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장 좋은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 - 인문 고전에서 배우는 사랑의 기술
한귀은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에 대한 안목이다
<가장 좋은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 - 한귀은>

After Reading
이론적으로 '사랑'을 익히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사람 사이의 가장 미세한 감정을 나누는 것이 사랑이니만큼, 가장 예민한 사이가 '사랑'이라는 관계고 의도치 않은 상황들도 자못 등장하기 때문이다. 누구나에게 평범할 수는 없으며 어디로 흘러갈지 예상할 수 없는 사랑은, 그 중 '가장 좋은 사랑'이라는 것마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애매한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마음가짐을 배워 변화할 수는 있다. 기쁨은 더욱 강력하게 누리며 아픔은 최소화할 수 있는 성숙한 마음가짐. 경험으로 배울 수 있는 사랑 앞에서 비교적 단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역시 도움이 된다.
<모든 순간의 인문학>에서 '감성인문학'을 표방하며, 삶에서 만나는 사소한 순간에서의 인문학을 적용하게끔 도와주던 저자 '한귀은'. 그녀가 이번에는 인문고전들을 통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철학'을 나눠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사랑'에 대한 인문 고전, 하면 생각나는 것이 몇가지 있을 것이다. 너무나 유명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격정적인 사랑을 보여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책으로 접했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담긴 <제인에어>와 <상실의 시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위대한 개츠비>까지. 지금 우리가 행하고 있는 사랑의 모습과는 겉으로 보기에 조금 다른 부분도 존재하지만, 배우고 싶은 면과 따라하고 싶지 않은 모습들이 뒤섞여 있는, 사랑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고전들이다. 저자가 그 고전들을 가지고 한 이야기들은 이미 읽어본 책들 중에서 '아,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구나' 또는 '이 부분을 나도 모르게 지나쳐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또한 읽어보지 못한 고전들은 '언젠가 꼭, 성숙해지기 위해 갖추어야할 책'이라고 생각하여, 담아두기로 했다.
언젠가 연인과 헤어지고 난 후, 많은 친구들 앞에서 펑펑 울며 고개를 들지 못했던 친구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 때, 나는 사랑에 대해 낯설었고 익숙하지 않았고, 조금은 냉정했기에 깊은 마음으로 위로해주지 못했다. 이 친구의 모습처럼,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너무나 아파하고, 참지 못한다. (물론 아파하는 모습 뒤에 너무나 행복한 모습이 있지만) 그리고 사랑에 대해 무조건적인 판단을 거듭한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왜 아픈지 모르고 아파했고, 진통제를 무조건 삼키듯 아픔을 내버리기 위해 분주하다. 자신이 어떤 사랑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대중매체에서 학습한 사랑을 반복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설레고 떨리는 감정 앞에서 저질러버리는 실수다.
지나간 사랑의 아픔을 빠르고 냉정하게는 아닐지라도 서서히, 추억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나도 모르는 사랑 앞에서의 '민낯'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도록, 더이상 겁먹지 않고 새로운 사랑을 설레며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감성 인문학'. 사랑 앞에서 조금 더 크고 성숙해지고 싶다면, 이 책을 읽고 사랑에 대한 안목을 키워갈 수 있을지 모른다.
Underline
- 니체는 사랑이란 정과 망치를 들고 하는 것이라 했다. 망치를 들고 돌 속에 잠들어 있던 형상을 드러내는 게 사랑이라고 했다. 니체는 삶 자체가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연인의 삶, 연인의 자아조차 사랑을 통해 아름답게 드러내는 것, 그것은 니체는 사랑의 가장 최고치로 보았다. 상대에게 정과 망치로 쪼이고 깎이는 데 안 아플 수 있겠는가. 공고했던 편견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은 무조건 아픔을 수반한다. 하물며 영화를 보고 나서 자신이 알고 있었던 것이 진실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조차 마음 한쪽이 슬쩍 무너지는 것 같은데, 내가 사랑하는 연인과 마주보고 앉아서 내 세계가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을 보며 어찌 안 아플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말했듯이, 그 아픔은 쾌락과 함께 오고, 그래서 차라리 짜릿한 아픔이다. 무엇보다 그 편견의 세계가 깨어지고 진정한 '나'가 그 모습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8p)
- 사랑하는 연인은 나에게 결코 평범할 수 없다. 평범하다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을 리 없다. 사랑으로 인해 나는 이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를 사랑하는, 진실로 비범한 존재가 된다. 사랑이 자긍심을 불러오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만약 그 사람이 평범하지만 사랑한다고 여긴다면, 그 평범함조차 사실은 누구나 가질 수는 없는 '너무나 특별한 평범함' 이 아니던가. 그런데 사랑이 끝났을 때, 그 사람이 여전히 특별한 존재던가? 아닐 것이다. 그/그녀는 그저 수많은 남녀 중 한 명일뿐이다. 실로 우리의 연애사는 사랑이라는 환상으로 시작돼 이별이라는 환멸로 끝나는 것 같다. (78p)
- 일종의 '퇴행'이다. 성인이 유아기 때로 돌아가는 증상 말이다. 하지만 사랑을 하면 이렇게 퇴행하게 되어 있다. 사랑은 전 존재가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전 생애가 하는 것이기 떄문이다. '지금의 나'만 사랑하는 게 아니다. '미래의 나'도 '약속'이라는 차원에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며, '과거의 나'도 그 사람을 소급해서 사랑하게 된다. 너무 늦게 만나서 억울하다는 듯이 어린 시절의 '나'까지도 호출하여 사랑에 참여시킨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직 자라지 못한 내 마음 속 '어린 나'도 사랑해줘요"라는 식의 소급적 구애 말이다. (138p)
- 살면서 이런 일이 어디 흔한가. 우리가 어디서 이토록 많은 칭송을 받았던가. 능력, 외모, 취향, 성격은 물론, 연인들은 상대방의 냄새조차 칭찬한다. 보들레르는 연인의 머리 냄새조차 묘사해냈다. "그대 머리 타래의 솜털 난 기슭에서 나는 타는 듯이 취한다."라고.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태어나 최초로 미적인 대상이 된다. 그 사람의 전부가 미학적이다. 우리는 자기 연인이 완벽하다는 사실에 찬미하며, 그렇게 완벽한 사람을 선택한 자신을 찬미한다. 그래서 사랑이 끝나면 그토록 괴로운 것이다. 그 칭송의 제단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것이 환상이라고 정의 내려지고 곧바로 환멸이 닥쳐오기 때문이다. '아, 다 거짓이었구나!' 하면서 치를 떨게 되는 것이다. (142p)
- 추억 속의 사람이 남다른 이유는 자신이 그 사람을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알지 못하는 그 '빈 곳'을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그 사람 전체가 신비롭다고 여겨버리는 것이다. 이를 '자이가르니크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이 증후군은 심리학자 자이가르니크가 명명한 것으로, 완성한 일보다는 완성하지 못하고 마무리 짓지 못한 일에 대한 기억이 더 강하게 남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그녀와 '끝까지' 갔다면 추억은 오히려 별로 남지 않는다. 미완성의 사랑이야말로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추억 속 그 사람은 언제나 미결수다. 나의 기억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결코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채로 남아 있는 매력적인 미결수 말이다. 그리고 그 미결수는 여지없이 '나'에게 상처를 낸다. 추억이 된 사랑이 아픈 이유다. (274p)
Add...
조금 아쉬웠던 점은 '인문학적 용어'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주석'이 있었으면 했다는 것입니다 :)
찾아보면서 읽었네요. 그래도 인문학 도서들에 비해서 가볍게 익힐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