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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관상 1~2 세트 - 전2권 - 관상의 神 ㅣ 역학 시리즈
백금남 지음 / 도서출판 책방 / 2013년 9월
평점 :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지만 세상은 변하게 할 수 없었다 <관상 - 백금남>
After Reading
영화로 나와 흥행하고 있는 <관상>의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소설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알고보니 시나리오와 소설이 비슷한 시점에서 제작되어 영화 개봉일에 맞추어 동시에 나온 것이었습니다. 원래 소설과 영화가 함께 있는 경우에는 전 소설을 먼저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보면 자꾸 영화의 이미지와 장면이 떠올라서, 시간의 제약이 있는 영화라는 매체에서 상영되지 않은 부분은 자세히 읽지 않게 되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다행인지 아닌지, 요즘 난리인 영화 <관상>을 아직 보지 못한 채,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세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이 서평에서는 여기저기 듣고 본 영화의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 '관상쟁이'의 삶을 통해서, 조선의 피튀기는 권력 다툼과 역사적 결과를 주로 다뤘다면, 소설 속에서는 '관상'이란 것에 보다 더욱 깊숙이 접근하는 듯 보입니다. 주인공인 '내경'의 아버지인 '지겸' 그리고 그의 스승인 '천수', 그리고 다시 주인공의 스승이 되는 아버지의 친구 '상학' 까지. 소설 <관상>의 대부분은 그들의 이야기와 관상쟁이의 피를 타고난 주인공 '내경'이 사람의 얼굴을 진정으로 통찰하게 되는 이야기를 많은 부분 다루게 됩니다.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관상'은 약간 허무맹랑하게 들릴 정도로 신기하고 굉장히 넓은 영역에 퍼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장육부의 기운이 모이는 얼굴을 보는 기본적인 '관상'은 많은 것을 결정하는 '찰색(피부색)과 함께 다루게 되고, 그밖에도 뼈를 보는 '골상'이 있으며 심지어는 생식기를 통해 관상을 보기도 하는데 거의 경악할 정도였지요. 이렇게 많은 부분을 통해 사람의 운명을 판단할 수 있다니!
길고 긴 수련으로 얻어내는 특별한 능력인 '관상'이 소설 2권에서는 실제 역사적 사건과 (물론 약간의 픽션이 가미된 역사 팩션입니다) 만나게 됩니다. 사람들의 운명을 보는 눈, 조선의 운명이 어떤 손에 달려있는지를 알 수 있는 눈을 가진 관상쟁이는 그의 능력으로 하여금 역사를 짊어지게 될 인물들과 마주하게 되는데요.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관상쟁이 '내경'은 많은 인물들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 일을 통해 그는 곧 알게 됩니다. 곧 조선에 피바람이 닥쳐올 것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자신의 복수심이 불타 '흔적없이 살으라던' 스승의 말을 어기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날의 삶과 오늘의 삶이 무엇이 다르랴... 우리 모두가 세상의 정원사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가 후기에 남겼던 한 줄이, 너무나 가슴에 와닿습니다. 미래의 성패를 알고 싶은 욕망은 현재나 역사 속에나,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을 올바로 비추어야 할 거울을 지녀야함을 소설은, 그리고 영화는 알려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굴곡져 있는 세상 속에, 더욱더 구부러질 세상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던 관상쟁이의 삶이 너무나 고독하고 안쓰러워지는 소설 <관상>.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지만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없었던 그의 이야기는 그 멀리 우주의 존재를 파악하는 거창한 의미의 '관상' 그리고 무언가는 세상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바꿀 수 있는 확실한 잣대가 아님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현실은 그보다 더 가혹하니까요.
Underline
- 세상의 모든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새들이 집을 옮기는 걸 보면 큰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 큰 비가 왔다. 개미가 싸우면 전쟁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얼마 안 있어 국경 근방에 적들이 출몰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버지가 언젠가 너는 커서 이 아비처럼 상쟁이가 될 것이라고 하더니 선천적으로 천기와 지기를 살피는 재주를 타고난 것인지도 몰랐다. 가끔 아버지 꿈을 꾸었다. 달 밝은 밤. 숫돌에 칼을 갈고 있었다. 시퍼렇게 눈을 치뜨고 칼을 갈고 있었다. 다가가보면 달빛 속에 앉아 칼을 갈고 있는 사람은 내경 자신이었다. (1권, 120p)
- "이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바둑판이다. 관상쟁이는 언제나 불쌍한 사람을 가엾게 여겨 둘 두 점을 주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한 점을 가져오는 사람이야. 이기려 하지 말거라. 언제나 져야 한다. 장자는 말했다. 배를 타고 건너가다가 빈 배가 와서 부딪치면 아무리 성격이 나쁜 자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있다면 피하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주를 퍼붓는 사람도 있다. 모든 것은 그 배에 누군가 있다는 상대성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 상대적 생각을 가지고 대하니 미워하고 대립하고 죽고 죽이고 하는 것이다. 먼저 세상의 강을 건너가려면 너의 배부터 비워야 한다. (...) 세상의 상을 살피며 흔적 없이 살아라. 구함은 잃음의 시작인 법. 그 법을 모른다면 진정한 너를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요?'하고 물어도 너는 너를 대답할 수 없다. 언제나 너에게 '누구요?'하고 물어라. 바로 그것이 상대에게 누구냐고 묻는 거와 같다. 관상쟁이가 세상을 향해 돌 두점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지 않고는 결코 너의 상도 타인의 상도 열 수가 없다. (1권, 309p)"
- 세상의 조복으로 이루어지는 길? 그것이 무상이다? 내경은 비로소 만물의 상은 물들거나 흐려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염상정. 더러운 곳에 머물러도 깨끗함을 잃지 않는다는 말 그대로다. 연꽃과 연밥이 두 개가 아닐 것이다. 연꽃이 피어남과 동시에 연밥이 나타나는 것이 인과 연의 이법이었다. "화개현실이다!" 원인과 결과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비로소 깨달았다. 인을 지을 때 이미 과가 생겨나는 것이 이 세상의 모습이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원인이 곧 결과였다. 결과 속에 원인이 있고, 원인 속에 결과가 있었다. 세상사 아무리 혼탁해도, 추악하고 왜곡되어 있어도 본심을 잃지 않고 그 흙탕물 속에 몸과 마음을 더럽힘 없이 초연하게 정도를 지켜가야 할 것이었다. (2권, 33p)
- 내경의 입가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가 번졌다. 막다른 곳에 선 두마리의 사나운 짐승. 어리석은 짐승은 자신의 힘만 믿고 무작정 쫓기만 한다. 간악한 짐승은 어디서 돌아서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리고 어디를 물어야 할지도 알고 있다. 그것이 자신의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는 걸 영악스럽게 알고 있는 것이다. 운세는 덫과 같은 것. 그 덫에 호랑이가 걸릴지 이리가 걸릴지는 운세만이 알고 있다. 호랑이가 걸릴 운세라면 이리의 운세를 바꿀 수 없다. 그것이 운명이다. (2권, 274p)
- 관상쟁이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세상은 그대로다. 세상은 변하는 게 아니다. 상을 깨달았다 하여 세계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찬 서리는 내리고 봄이 되면 꽃은 핀다. 세상은 그대로다. 그 속에 변하는 상을 보기 위해 미련하게 고집스런 관상쟁이가 서 있었다. 자신의 앞날조차 보지 못하면서 도대체 내가 누구의 앞날을 보려했던 것인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일체유심조. 상이란 마음 하나의 장난이었던 것을.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나가는 공간. 그 공간의 이해. 그 공간을 신력을 다해 이해해보려했다. 그러나 세상의 이해를 바랐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무엄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의 영역이었고 신의 영역이었다. (2권, 318p)
Add...
'관상'에 대하여 더욱 깊게 알거나, 역사팩션 보다도 그 속의 관상쟁이의 삶에 더욱 감정이입해보고 싶다면 ㅋㅋ
소설 <관상>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굉장히 흥미진진한 소설이네요.
소설이 너무 좋아선지, 영화가 조금 기대보다 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 책을 읽으니 허영만 화백의 '꼴'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