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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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기억의 풍속화를 글로 써내려가다 <외딴방 - 신경숙>

 

 

 

 

 After Reading

 

 

 

  "너는 우리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갑자기 만나게 된 그 시절, 그 친구의 질문으로 인해, 기억 속에서 잠시 묶어두려고 했었던 시간을, 그러나 단단하게 묶어지지는 않은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외딴방 속의 '나'. '나'는 작가 신경숙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이자 자신일지도 모를, '그'라고 부르고 싶은 '나'이다. '나'는 그 질문으로 인해 '삶과 문학'에 대해 고민한다. 과연, 문학이 포용할 수 있는 삶의 범위가 어디까지 될까? 나는 이 책을 보고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어떠한 다양한 삶이던간에 문학으로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까지인지는 모르지만) 텍스트로 비춘 신경숙 작가가 '문학이 끼어들 수 없는 삶조차 있는 법 아니냐고', 언뜻 대답한다.

 

   '나'는 소설 속에서 글을 쓰는 현재와, 유신 말기 일과 공부를 함께 했었던 시절의 과거를 넘나든다. 도시의 가난한 생활과 부조리한 제도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면서도 작가의 꿈을 꾸며 살아가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한다. 시대의 고통을 함께 겪었던 외사촌과 오빠들, 구로공단의 노동자들, 산업체 특별학급에 다니던 학우들과 선생님들. 꾹꾹 감정을 눌러가며 그들과 함께 있었던 이야기를 말한다. 그들은 작가의 꿈을 가지는 '나'에게 그때의 현실을 글로 써주기를, 모든 것을 사실적으로 써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그때의 그립지만 아픈 외딴방 바깥에 존재하길 바란다. 공감의 시간 속에서, 누구도 모르는 나의 비밀을 풀어낸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 힘들었기에. 사진을 찍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그 시절을 그려내기는 쉽지가 않다. 그러나 그녀는 써내려간다. 그 그리운 외딴방은 그녀의 마음속에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물흐르듯 흘러가는 과거와 현재에서의 서술은 '나'가 말했던 것처럼 철저히 문학 바깥 속에 존재하려는 몸짓으로 보인다. 사실적으로, 그러나 거리감 있게. 문체 또한 쓰면서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그것 또한 확고하지 않게. 그러나 후반쯤에 나는 현재의 '나'로 돌아온 시간 속에서, 힘들게 떠올렸던 과거를 글 속에 풀어놓은 후련함을 느꼈다. "자, 망설이지 말고 날아가라. 저 숲속으로. 눈앞을 가로막는 능선을 넘어서 가라. 아득한 밤하늘 아래 별을 향해 높고 아름다이 잠들어라."

 

  그리운 그 시대의 풍속화를 그려내며 글쓰기의 숙명을 되묻는 '외딴방'. 외딴방의 '나'는 혹 '그'일수도 있으며 '우리'일수도 있음을. 그 굳게 닫혀 있는 외딴방의 문을 다시는 힘들게 바라보지 않을 수 있기를,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 내 속에 있는 '외딴방'에 얽힌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내릴 수 있을까 -

 

 

 Underline

 

 

 

  - 글쓰기란, 그런 것인가. 글을 쓰고 있는 이상 어느 시간도 지난 시간이 아닌 것인가. 떠나온 길이 폭포라도 다시 지느러미를 찢기며 그 폭포를 거슬러 돌아오는 연어처럼, 아픈 시간 속을 현재형으로 역류해 흘러들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쓰는 자에겐 맡겨진 것인가. 연어는 돌아간다. 뱃구레에 찔린 상처를 간직하고서도 어떻게든 다시 목숨을 걸고 폭포를 거슬러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래 돌아간다. 지나온 길을 따라, 제 발짝을 더듬으며, 오로지 그 길로. (37p)

 

 

  - 몰라, 오빠. 나는 그런 것들보다 그때 연탄불은 잘 타고 있었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방을 나간 오빠가 어디 길바닥에서나 자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그때 왜 그렇게 추웠는지 말야. 김치를 꺼내다가 잘라서 접시에 올려서 밥상 위에 얹으면 살얼음이 끼어 쭉 미끄러지곤 했어. 그릇이 깨지고 김치가 사방으로 흩어졌지. 오빠, 그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무우국을 끓이려고 사다놓은 무우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이었어. 눈이 내린 아침에 수돗물을 틀었을 때 말야. 물이 얼지 않고 시원스럽게 나와주면 너무 좋았고, 안 그러고 얼어서 나오지 않으면 너무 싫고 그랬어. 내가 문학을 하려고 했던 건 문학이 뭔가를 변화시켜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어. 그냥 좋았어. 문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 금지된 것들을 꿈꿀 수가 있었지. 대체 그 꿈은 어디에서 흘러온 것일까. 나는 내가 사회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문학으로 인해 내가 꿈을 꿀 수 있다면 사회도 꿈을 꿀 수 있는 거 아니야? (206p)

 

 

  - 손바닥을 펼쳐 거울 속에 비춰보았다. 이 손으로 내가 무얼 했었던가. 나와 내 손과 거울 속의 내 눈이 부딪쳤다. 얼른 손을 내려 흘러내리고 있는 수돗물에 담갔다. 흐르는 물. 물 속에 담가진 손가락들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무엇을 만지고 있거나 붙잡고 있거나 쓰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 보이는 나의 속. 열 개의 손가락이 저마다 지니고 있는 외로움. 어쩌자고 이렇게 생긴 꼴로 여기에 옹기종기 모여서 끊임없이 움싯거리고 있는지. (325p)

 

 

  - 그 곳을 떠나와서도 언니와 비슷한 사람을 보거나 그 방과 비슷한 방을 보게 되면 내 가슴은 뛰고 숨이 막히곤 했지. 갑자기 멍해지거나 안절부절못했지. 주위가 산만해지고 잠이 깨면 다시 잠들지 못했어. 때때로 갑자기 어린애가 돼버린 것같이 판단력이 흐려지고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그 사람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싶기도 했어...... 책을 읽다가도 갑자기 우울해졌고...... 다리를 지날 때는 그 난간 밑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지...... 커튼자락이나 빨랫줄 따위들이 내게 달려드는 것 같기도 했어. 알아? 언니는 나의 장애였어. 그와 행복했다가도 그를 밀어내게 하는 관계맺기의 장애였어...... 지나친 각성상태가 주는 피로는 언니가 더 잘 알겠지...... 그곳엘 다시는 가지 않았지. 그 근처에도. 그러나 내 머릿속엔 공장들과 노동자들 전철역이며 가리봉동시장이며 공단 입구 독산동이며 구로동이란 단어의 이미지들이 방죽처럼 고여 있었어...... 자, 언니 손에 달려 있어...... 왜 하필이면 나였지? (327p)

 

 

  - 모래펄에 남겨진 내 발자국의 자취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지금은 그녀들, 어디서 어떻게들 살고 있는지. 오랫동안 그녀들을 생각하면 삶이란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고독을 느껴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녀들은 내 속에서 늘 현재로 작용했다. 그녀들은 내가 스무 살 이후로 만났던 삶의 누추함을 껴안을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얼토당토 않은 욕망의 자리에서 내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성찰이 되어주기도 했다. 모래펄에서 몸을 일으켜 내 발짝에 내 발짝을 대보며 모래펄을 걸어나왔다. (중략) 오늘, 나에게 가장 뚜렷한 현재인 오늘, 여기에 찍힌 내 발자국을 따라가면 스물에서 더이상 멈칫대지 않고 곧바로 열아홉으로 들어갈 수도 있으리라. (422p)

 

 

 

 Add...

 

 

<외딴방>, 너무 좋아서 밤새 품고 읽어버렸다. 너무 좋다 -

신경숙 작가의 글이 이런 느낌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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