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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바람도 그릴 수 있다면 - 만화와 사진으로 풀어낸 인도여행 이야기, 인도 여행법
박혜경 지음 / 에디터 / 2013년 11월
평점 :
묘하게 아름다운 인도, 만화로 보는 그 나라의 여행법
[인도, 바람도 그릴 수 있다면 - 박혜경]
인도라는 나라는 나에게 더없이 많은 환상이 깃든 곳이었다. 영화에서 보았던 화려함과 소박함이 공존하던 마을의 모습, 온통 새파란 빛으로 칠해져 신비스러움이 가득하던 블루시티 '조드푸르'. 그리고 우연히 가게 되었던 '스티븐 맥커리 사진전'에서 본 오묘한 느낌의 사진들, 호수에 비치던 타지마할의 그림자. 한 번도 가지 못했던 어떤 곳에 대한 조그만 환상이 모여, 나는 언젠가부터 상상속의 여행을 하고 있었다.
내가 본 인도에 대한 풍경들이 어쩌면 정말로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일부분, 과장돼서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부푼 마음으로 그 넓은 땅 중 한 곳을 밟았을 때, 설레는 기대가 두려움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모든 것이 설렘을 안겨주듯, 아직도 '인도'는 나에게 '아름다운 나라'다.
이런 설렘을 더욱 크게 만들어준 이 책은, 만화로 그린 '인도 여행 가이드북'이다. 그러나 읽다 보면 지루한 나열로 되어있는 가이드북, 그리고 그냥 가벼운 만화라기보다는 여행자의 감성을 담아낸 에세이 같다. 귀여운 캐릭터와 그림체 때문에 다소 가볍기만한 책이 아닐까 처음에는 우려했지만, 짧은 글들에서 저자가 직접 체험하고 느낀 섬세하고 깊은 감정이 묻어 나왔다. 처음부터 '인도'라는 나라에 매혹되어 그 나라의 땅을 밟게 되었고, 가끔은 혼란스럽기도 하고 오해도 많이 했지만 결국 '인도'의 다양한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되었었다는 저자. 여행자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친근한 인도인들, 굉장히 다양한 음식들, 땀 흘리는 노동의 풍경 같은 아름다운 상상의 모습도 있지만, 반대로 터질듯한 더위와 약이 들은 음료를 권하여 돈을 훔치려는 사람들, 상식과 기준에 어긋나는 많은 상황들이 그곳에 존재한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인도는 지극히 위험한 나라도 아니지만, 여행자가 지녀야 할 판단력과 융통성이 그 어느 곳보다 절실하다'고.
물론 어느 여행지에서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존재하고, 단호한 선택이 필요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을 다 보고 나니, '인도'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재미있는 곳이기도 하고 아직 나에게 감당 못할 여행지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언젠가 꼭 가볼 생각이다. 겁난다고 망설이기엔 너무나 아쉬울, '더럽게 아름다운 나라'가 바로 인도라는 곳이니까.
(만화형식으로 되어있지만, 좋은 글들이 많아 텍스트만 발췌했습니다.)
- "넌 네 의견이 없어?" 그가 그런 말을 했던 이유는 내가 식당이랄지, 어떤 도시에 가고 싶은지, 기차를 탈 건지 버스를 탈 건지 등의 선택권을 종종 다른 일행에게 양보했기 때문이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너도 A처럼 고집 좀 피워!"라는 게 요지였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게 있었다. 처음부터 나는 반드시 인도여야만 하는 여행이었고, A는 인도가 아니라도 상관없는 여행이었다. 선택의 범위란 이토록 무섭다. 인도를 선택한 나는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그 안에서 무엇을 먹든 무엇을 보든 무엇을 타든 난 이미 그 모든 것에 속해있는데, 소소한 선택으로 내 취향을 고집 피우는 것 따위. 그쯤이야 백 번이라도 양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도에서 만족을 찾을 수 없었던 A는 다른 부수적인 요소에서 그것을 얻으려 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제 취향을 다른 이에게 절대 양보하지 않던 그는 끝내 인도를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프롤로그)
- 여행자에게 있어서 배낭이란 자신의 정체성이나 마찬가지인지도 모르겠다. 필요한 물품이 배낭 하나에 깔끔하게 정리되는 걸 보면 놀랍기도 하고 떠나기 전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나름대로 철저히 예측하고 준비하면서 꿈꾸던 것에서 벗어난 실질적인 성취를 향한 의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61p)
- 나는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이 시간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육교 밑에는 서너 명의 남자아이들이 물구나무를 서며 놀고 있었는데 내가 낭만에 빠진 동안 친구는 내내 그 아이들을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 기차를 기다리는 몇 시간 동안 우리는 같은 공간 속에서 각자 수많은 생각들을 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건, 일행으로서 공간과 시간을 함께 공유하면서도 각자 사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220p)
- 지나가던 한 인도인이 내 카메라에 환한 웃음을 보여줬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을 행복 또는 불행하다고 섣불리 해석할 수 있을까. 가끔 그런 여행자를 만날 때면 그가 관심 있는 건 오직 인도에서의 경험을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풀어내 친구들에게 공감 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주의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은 어딘가 비세속적으로 보이는 인도인의 생활을 소박한 평온이라 칭송하면서도 결코 그들의 삶을 닮으려 풍덩 뛰어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나 자신은 어떤 여행자일까. (238p)
만반의 준비를 하고 언젠가 꼭 갈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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