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여행하다 - 공간을 통해 삶을 읽는 사람 여행 책
전연재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공간을 통해 삶을 읽는 사람 여행 책 <집을 여행하다 - 전연재>

 

 

 

 

After Reading

 

 

 

   집은 그곳에서 사는 사람의 고유한 느낌과 향기를 갖고 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 습관, 취미, 분위기가 집 안에서 배어 나온다. 그래서 항상, 남의 집을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다. 다른 사람의 공간을 조심스레 발 디디는 설렘도 있고 나와는 다른 무언가를 관찰하고.. 집 곳곳에 간직해온 추억들, 이를테면 사진 같은 것들이 흥미를 자극한다. 만약 누군가가 여행을 하게 된다면, 여행 중에 이런 경험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행을 계획하게 될 땐 보통 숙소부터 생각하지만, 사람냄새나는 집에 머물기보다는 잠시 묵다가는 숙소를 찾기 마련이다. 무언가에 방해받고 싶지 않거나,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부담스러워일까, 대부분 그렇다. 그래서, '집을 여행하기'란 생각보다 낯선 것일지도 모른다. 생판 모르는 사람 집에 묵고 그 집의 모든 것을 느끼고 마음 놓고 지내는 일, 그 일은 요즘 시대에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특별하고 낯선 여행의 기록인 이 책은 무엇보다 낭만적이고,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인다. 여성 건축가인 저자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 집에 머물고, 그 사람과 정을 나누며 여행한다. 모두가 아는 관광지를 찍으러 뛰어다니는 것은 이미 예전에 질렸다는, 이 부러운 여자는 이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가 만들어주는 뜻밖의 상황과 공간 속을 여행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책 속에는 그녀가 머물렀던 각각의 매력적인 '집'들이 등장한다. 집 안에 절대 문을 찾아볼 수 없는 집, 시원하게 트이는 공간감의 로프트로 개조한 집, 하우스보트, 오두막, 가족들의 침대가 모두 한 방에 있는 집... 그 집들은 모두 개성 있고 편안하다. 또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을 통해서 비로소 집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집 주인이 있기에 그 집은 두 배 더 특별해진다. 저자는 이처럼 집과 사람을 만나고, 마음으로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행을 했다.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식탁'에서 풍성하게 차려진 식사도 많이 대접받았다. 처음 만난 그들이지만 저자의 글을 통해서 그들이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깊은 마음을 나눴는지 상상이 간다.

 

  이런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축복일까? 그녀가 본 것들은 대부분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집'이지만, 그 어떤 여행보다도 즐겁고 편안해 보인다. 그녀가 만난 집과 사람, 모두가 특별하지만, 아마도 저자는 생각보다 더욱더 특별한 사람일지 모르겠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아주아주 다정한 사람. 그런 모습이 글속에 묻어 나오는 것 같아서 참 좋다.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 그 '집'을 읽는 것, 결국 책 표지에 새겨진 문구처럼 누군가의 '삶'을 읽는 것이 틀림없다. 삶을 읽는 여행, 내밀한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여행, 그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Underline

 

 

   - 산의 중턱에는 방 한 칸, 부엌 한 칸이 전부인 데이비드 친구 제니의 작은 오두막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몇 년 전 땅을 사서지었다는 이 오두막은, 도로도 나지 않은 곳이라 큰 자재들은 헬리콥터로, 나머지 자잘한 것들은 직접 손으로 옮겨야 했다고 한다. 오두막은 아름다웠다. 자연 외에는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고, 집 앞에 펼쳐진 바다와 들판은 드넓었다. 곳곳에는 직접 깎아 만든 나무 의자며, 조개 장식들이 추억과 함께 머물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는 말을 잃고 그저 햇살을 느끼고, 바람에 귀 기울인다. (116p)

 

 

  - 어린 시절 우리를 가장 기쁘게 하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중 하나는 주변의 하늘을, 구름을, 산을, 꽃을, 엄마와 아빠를, 고양이를 그릴 때였을 것이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내 손과 생각을 통해 그림으로 만들어내고, 그것을 다시 다른 이에게 내보일 때 우리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두 눈은 기쁨으로 빛났으리라. 우리 모두는 태생적으로 일상의 예술가이자 몽상가다. 사회의 관념으로 억압되어 있던 그 재능은 눈치 볼 것 없는 자기만의 방에서 비로소 자유롭게 드러난다. (167p)

 

 

  - 여행을 하면서 배우게 되는 것은 다르게 생각하는 법이다. 진리는 하나뿐이라고 배우는 좁은 사회에 갇혀 살다 길을 나서면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른 생각을 갖고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조금은 더 많은 선택의 여지를 갖기도 하고, 나에게 맞는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갈 힘을 얻기도 한다. 길에서 배운 또 하나의 사실은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좋다 싫다라는 선택이 있을 뿐이며, 진리라는 것이 반드시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깨달음은 나의 잣대로 쉽사리 타인을 판단하지 않게 해주었다. 그 역시 분명 그만의 진실을 향해 온 마음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일 테니까. (175p)

 

 

  - 거리를 식당으로 삼을 줄 아는 이들의 집은 무한히 크다. 그들의 집은 온 세상이다. 지금 당신이 머물고 있는 집이 좁다면, 그래서 마음이 갑갑하다면 당장 밖으로 뛰쳐나와라. 테라스로, 거리로, 타인의 식탁으로, 그도 성이 차지 않으면 머나먼 타국으로! 밖으로 나와 거리의 사람과 대화하고, 낯선 풍경과 만나며, 그렇게 자신의 집을 무한히 넓혀나가길. (198p)

 

 

  - 자연에 무방비로 노출되거나 홀로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사람들의 감각은 동물의 그것마냥 예민해진다. 나는 시칠리아의 섬에서 지내는 동안 그곳 사람들이 날씨 변화에 얼마나 민감하지를 지켜보았고, 외딴 시골이나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몸을 지키기 위해 모든 감각을 깨운 채로 살고 있음을 체감했다. 그것은 도시에 사는 우리가 오래전에 잃은 예리한 감각들이다. 온도, 바람, 냄새 등에 예민하다는 것은 생생히 살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날이 선 감각은 세상의 사물과 현상에 대해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은 것을 흡수하게 만든다. 이는 도시인들이 회복해야 할 감성이기도 했다. (241p)

 

 

Add...

 

 

 

사실 처음에는 건축가의 시선으로 본 집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을 줄 알고선,

책이 생각보다 싱거운가-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여느 여행에세이와 다를 것 없다는 느낌?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남다른 여행 목적을 느끼게 되면서, 그 느낌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글도 생각보다 참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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