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눈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45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구자언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간결하지만 여운을 주는 글들 <킬리만자로의 눈 - 어니스트 헤밍웨이>

 

 

After Reading

 

 

 

 

  아프리카의 거대한 휴화산, 킬리만자로. 생각보다 너무나 짦은 <킬리만자로의 눈> 소설 속에선 '킬리만자로'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진 않지만, 차가운 느낌의 흰 산이 이 글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아직 잘 모르겠다, 헤밍웨이가 왜 '킬리만자로'를 선택한 것이며, 책의 앞뒤에 죽은 표범과 하이에나의 울음소리를 등장시켰는지.

 

  <킬리만자로의 눈>은 단편집이다. 같은 제목을 가진 단편 소설, 그리고 4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들은 헤밍웨이의 담백하고 꾸밈없는 문체를 담아내고 있다. 짧디 짧은 이야기들 중 마음의 들었던 두 단편, <두 심장을 지닌 큰 강>에서는 오직 낚시와 야영을 하는 주인공의 행동을 묘사한다. 작가는 이야기 속 장면에 어떠한 이유나 구구절절 무언가를 붙이지 않고, 그저 주인공의 행동을 지켜본다. <깨끗하고 환한 곳>에서는 깨끗하고 환한 카페에서 웨이터들이 귀가 들리지 않는 노인에게 술을 대접하며 하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나마 소설의 메시지가 다른 단편들보다 조금 더 드러나 있다. 모든 것은 '무(無)'이지만 그저 견디어 살아가라는 것, 안쓰러운 노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카페의 웨이터는 중얼거린다.

 

  전체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딱 묶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죽음'과 '아픔'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는 다가오는 '죽음'의 이미지를 자세히 그리고 있다. 평생 글을 쓰는 꿈을 안고 살았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주인공. 그러나 그 죽음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허무한 주인공의 모습. 소설의 첫 머리에 죽어있던 표범의 이미지와 주인공의 죽음은 킬리만자로의 시린 이미지 속에 겹쳐지게 된다.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보고 있게 될 때, 어떤 기분이 들까. 죽음 앞에서 그저 허무하게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기분이 어땠을까? 다리의 끔찍한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반가웠을까, 아니면 못 이룬 꿈에 대해 아쉬움이 들었을까. 안타까운 상황 설정과, 소설의 끝의 하이에나의 울음소리가 마음속에 깊이 남아 여운을 준다.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장황하거나 화려한 수식어는 없지만, 짧은 소설 속에서 생각보다 무거운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게 헤밍웨이가 사랑받은 이유였을까? 그의 글들을 더 많이 접해보고 싶다.

 

 

Underline

 

 

 

 

  - 그는 무너진 사람들을 경멸해 왔다. 그런 사람들을 이해한다고 해서 꼭 좋아할 필요는 없었다. 신경 쓰지 않으면, 어떤 것도 그를 다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뭐든지 부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좋아. 이제 그는 죽음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가 늘 두려워했던 것은 통증이었다.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통증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통증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서, 그를 지치게 했고, 뭔가 끔찍할 정도로 아프게 하는 뭔가가 있었고, 통증이 그를 부순다고 막 느껴질 때, 통증이 멎었다. (48p)

 

 

  - 바로 그때, 죽음이 다가와서 야전침대 발치에 머리를 올려놓았다. 그는 죽음의 입김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이 항상 커다란 낫을 든 해골과 같은 모습으로 찾아 온다고는 생각하지 마." 그는 여자에게 말했다. "자전거를 탄 두 명의 경찰관일 수도 있고, 새가 될 수도 있어. 아니면 하이에나처럼 둥근 코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 이제 죽음은 그의 몸 위로 올라왔지만, 아무런 형체도 지니지 않았다. 공간만 차지할 뿐이었다. (51p)

 

 

  - 얼굴에 검은 천을 두른 소년을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똑같은 훈장을 달고 있었다. 소년은 훈장을 받을 정도로 전방에 오래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되려는, 무척 창백한 얼굴을 지닌 키가 큰 소년은 이탈리아 돌격대 아르디티에서 소위로 있었고, 우리가 하나씩만 가지고 있는 훈장을 모두 세 개 지나고 있었다. 그는 죽음과 함께 아주 오랫동안 지내서, 약간 죽음을 초월한 것 같았다. 우리도 다들 약간씩 죽음을 초월해 있었고, 매일 오후 병원에서 만나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마을의 험한 곳을 지나서 코바로 걸어갈 때, 와인 가게에서는 빛과 노래가 흘러나왔다. 때때로 남자와 여자들이 보도 위를 붐빌 때면, 우리는 도로로 들어서야 했고, 지나가기 위해서 그들을 거칠게 밀쳐야 했다. 우리를 싫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함께하는 느낌이 들었다. (127p)

 

 

  - 그가 무서운 것은 뭘까? 두려움이나 공포는 아니었지. 그가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것은 바로 무(無)였다. 모든 것이 무였고 인간도 역시 무였다. 무밖에 없었기 때문에 불빛이 필요했고, 어느 정도 깨끗하고 질서가 잡힌 곳이 필요했다. 무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 안에 계신 우리의 무여, 당신의 이름은 무가 되오며, 왕국도 무이며, 무에서 당신의 뜻이 무가 되듯이 무 안에서도 그렇게 되도록 해주옵시고, 우리에게 일용할 무를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무를 없애듯이 우리의 무를 없애주시고, 우리를 무 안에 빠뜨리지 마시고, 다만 우리를 무에서 구하소서. 그러니 무여, 무로 가득한 무를 찬양하라. 무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할 것이니, 그는 빙긋이 미소를 짓더니 술집 카운터 앞에 섰다. 반짝이는 커피 머신에서 증기가 나오고 있었다. (1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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