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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오늘도 무사히 ㅣ 사계절 1318 문고 86
자비에 로랑 쁘띠 지음, 김주열 옮김 / 사계절 / 2013년 7월
평점 :
하루하루 무심코 되뇌게 되는 말 <제레미, 오늘도 무사히 - 자비에 로랑 쁘띠>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906/pimg_708537108894398.jpg)
After Reading
'내가 꿈꾸는 건 오직 한 가지, 이 모든 엿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청소년 소설이지만, 나름 무거운 주제가 스며든 이 책. 주인공인 제레미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았다. 군대에 가서 다리를 공사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 잉여같은 일상을 탈피할 수 있을거라 여겼지만, 상황은 안좋게 흘러간다. 얼떨결에 일등 사수가 되고, 전쟁이 일어난 지역에 파견되는 제레미. 그는 신나는 음악을 함께 즐겼던 사랑하는 동생에게 전쟁의 참혹한 상황을 메일로 털어놓으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의 편지는 항상,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오늘도 무사할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그 어린 제레미는 다짐하면서 쓴다. 동생 오스카는 메일을 통해 알게 된 전쟁 속 군대의 상황을 노래로 만들어나간다. 설레는 첫사랑과 함께. 제레미는 하루라도 빨리 지긋지긋하고 무서운 군대를 빠져나올 방법이 없는지, 되뇌고 또 되뇐다. 과연 그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 -
첫사랑과 함께 설레는 나날들을 함께 보내고 진실을 알게 되는 동생 오스카, 전쟁 상황에서 동생과 주고받는 메일을 통해 위안을 받는 형 제레미.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 주체적인 선택을 하면서, 오늘도 무사히, 성장해 나간다.
전쟁의 상황은 픽션이 아닌, 작가가 직접 실제 체험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쓰여졌다. 청소년 소설이고, 글로써는 그 참혹함을 제대로 보여줄 수는 없지만 하루하루 견디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이야기 속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오늘도 무사히' 라는 말을 심심할 때도 아닐 때도 중얼거려야 할 정도로, 다급하고 조심스러운 생활. 작가는 말한다. 그 군대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반역자'도 아니고, '비겁자'도 아닌 '아니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그러나 휴전국가이며 병역이 '의무'인 이 나라에서 '탈영'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떠올릴 수 있는 이 책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너무나 힘든 군대생활 속에서 '탈영'을 떠올리는 것, 그리고 심지어 그것을 실행하는 자는, 절대 우리 사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다. '아니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라는 것이 통할까, 그들은 오직 '비겁자'라는 이름표를 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엔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조마조마함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Underline
- 그들은 맹목적 복종에 대한 거부를 선택했습니다. 공포를 앞세워 강요되는 권력의 폭압을 거부하는 결단 말입니다. 이 작품에 묘사된 전쟁 장면 중 지어낸 것은 하나도 없으며 모두가 실제 참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했습니다. '전쟁 거부자들'은 반역자도 비겁자도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아니오'라고 말할 용기를 가진 자들입니다. (글쓴이의 말)
- 제레미가 내일 떠난다. 눈물을 보여선 안 돼. 이 빌어먹을 두 문장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정신 나간 새들마냥 머릿속에서 서로 부딪치고 충돌했다. (...) 마치 둑이 터진 것처럼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나는 울기 시작했다. 진짜 홍수라도 난 것처럼. 금세기 최고의 수량 증가. 나는 멈추지 못하고 아이처럼 흐느껴 울었다. 그래 제레미는 내일 떠날 거다. (98p)
- 나는 일등 사수니까 수색을 나갈 때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나쁜 놈들', 그 개자식들을 찾아내는 게 임무야. 그놈들은 물론 우리가 주된 표적임에도 온 사방에 폭탄을 설치해. 희생자가 자기편에서 나든, 어린 아이든 여자든 상관없다는 식이지. 모두가 그 지긋지긋한 자들을 두려워해. 그들은 어디서도 물러서는 법이 없고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폭할 준비가 되어 있어. 그래서 철칙은 아무도 믿지 말라는 거야. 아이들조차도. 그놈들은 우리한테 수류탄을 퍼붓기 위해 아이들을 끌어 모은 것 같아. 폭탄은 어디서든, 언제든, 또 누구로부터든 우리 얼굴에 떨어질 수 있는 거지! (119p)
- 이제 곧 여기 온 지 6개월이 된다. 빌어먹을 기념일! 그동안에 내 인생의 절반이 지나간 것 같다. 이젠 진짜 생활이 어떤 건지도 잘 모르겠다. 우리가 몸에 구멍이 뚫릴 위험이 없이 길을 건넌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도 모르겠고 여자와 콜라를 마시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것들은 정말이지 존재한 적이 없다는 느낌. (21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