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조용한 저항 <일러스트 이방인 - 알베르 카뮈>
After Reading
아직 읽어보지 못한 <이방인>을 일러스트판으로 만나보았다. <일러스트 이방인>이 출간되었을때, 그 유명한 <이방인>을 나는 읽어보지 못한 상태였고, 그림의 분위기가 제목에서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의 분위기가 꽤 맞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 그래서 곧바로 주문하게 된 이 책. 한 손으로 받치고 있기 어려운, 일반적인 책들 판형의 1.5배 정도 크기에 달하는 이 멋진 책은 역시 그림도 굉장히 좋지만 문단을 자유자재로 위치시켜놓아서 꼭 그래픽 노블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 흑백이며 날카로운 터치의 그림과 상황에 꼭 맞는 인물들의 리얼한 표정은 무언가 오싹한 느낌마저 들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이방인'이라는 제목만큼 많이 들어온 소설의 첫마디. 소설의 이야기를 좌지우지하게 될 하나의 사건이자, 어떠한 의미를 많이 품고 있는 듯 보이는 문장이다. 소설은 이렇게 '엄마의 죽음'을 만나게 된 주인공 뫼르소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엄마의 죽음에 '어쩌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뫼르소. 그는 어쩐지 너무나 건조한 말투로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을 만난다. 마치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 삶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듯이. 그러나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만나게 된 오묘한 사람들의 눈길, 그리고 심판대에 올라있는 듯한 느낌에 그는 잠시 멈칫한다. 사회의 부조리한 시선을 감지하게 되는 시점이다. 이후 일상의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연히 자신의 눈을 찌르는 타는 듯한 태양은 그로 하여금 권총의 피스톨을 당겨버리게 한다. 뫼르소는 우연하게 생겨버린 자신의 죄를 심판받으면서 그리고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죄마저 떠안기 시작한다. 그는 불안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떠한 이유도 없이 그냥 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 책임이 생기기 시작한다. 군중들 속에서 그는 '이방인'이 된다. 시종일관 담담하던 그는 자신이 흥분하고 있고, 절박한 심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뫼르소, 그는 결국 그러한 세계 속으로는 끼어들 수 없다는 듯, 혼자의 길을 택한다.
불쌍한 뫼르소,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뫼르소. 그는 항시 자신의 행동에 충실한, 단순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자신만의 행복이 있으며, 자신만이 느끼는 감정이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런 '다름'에 돌을 던진다. 추궁하고 추궁하며 일반적인 상식 하에 억지로 맞추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형성된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뫼르소는 마지막 선택을 그리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상 속에 들어가 자신의 행동을 부정하는 것 대신, 세상 밖으로 나가 자신의 선택을 긍정하기를 택한 뫼르소의 행동은 어리석게 보이지만, 조용한 저항이었다. 자신에게 떳떳한 선택을 함으로서 마지막 순간, 어떠한 곳에서 찾을 수 없던 삶의 가치를 찾았고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바윗덩이를 밀며 오르며 의지를 느끼는' 시지프의 신화 내용과도 연결되며 카뮈가 말하는 삶의 철학과도 관계된다.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었던 뫼르소는 진정한 자유를 잡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혹시나 나는, 이방인이 될까 두려워 '옳다'는 것을 반대로 말하고 있지는 않을지, '보통'의 세계에 기어코 들어가기 위해서 가슴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Underline
- 무언가 스치는 소리에 잠이 깼다. 눈을 감고 있었던 탓으로 방안의 흰빛은 눈부셔 보였다. 내 앞에는 그림자 하나 없었고, 물체 하나하나, 모서리 하나하나, 모든 곡선들이 눈이 아플 정도로 뚜렷이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엄마의 양로원 친구들이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모두 한 여남은 명 되었는데,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그 눈부신 빛 속으로 살며시 들어왔던 것이다. 그들은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 하나 나지 않게 하고 앉았다. (...) 그들의 얼굴을 보고 놀란 것은, 눈은 보이지도 않고 다만 온통 주름살투성이인 얼굴 한가운데에 광채 없는 빛만이 보여서였다. 그들이 앉았을 때, 거의 모두가 나를 바라보며 이가 빠져버린 입속으로 입술이 온통 다 말려들어간 채 머리를 어색하게 수그렸는데, 그것이 나에 대한 인사인지 혹은 그들의 버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나에게 인사를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이 모두 문지기를 둘러싸고 나와 마주 앉아서 고개를 꾸벅거리고 있는 것을 내가 알아차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한순간, 그들이 나를 심판하기 위해서 거기에 와 앉아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인상을 받았다. (13p)
- 조금 전과 다름없이 시뻘건 폭발은 그대로였다. 모래 위에서 바다는 잔물결들의 급하고 가쁜 숨결을 다하여 헐떡거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바위께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햇볕에 쬐어 이마가 부풀어오르는 것 같았다. 더위 전체가 내 위로 내리눌러대면서 나의 걸음을 막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얼굴 위에 엄청나게 무거운 바람이 와닿을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바지 호주머니 속에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태양과 태양이 쏟아 부어주는 그 영문 모를 취기를 견뎌 이기려고 전력을 다해 몸을 버티는 것이었다. 모래나 흰 조개껍질이나 유리조각에서 뿜어나오는 빛이 칼날처럼 번뜩일 때마다 양쪽 턱뼈가 움찔했다. 나는 오랫동안 걸었다. 햇빛과 바다의 먼지 같은 수증기 때문에 눈부신 후광에 둘러싸인 거무스름한 바윗덩어리가 멀리 조그맣게 바라다보였다. 나는 바위 뒤에 서늘한 샘을 생각했다. 나는 졸졸 흐르는 그 샘물의 속삭임을 되찾아가고 싶었고, 태양과 그 그늘 밑의 노력과 여자의 울음소리를 피하고 싶었으며, 그리고 그늘과 힘겨운 휴식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73p)
- 아마도 얼굴 위에 드리운 그늘 탓이었던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기다렸다.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단도를 뽑아서 태양 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누꺼운 막이 되어 눈두덩을 덮었다. (74p)
- 그는, 나의 상고가 수락될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나는 죄의 짐을 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벗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인간들의 심판은 아무것도 아니고 하느님의 심판이 전부라는 것이었다. 나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은 인간의 심판이라고 내가 지적했더니, 그렇지만 그것으로 나의 죄가 씻긴 것은 아니라고 그는 가르쳐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죄인이고,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니, 그 이상 더 나에게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 순간 사제가 다시 일어섰는데 워낙 좁은 감방이라, 나는 그가 움직이고 싶어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앉아 있든지 일어서든지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134p)
-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은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신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그 역시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1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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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쓰긴 썼지만 어렵긴 어려운 이방인 입니다. ㅜ,ㅜ 대체 리뷰에서 뭔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요-
일러스트판이라 글씨는 좀 작았지만, 그림과 함께 보다보니
이야기에 취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듭니다. 그림은 진짜 소름끼칠정도로 좋았어요... (개인적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