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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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인생이란 납득할 수 없는 한 편의 부조리극 <나의 삼촌 브루스리 - 천명관>

 

 

 

 

 After Reading

 

 

 

   '오리지널이 되고 싶었던 어느 짝퉁인생의 슬프고도 기적같은 일대기'

 

  좀처럼 맘대로 할 수 없는 삶을 견디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우상'이다. 과거에는 '존경하는 인물', 그리고 현재는 '멘토'로도 많은 영역으로 확장해가고 있다. 그들은 연예인일 수도 있고, 자신의 꿈을 먼저 이룬 사람일 수도 있고, 또는 자신의 가족일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그들을 꿈꾸면서 의지하고 그리워한다. 그들은 가끔은 삶의 무게를 덜어주고, 잠시뿐이라도 희망을 얻게 만드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태어날 때부터 바람 잘 날 없던 삶을 살았던 이 책의 주인공 '삼촌'의 경우엔, 그 유명한 이소룡이 우상이었다. 나는 이소룡이 영화 속에서 신나게 휘돌던 시대에 (언제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살지 않아서, 아직까지 불리우는 그의 이름을 들어서만 유명세를 실감했다. 많고 많은 액션배우들 중에 이소룡, 브루스 리가 왜 그렇게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었는지, 소설 속에서처럼 많은 남성들이 그에게 매혹되어서 짝퉁 '이소룡'이 되고 싶어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남들과는 무언가 다른 인성을 가진 배우, 아니 무도인이였나보다.

 

  지금까지 <고래>, <고령화가족> 그리고 이번 <나의 삼촌 브루스 리>까지 작가의 소설을 접했는데, 천명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팔자가 기구한 사람들이다. 어찌나 팔자가 사나운지 자칫하면 막장드라마의 우스운 꼴을 보일 수도 있겠다싶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어이없고, 말도 안되는 일도 부지기수. 그러나 그 이야기를 펼쳐내고 수많은 이야기의 갈래와 함께 펼쳐내는 그만의 힘이 있기에 우습기보다는, 왠지 더 처절한 느낌이 들어 감동스러운 마음이 들게 된다. 또 한가지, 그의 소설이 너무나 극적인 이야기 전개로 이어지는데도 화내지 않고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주인공의 '꿈과 바람'이다. 이루어지기까지는 고난이 한도 끝도 없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고 무너지고를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모습, 그것을 보는 우리에게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왜 실패하고 무너지고를 반복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봐야하는가, 인생도 힘들어 죽겠는데' 하고 누군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말한다. "구원의 길을 보여주진 못하더라도 자신의 불행이 단지 부당하고 외롭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의 불행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징하게도 계속해서 살아남는, 브루스 리가 되고 싶었던 '삼촌'의 모습을 다룬 이 소설을 보면서

서민들의 희노애락을 책임졌던 노래 '민요'를 떠올렸다면 조금, 오바일까 - 어찌됐든 너무나 흥미진진한 한 판 이었다.

 

 

 

Underline 

 

 

 

  - 그날, 삼촌은 왜 그렇게 바삐 촬영현장에서 도망쳤을까? 그것은 그의 영혼을 단숨에 꿰뚫고 지나간 그 강렬한 빛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져서였을까? 아니면 그 빛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자신의 인생이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미리 알아서였을까? 삼촌은 우연한 기회에 영화의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선 우리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본의 아니게 걸치고 온 가죽재킷을 입고 자주 거울에 비춰보며 마치 꿈을 꾸듯 몽롱한 표정으로 오랫동안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곤 했을 뿐이었다. 이때 삼촌은 카메라 앞에서 그림처럼 멋진 공중회전을 선보였던 그 순간을 회상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눈동자를 스쳐갔던 원정의 고혹스런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을까? (1권, 78p)

 

 

  - 숲 한가운데 이소룡이 서 있었다. 그는 위통을 벗은 채 목인춘을 상대로 혼자 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안개에 휩싸여 더욱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손으로 나무를 칠 때마다 목탁을 칠 때처럼 경쾌한 소리가 났고 근육이 살아 있는 뱀처럼 눈앞에서 꿈틀거렸다. 삼촌은 놀란 눈을 크게 뜨고 한동안 이소룡이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것은 필시 꿈이겠지? 삼촌은 자신의 팔뚝을 힘껏 꼬집어보았다. 아팠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이것은 현실이란 말인가? 그런데 어떻게 죽은 이소룡이 여기에 나타날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삼촌은 이소룡의 손동작을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칼판장이 자신에게 가르쳐 준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1권, 208p)

 

 

  - 그들은 아마도 서울 변두리 어디쯤에 단칸셋방을 얻어 막막한 서울살이를 시작할 터이지만 그것이 이른 새벽, 무논에 들어갈 때보다 더 서늘하고 흙먼지 날리는 묵정밭을 맬 때보다 더 팍팍하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속이 메슥거리는 매연 냄새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고 자기 집에 들어가도 남의 집에 온 듯 낯설어 몇 해도 가기 전에 오매불망, 꿈에 본 내 고향을 그리워하겠지만 한 번 등진 고향땅을 다시 밟기는 어려운 법, 아직 동도 트기 전 까마귀 시체가 널린 듯 연탄재로 온통 시커메진 골목길을 밟으며 고단한 일터로 나갈 때마다 자꾸만 발이 허방을 짚는 듯 불안하고 허전해 어쩌다 운 좋게 술이라도 한잔 얻어 걸치면 사는 게 도대체 이게 뭔가, 싶은 기분에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지만 그래도 믿을 거라곤 그저 늙어가는 몸뚱이 하나뿐, 낡은 자전거 페달을 돌리듯 체인이 끓어질 때까지 찌든 육신을 돌리도 또 돌려야 할 터였다. (1권, 243p)

 

 

  - 나는 경희가 우는 게 지독한 최루가스 때문인지 아니면 경찰에게 질질 끌려가던 순간의 두려움과 수치심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가 느낀게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녀가 운 것은 우리가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감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우리의 생은 그것이 무엇이 됐든 우리가 감당하기에 늘 너무 벅차리라는 것을. 그래서 또 눈물이 나고 그 눈물이 마를 즈음에야 겨우 우리가 애초에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존재였음을 깨닫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경희의 어깨에 팔을 둘러 세게 끌어안았고 경희는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오래도록 울었다. (2권, 23p)

 

 

  - 삼촌의 머릿속엔 거대한 스크린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위에선 격렬한 액션 장면이 상영되고 있었다. 상대는 무시무시한 갈고리를 휘두르는 악당이었고 자신은 억울하게 죽은 연인의 복수를 위해 혈혈단신 적진에 뛰어든 주인공이었다. 커다란 덩치의 갈고리는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그는 거대한 갈고리를 휘둘러 바람을 갈랐고 들소처럼 대지를 흔들며 주인공을 몰아붙였지만 기실, 현실에서 그는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한낱 썩은 각목이나 휘둘러대는 마약중독자일 뿐이었다. (2권, 2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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