼라뇨'의 문학적 유서와도 같은 이 작품은 짧은 소설 다섯 편과 두 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있다. '시한폭탄'이라는 별명처럼 약간은 파격적이고 독특하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을 안고 있는 글들이다. 짧지만 '볼라뇨'가 추구하는 문학의 세계가 투영되어 있고, 카프카나 보르헤스 등의 문학과 연결되어 있다. 단편 <참을 수 없는 가우초>에서는 가우초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카우보이)의 생활에 침투하게 된 한 변호사가 삶의 방향을 정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경찰 쥐>에서는 마치 인간의 모습인 양 착각하게 되는 '쥐 사회'의 모습이, <두 편의 가톨릭 이야기>에서는 '천명'과 '우연' 두 인물의 각기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는 장면이 특이한 형태로 서술되어 있다.
'문학은 여행과 같다'는 볼라뇨의 문학에 대한 태도가 나머지 에세이들에서 드러나 있다. 병으로 인해 죽을 때까지, 문학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에게 문학이란 무엇이었을까. 문학 + 병 = 병이라고 표현한 그에게 병과 문학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을까. "권태의 사막 한가운데 있는 공포의 오아시스" 혹시 그에게 문학은 수많은 '공포의 오아시스' 속에서 찾아낸 '시원한 오아시스'가 아니었을까?
이해하기 쉬운 책은 아니다. 그러나 독자가 반드시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책이라고 좋은 책이 아니다. 볼라뇨는 에세이의 끝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들에 대한 유쾌한 독설을 날린다. 오로지 성공과 명예만을 쫓아가기 시작한 많은 작가들의 모습, 그 속에서 '작가'로서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그의 글에서 보이는 듯 하다. '어떤 곳에서 길을 잃을지라도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여행', 문학. 우리는 '작가'이자, '독자'였던 볼라뇨의 글들을 통해 그러한 여행에 동참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여행의 시작선을 밟았고 내가 아직 접해보지 못한 '여행 속의 오아시스'를, 볼라뇨의 다른 책들에서 찾아보려 한다. 언젠가 우연히, 엄청난 뭔가를 만나게 될 수도.
- 말을 타본 게 대체 얼마만이야? 페레다는 생각했다. 페레다는 순간적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안락함과 널찍한 의자에 익숙한 자기의 뼈가 부러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밤은 늑대의 입처럼 어두웠다. 페레다는 이 표현이 멍청한 소리 같았다. 분명 유럽의 어두운 밤은 늑대의 입 같겠지만 아메리카의 밤은 그렇지 않다. 차라리 아메리카의 밤은 공허함, 붙잡을 게 없는 곳, 허공의 공간, 완전한 노천, 위아래로 텅 빈 어둠이었다. 무탈하시오, 돈 둘세가 소리치는 말이 들렸다. 하늘에 맡겨야지요, 어둠 속에서 그가 대답했다. (29p, 참을 수 없는 가우초)
- 꿈에서 그만 깨시게, 페페. 그리고 자네 업무나 잘하면 그만이네, 서장이 말했다. 현실적인 일도 어지간히 복잡한데 비현실적인 일을 덧붙이면 현실까지 흐트러지네. 견디기 힘든 졸음이 쏟아졌지만 나는 흐트러진다는 말이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서장은 검시관에게 동의를 구하듯 그를 쳐다보며 깊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삶이라는 게 짧지 않은가, 불행히도 우리의 삶이 그러하고, 그러니 질서를 향해 가야 한다는 것이네. 무질서가 아니라 말일세. 게다가 상상의 무질서라면 더더욱 아니 될 말이고. 검시관은 심각하게 날 쳐다보며 그 말에 동의했다. 나 또한 수긍했다. (69p, 경찰 쥐)
- 그는 음험하기보다는 탁월한 익살꾼이라 할 만한 사람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평탄해 보이던 그의 삶이 이제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힘겨운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을 거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그는 그저 우연한 사건의 희생자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사건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흔한 일이다. 알고 보면 뭔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의 희생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건 아마 열정이라는 것이 - 인간의 다른 어떤 감정보다 빠르게 - 제 끝을 향해 질주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욕망의 대상을 지나치게 헤프게 다루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84p, 알바로 루셀로트의 여행)
- 보를레르 시에서 뱃사람들이 원하는 여행은 어찌 보면 어쩔 수 없는 운명적 여행 같습니다. 나는 여행하려 합니다. 미지의 땅에서 길을 잃을 테죠. 무엇을 만나고 무슨 일이 생길까요. 하지만 그 전에 모든 것을 내려놓으렵니다. 다시 말해, 진정한 여행을 하려면 여행자는 아무것도 잃을 게 없어야 하니까요. 여행, 이 멀고도 파란만장한 19세기의 여행은 입원실에서 아사신 암살 교단의 불한당처럼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자들이 기다리는 수술실로 향하는 침대 위 환자의 여행과 다르지 않습니다. 분명 여행 초기엔 낙원에 대한 비전이 살아있습니다. 그런 비전은 여행자의 현실보다는 그의 의지나 문화에서 비롯한 것이지요. (144p, 문학+병=병)
- 카네티는 그의 저술에서 20세기 최고의 작가 카프카가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처음 피를 토한 날 이후로 그 무엇도 자신과 글쓰기를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글쓰기와 떨어질 수 없다는 말로 난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나는 카프카가 여행과 섹스, 책은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 길이며, 그럼에도 뭔가를 찾아서 그 길에 들어서고 길을 잃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말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뭔가가 책이든, 몸짓이든, 잃어버린 무엇이든, 그것이 어떤 방법이든, 그 어떤 것이 됐든, 그걸 찾아서 말입니다. 운이 따르면 늘 거기에 있었던 것, 바로 새로운 것을 찾을지도 모르지요. (154p, 문학+병=병)


짜잔 - 책을 열어 뒤집어보면 토끼가 나타납니다.
이 토끼는 단편 <참을 수 없는 가우초>에 등장하지요 :)
* 곧 작가의 평생에 걸친 역작인 <2666>이 출간된다고 합니다 - 기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