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나라 1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8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 / 책세상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향락에 취한 도시,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술의 나라 - 모옌>

 

 

 

After Reading

 

 

 

   사람에 따라 역겨울 수도 있는 책입니다. 아니, 아마 많은 사람에게 혐오감을 줄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소설이라도 그럭저럭 상관없이 읽는 편이지만, 이 책은 중간중간 참을 수 없이 얼굴이 찡그려져서 덮을까말까 고민했습니다. 그 이유는 소설의 재미와는 상관없이,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버거운 소재를 이 책이 다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탄광산업으로 번창한 주꾸어라는 도시에 고위 수사관인 띵꼬우가 수사를 나가게 됩니다. 바로 '아이고기'를 먹는다는 소문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지요. 그런데 수사의 초반부터 뭔가 제대로 알 수 없는 분위기가 풍겨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만화(혹은 영화) <이끼>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파헤치기 위해서 들어갔을 때, 아이러니한 냄새를 풍기던 도시와 그 마을 사람들처럼요. 수사관 띵꼬우도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호랑이 굴 속에서 마치 포위된 짐승과도 같은 느낌을 말이죠. 경제발전으로 술과 향락에 엄청 빠져들던, 그런 이상한 눈길의 주꾸어 시 사람들은 띵꼬우에게도 호화스런 식탁을 대접합니다. 술은 안마신다던 띵꼬우의 입에 한 잔, 한잔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올바른 수사를 해야할 목적은 점차 흐릿해지고, 점점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사건들이 그에게 일어나게 되면서 점차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야기의 독특함과 함께 소설은 아주 재밌는 형식 또한 갖추고 있습니다. 띵꼬우 수사관이 도시에 잠입한 기본 틀의 이야기와 더불어, 또 하나의 이야기가 등장하지요. 주꾸어 시에 살고 있는 문학청년 '리이또우'와 '모옌'이 나누는 편지글, 그리고 '모옌'작가에게 보내는 '리이또우'의 짧은 소설들. 그 짧은 소설들은 주꾸어 시에 대한 내용으로 어린 아이, 제비집, 당나귀 성기를 먹는 이상하고 해괴망측한 도시 사람들의 이면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소설의 형식은 소설 속의 액자, 계속해서 액자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면서, 색다른 소설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재치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대신, 중간 중간 환상 속 이야기 같은 부분은 조금 책장을 넘기기 힘들기도 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가 섞인 <술의 나라>는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들의 식문화는 인정할 수 없는 너머로 들어선 듯 보입니다. 먹을 것에 대한 욕망이 넘쳐흘러, 기본적인 생존욕구를 넘어 폭력적인 학살의 수준까지 넘어가는 <술의 나라> 속 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이 과연 인간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향락과 욕망에 취해 이성을 잃어버린 주꾸어 시의 사람들, 그리고 그 도시에 발을 들여 같이 취해가는 주인공.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이야기지만, 혹시나 실제로 있을까 싶어 두려워지는 소설입니다.

 

 

Underline

 

 

 

   - 태양이 아이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어서 아이들의 얼굴은 여러 개의 꽃송이가 무더기로 피어난 해바라기 꽃밭 같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갓길을 따라서 아이들에게 접근했다. 그의 몸을 스쳐 지나가는 자전거는 거무죽죽한 뱀장어 같았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의 얼굴에는 강렬한 햇빛 때문인지 모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꽃처럼 단장을 하고 있었으며, 포동포동한 얼굴에 미소 짓는 눈동자들이 돋보였다. 그들은 굵고 긴 붉은 줄에 묶여 있는 한 두름의 물고기 같았으며, 한 나무 줄기에 열려 있는 잘 익은 열매 같았다. 자동차가 아이들의 몸에 매연을 내뿜었다. 그 연기는 석탄 같았고, 아이들은 한 꼬치에 꿰어 구워진 새 같았고, 그 위에다 여러 가지 조미료를 뿌려놓아서 독특한 향기가 코를 찌르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나라의 미래이고 꽃이며 제일 소중한 보배다. 누가 감히 그 아이들을 깔아뭉개 죽이겠는가? (1권, 30p)

 

 

  - "저는 상황을 조사하려고 왔지, 술을 마시러 찾아온 게 아닙니다." 무례한 어조가 역력했다. 광산 책임자와 당 위원회 서기가 완전히 똑같은 눈길을 주고 받더니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여전히 자애로운 어조로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알지요. 당신에게 술을 마시라고 권하지 않을 겁니다." 띵꼬우는 형제 같은 이들 중 도대체 누가 당 위원회 서기이고 누가 광산 책임자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그들이 언짢아할까 염려되어 묻지도 못한 채 멍청하게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어서어서 가기나 하십시다. 술은 안 마셔도 식사는 해야지요." 그는 계속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한 사람이 앞에 서고 두 사람이 뒤를 따르는 삼각형 구조가 싫다고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 모양으로 걷자니 술자리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법당을 향해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발걸음을 늦추어 그들과 나란히 걸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생각이었다. 그가 발걸음을 늦추면 뒤따르던 두 사람도 동시에 발걸음을 늦추었으니 삼각형 모양은 결코 뒤틀리지 않았고, 그는 시종일관 붙잡혀 가는 사람 같은 위치에 처해 있었다. (1권, 70p)

 

 

  - 나중에 누군가 여러 개의 손가락이 달린 손으로 선홍색의 포도주 술잔을 그에게 넘겨주었는데, 그에게는 그 손가락이 마치 다리가 여덟 개 달린 오징어처럼 모호하게 느껴졌다. 아직 껍데기 같은 몸에 남아 있는 의식의 찌꺼기 까지 동원해 있는 힘을 다해 힘겹게 일을 하고 있으나, 이미 해체되어가고 있는 그에게 그 손은 무리 지어 돌아다니는 사물처럼 보였다. 그것은 마치 여러 층으로 겹쳐진 분홍색 연꽃 같았다. 그런데 술잔 역시 여러 층으로 겹겹이 쌓여 있었다. 영롱한 보석으로 된 탑 같고, 특수한 기술로 찍어낸 사진 같았다. 주위의 선홍색보다 짙은 색을 띠고 있는 술잔들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놓여 있었고, 한 무리의 얇고 붉은 안개를 뿌리고 있었다. 이것은 한 잔의 술이 아니라 금방 떠오른 태양이며, 차갑고 농염한 그 불길한 애인의 심리였다....... (1권, 79p)

 

 

  - 얼어붙은 비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한 어떤 격렬한 소리가 부근에서 들려왔다. 그 진동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뛰었다. 무엇이 폭발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손전등 불빛이 혁명 전사 묘지를 비추던 바로 그 순간 한 줄기의 거대한 용기가 갑자기 그의 온몸에 주입되었다는 것이었다. 한 줄기 거대한 용기는 술의 고질병 같은 질투, 과부의 술과도 같은 사악함과 연약함, 애정의 술처럼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늘 마음에 걸리는 것들, 이 모든 것을 시큼하고 더러운 땀과 비린내 나는 오줌으로 바꾸어 체외로 배출해버렸다. 카자흐 초원을 질주하는 맹렬한 말과 같은 보드카가 그를 용맹스럽게 만들었다. 조심성이 없고 거칠고 호방하며, 거칠면서도 섬세하며, 모험심이 풍부하고 아주 자극적이어서 마치 스페인의 투우사처럼 광란적인 코냑이 그를 변하게 만들었다. (2권, 398p)

 

 

  - .......와, 와, 와! 진깡쫜, 그리고 이미 먹혀버린 후 화장실에 배설될 어린 남자아이들을 생각하자 띵꼬우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책임감과 정의감은, 한쪽에서 불타고 있는 북두칠성과 같이 암흑 속에서 도처로 돌아다니고 있는 의식을 비춰주었다. 이때 그는 귓바퀴와 코끝에 참기 어려운 아픔을 느꼈다. 마치 독을 묻힌 날카로운 물건이 그의 귀와 코를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구부려 앉았다. 하늘과 땅이 돌았고, 커다란 머리는 아주 큼직한 별자리처럼 느껴졌다. 힘겹게 부은 눈을 뜨니 네다섯개의 커다란 회색 그림자가 그의 몸을 넘고 있었으며, 땅을 내디딜 때마다 가슴이 갑갑해지는 듯한 이상한 소리를 굼뜨게 내뱉었다. 동시에 그는 날카롭게 찍찍거리는 새된 소리를 들었다. 도대체 어떤 진귀한 동물이 울고 있는 것일까? (2권, 511p)

 

 

Add...

 

 

 

작가는 자신의 문장에 대해 '세련되지 않은, 흙에서 빚은 문장이고 질그릇같이 투박하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충분히 세련된 것 같은데?..........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기대했는데, 정말 대단하긴 하네요.

다음에는 모옌의 <열세걸음>이나 <개구리>를 한번 읽어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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