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허공 - 고은>
After Reading
"누구 때려죽이고 싶거든 때려죽여 살점 뜯어먹고 싶거든
그 징그러운 미움 다하여 한자락 구름이다가 자취없어진 거기 허공 하나 둘 보게,
(...) 거기 허공만한 데 어디 있을까보냐"
오랜만에 시집을 읽었습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여러번 거론되고 있는 고은 시인의 시집이지요. 저도, 많은 사람들처럼 평소 시집을 꺼내들기보다는 재미를 찾아서 소설책을 많이 꺼내들지만, 가끔은 꺼내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역시 갈수록 인기를 덜해가는 '시집'을 읽어보겠다는 의지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요. 시를 읽고 있으면, 사실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시는 그냥 느끼는 거라는데, '느껴지나' 하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아직 많이 못접해봐서 그런것 같아요) '그냥 이렇게 후루룩 읽어버려도 되나?' 아니면 허투로 읽는다는 걱정에서 입으로 읽어보기도 하고요. 아직도 '대단한 시'란 무엇인지 가늠이 가지 않습니다. 그저 마음에 드는 시어가 있는 부분부분, 되새겨가면서, 좋다고 박수치고 한답니다.
아무튼 그래서, 시를 읽고 쓰는 리뷰는 부담이 배로 듭니다. (물론 책 리뷰도 항상, 어렵지만) 감수성이 풍부한 시인이 쓴 '시'를 읽고서 느낀 바를 말할 수 있는 제 표현력은 한계가 있어서 말이지요.. 특별한 주제로 묶은 시집이라면, 설명이라도 쓰지만 - 음, 어렵네요.
고은 시인의 시 <허공>은 어느정도 낯이 익은 것 같습니다, 아마 어딘가에 여러번 수록되었거나 학교다닐때 보았던 것일까요. '허공' 이외의 시들에도, '허공'이라는 시어가 여럿 등장하는데, 고은이 바라보는 '허공'은 어떤 느낌일까요. 자유, 순수한, 초월적인, 한맺힌 울음을 받아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벗어던질 수 있는 공간일까요? '허공'이라는 단어는, 왠지 슬프고 음울한 느낌인데 왠지 시 속에서는 오묘한 느낌이 듭니다. 긍정적이고도 부정적인 느낌이 혼재하는 단어랄까요, 지금으로선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 밖에 새로웠던 건 세계를 바라보는 고은의 시선이 담긴 소재들이 꽤 많다는 것이었어요. 한국의 사회 뿐만 아니라, 전쟁, 종교,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야기들이요. 고은 시인은 끊임없이 섬세하고 생생한 '시'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듯 보이고, 지난 생의 추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시가 역시 많습니다. 반세기를 시인의 삶을 산 사람이 보아온 남다른 풍경들.. 또한, 아름다운 시어가 있는 반면, 거친 시어들도 많네요.
어쨌든 세상에 나온 수많은 시집을 하나하나 읽다보면, 언젠가 보이겠지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그리고 주관적인 느낌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어요.
Underline
- 저 봉천동 윗말 할머니 여생에는 / 식은 연탄재뿐인데 / 두만강 숫처녀가 갈보가 되는데 /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 허리에 폭탄 매고 달려가는데 / 서울역 지하도 노숙자가 / 신문지 덮고 뻐극뻐극 앓고 있는데 / 아 , 이 세상에 더이상 눈물이 없다 / 실컷 울고 난 / 푸른 하늘이 없다 / 그 많은 푸른 하늘의 신들 다 죽어버렸다 / 나에게 눈물이 없다 눈물의 피가 없다 / 이 캄캄 벼랑 어이 건너갈거나 (63p, 나에게 눈물이 없다)
- 나의 치여 / 나의 타여 / 한마디 말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 한줄의 글 쪼아버리고 / 달걀 속 / 흰자위 노른자위의 첫날밤 / 그 순벙어리 / 그 고향 어디로 가버렸는가 / 왜 나는 지금 얼마짜리로 목을 매고 있는가 (96p, 울란바타르의 마음) * 몽골어로 '치'는 너, '타'는 당신을 뜻한다.
- 국가는 섬세할 수 없단다 국가는 그냥 왈패란다 / 그럴수록 문학은 섬세해야 한단다 / 자네 문학이 / 행여나 / 떠밀리고 떠밀려 / 변방 읍내 호프집에 처박히게 될지라도 / 낙담 말게 / 더더욱 외따로 고개 저어 섬세하고 섬세할 노릇일세 / 장차 그 섬세함의 장관이라니 (120p, 후배에게)
- 문맹률 75퍼센트의 그 시절 / 나는 덩달아 시인이 되어버렸습니다 / 가슴에 거멀못 박혀 / 내가 태어난 것이 내 뜻이 아니었듯이 / 꼼짝달싹 못하게 / 내가 시인으로 태어난 것이 / 오래된 내 뜻인 듯 / 여기저기서 구호물자 주는 저녁 예배당 종소리와 / 도벌 남벌 민둥산의 굽은 나무가 / 이따금 한 편의 시를 주면 달게 받아먹었습니다 / 전쟁 / 평화라는 낱말 / 부패 / 기아 / 천년 이어온 초가지붕들 / 이승만 독재의 부정선거 피아노표 올빼미표 / 그런 날들을 지나오며 극단과 극단의 일상이었습니다 / 이슥한 달빛에도 숨을 칼날들이 엇갈려 있었습니다 /
문맹률 0퍼센트의 시절 / 지난날의 폐허에서 시작한 내 시의 엉터리는 / 벌써 50년이 되어갑니다 / 내 또래들 남북의 절반이 죽고 / 나는 술집 탁자 위에서 자다가 떨어졌습니다 / 어느날 밤 내 또래의 귀신들 몇이 나에게 물었습니다 / 너 시인이냐? / 나는 비겁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부인하였습니다 / 아니라고 / 아니라고 / 내가 진짜 시인이라면 / 세상의 한 모서리가 왜 이 지경이겠느냐고 / 아니라고 / 아니라고 (145p, 어떤 신세타령)
- 시들이 / 그 이상의 시를 막는다 / 시들이 / 그 이후의 시를 막는다 / 시야 시야 파랑시야 / 시의 연혁 / 시의 패션 / 시의 권위 백년 가까스로 벗어나 / 그대의 시 벌벌 떨며 막 태어나 혼자이거라 (212p, 한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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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에 '허공'이라고 쳤더니, '생명은 소중합니다! 지금, 희망을 클릭하세요.' 문구와 함께
자살예방 상담코너가 뜬다............... 아, 놀랬네. 아닙니다 그런거 ㅠㅠㅠㅠㅠ 전 행복합니다아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